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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에게 꽃을 꽂아주기로 했다.

오늘 무엇으로 살지 결정하는 일은 나에게 달렸다.

by 쓰는 인간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났구나’ 당신은 언제 느끼는가? 필자는 보통 과외나 학원, 혹은 다른 곳에서 가르쳤던 학생들이 연락하고 근황을 이야기할 때 세월의 무색함을 느낀다. 마냥 어리기만 했던 나의 학생들이 ‘무소식의 시간’ 동안 얼마나 애썼을까 생각하면 감정은 대견함을 넘어 뿌듯함, 혹은 같은 어른으로서 존경까지 닿곤 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매스 미디어를 통해서 ‘세월이 참 빠르구나’ 생각한다. 지난 주말 유튜브에서 추억의 인기가요 영상을 보았다. ‘와, 이게 벌써 10년 됐다고?’ 놀랄만한 곡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중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보아의 신인 시절 노래하는 모습이었다.


만약 보아가 자신의 사주에 대해 ‘아시아의 별’이 되기 전에 들었다면 지금과는 달라졌을까?


벌써 보아가 데뷔한 지 20년이다. 그녀는 지난 7월 25일 JTBC 예능 프로그램 ‘아는 형님’ 240회에 성시경과 출연했다. 지난 연예계 생활을 회상하며 다른 곳에서 말하지 않았던 에피소드들을 공개했다. 그중 하나는 점집에서 들은 말에 대한 에피소드였다.

보아는 우연히 친한 지인이 간다는 점집에 함께 방문했다. 물론,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를 썼었다고 한다. 지인의 사주를 보던 무속인은 갑자기 옆에 앉아있던 보아의 생년월일을 물었다. 그녀는 잠시 고민했지만, 알려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잠시 후 무속인의 입에서 나온 다소 황당한 말.

"연예인 되게 하고 싶은가 봐요? 근데, 연예인 되도 대박은 나지 않아요."

패널들과 스텝들, 그리고 시청자 모두가 무속인의 말에 대해 웃고 넘어갔다. 만약 보아가 자신의 사주에 대해 ‘아시아의 별’이 되기 전에 들었다면, '별은 과연 지금처럼 떠오를 수 있었을까?' 생각했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는 말을 기억한다. 이런 말을 전제하면, ‘별은 과연 지금처럼 떠오를 수 있었을까?’에 대한 생각은 무의미하다. 이미 보아는 아시아를 넘어 세계가 아는 아티스트이니까. ‘사주명리는 허구‘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우리는 무엇을 질문할 수 있을까? ‘과연 운명이란 무엇일까?’ 이 정도는 물어봐도 괜찮지 않을까.


‘푸흡!’ 컵도 쓰지 않고 급하게 입을 대고 마신 탓이었을까?



여름날 땀을 뻘뻘 흘리고 집에 들어오면 탄산음료 한잔이 간절했다. 물론, 바라는 일이 실제로 벌어지는 일은 생각보다 적었다. 어머니께선 보통 특별한 날이 아니고서는 치아 건강을 위해 탄산음료를 집에 사다놓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학원에 다녀와 보니 식탁 위에 페트병 몇 개가 놓여있었다. 짜릿함은 이미 내 목을 타고 흘렀다. 시원하진 않았지만 무슨 상관이랴. 땀을 한 바가지 흘린 나에게 지금 당장 입에 털어 넣을 탄산 한 잔이면 그게 미지근하든 시원하든 상관없었다.

‘푸흡!’ 컵도 쓰지 않고 급하게 입을 대고 마신 탓이었을까? 아니었다. 그건 사실 간장이었다. 외할머니가 하필 간장을 코카콜라 페트병에 주셨고, 외손자는 그날따라 목이 너무 말랐으며, 어머니는 아들에게 ‘식탁에 올려놓은 병 간장 통이야.’ 말을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지금도 이 일만 생각하면 삼키다 말았던 간장의 짠맛이 올라오는 느낌을 받는다.


그릇은 어떤 것도 될 수 있다.



대학생 시절 도자기 체험을 할 기회가 있었다. 도예가 선생님의 친절한 안내를 따라 흙을 주무르고, 각자의 취향대로 열심히 뭔가를 만들었다. 이후 며칠이 지난 뒤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체험을 했던 사람들 모두 자기 작품을 받기 위해 다시 공방으로 모였다. ‘내 손으로 이걸 만들다니’ 생각하는데, 도예가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자 여러분, 이제 여러분들 손에 달렸습니다. 꽃을 담으면 꽃병이, 물을 담으면 물병이 됩니다. 아, 물론 쓰레기통도 될 수 있겠죠."


그러니 지금부터 나는 쓰레기 대신 꽃을 주기로 하자.



존 로크는 <인간 지성론>에서 인간을 ‘타불라 라사’, ‘아무 것도 쓰여있지 않은 석판’이라고 했다. 페트병이 무얼 담느냐에 따라 콜라병도 될 수 있고 간장통도 되듯이 사람도 무엇을 생각하고, 보고, 느끼고, 경험하느냐에 따라 무엇도 될 수 있다. 처음부터 꽃병인 사람이 어디 있을까? 꽃을 꽂으면 꽃병이고, 물을 넣으면 물병이다.

물론, 우리는 석판이지만, 석판이 아니고, 페트병이지만 페트병이 아니다. 이런 사물들은 인간을 표현하기 위한 기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나도 알고 있다. 우리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앞서 이야기한 사물과는 다르다. 병에 아무리 아름다운 꽃을 담는다 한들 ‘감사하다’ 말할 줄 모르며, 페트병에 식초를 담는다 한들 ‘나는 식초병이 아닙니다!’라고 소리칠 줄 모른다.

우리는 사람이다. 석판이고, 페트병이며, 도자기인 우리는 사람이다. 누가 나에게 꽃을 담아주던, 쓰레기를 던져 넣던, 계속 담고 있을지 내버릴지 선택하는 일은 사람인 나에게 달린 일이다. 그러니 지금부터 나는 쓰레기 대신 꽃을 주기로 하자. 아름다운 꽃을 나에게 꽂아주기로 하자.

처음부터 꽃병인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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