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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 인간 Dec 18. 2020

앞으로도 쭉 삶은 달지 않을 테니 계속 쓰기로 했습니다

브런치 구독자 100명 돌파(?)를 기념하며

 


 사람은 스스로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숫자와 가까이 있고, 그만큼 숫자에 연연한다. 기억을 거꾸로 올라가 보면, 대학원과 대학에서는 4.5라는 숫자가 꽤나 신경 쓰였고, 990이라는 숫자 때문에 졸업하느냐 못하느냐 전전긍긍하는 동기들을 보기도 했다.


 더 올라가 볼까? 9보다는 1에 집착하며 ‘대학 가면 너 하고 싶은 일 다 해’ 새빨간 코피를 하얀 휴지로 틀아 막던 까까머리 고등학생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더 위로 올라가면, 사실 비슷하다.


 그땐 아마 100이 최고의 숫자였었지. 숫자 100 밖에 세지 못했던 그때를 말하는 게 아니다. 100은 초등학생과 중학생 시절, 내가 숭배했던 완전수였다. 100은 특별했다. 그리고 다시 또 100이 특별해졌다.


 ‘구독자가 100명을 돌파했습니다!’


 오늘 아침 일이 있어서 탔던 여덟 시 삼십팔 분 무궁화호 기차 좌석에 앉기도 전에, 정확히는 기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들어오는 바로 그 순간 스마트 워치가 손목에서 부르르 떨었다.


 ‘카톡인가?’ 슬쩍 손목을 올려 본 화면에는 내 글을 받아 보는 분들이 100명을 넘어섰다는 브런치의 알림이 떠 있었다. ‘어? 100명이라고?’ 순간 ‘어제 내가 두시에 잠들었는데, 아직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닐까’ 손목을 살짝 꼬집어 보니 꿈은 아니다. 세상에, 구독자가 100분이나?


구독자 100명 돌파의 순간.


 “형, 브런치 해보시면 어때요?”


 나에게 브런치라는 세상을 알려준 건 내가 구독하는 브런치 작가님 중 한 사람인 일월님이었다. 사전에 양해를 구했으니 이제야 밝히자면, 그는 오래 알고 지낸 나의 동생이며, 같은 학교 동문이고, 또 지금은 글 친구이기도 하다.


 브런치를 알기 전에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을 중독 수준으로 업로드했다. 뭐, 연예인 병이나 그런 건 아니었다. 내가 생각하는 것들, 고민하는 것들을 글로 적어 올렸다.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너 그런 거 왜 올려?’ 대놓고 핀잔주는 동기들도 있었다. 와중에 일월님은 브런치를 소개했다. 그와는 학부시절 기숙사를 함께 썼을 만큼 친한 사이였기에 망설이지 않고 잠자코 앉아 설득되었다.


 “아, 나 또 떨어졌어.”


 ‘나름’ 글을 좀 쓴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름 글을 써서 먹고사는 직업을 갖고 있고, 예전부터 글쓰기 하면 첫째 손가락은 안되었어도 셋째 정도는 되었던 게 나였는데 말이다. 처음 알게 된 브런치는 얼마나 오만하고 방자하기 짝이 없는지. 글로 먹고사는 이 나를 ‘감히’ 두 번도 아니고 네 번이나 떨어뜨렸다.


 무기력해졌다. ‘내가 이렇게 글을 못 쓰나?’ ‘이 정도밖에 안되었나?’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다른 플랫폼이 눈에 들어왔다. 심사 과정이 없는 건 둘째 치고, 후원 시스템도 있더라. ‘아이 씨, 브런치 아니면 쓸 곳 없나?’ 생각하며 거기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일월님에게 말했다. ‘자꾸 떨어지는 나 자신이 비참하다. 브런치와 나는 연이 아닌 것 같다. 나는 여기서 글 쓰면서 후원으로 커피 값이라도 벌겠다.’


 물론, 커피값 정도는 벌었다. 하지만, 글쓰기가 주류가 아니었던 그곳에서 글쟁이인 나는 여전히 환영받지 못하는 나그네, 이방인이었다. 그동안 일월님은 나에게 꾸준히 브런치를 권유했다.


 만약 내가 그보다 어렸거나, 동갑이었다면 그는 내 멱살이라도 끌어와 ‘어서 브런치에 다시 글을 쓰라’며 의자에 앉혔을 거다. 아, 실제로 그렇게 하진 않는다. 일월님은 아주 젠틀하고, 상냥한 작가다. 여러분이 상상하시는 바로 그대로.


 그는 나에게 말했다. “형, 형은 형만의 무기가 있어요. 그걸 글감으로 잡고 쓰시면 어때요? 그러니까 신화나 영웅. 뭐 이런 거 말이죠.” 사실 생각을 안 했던 것은 아니었다. 번번이 떨어져서 문제였지. 그제야 일월님에게 내 글을 보여줬다. 그는 가감 없이, 하지만 친절하게 설명했다.


 “형, 형의 글은 분명 희소성이 있어요. 하지만, 아직 많이 무거워요. 신화나 영웅에 대해 공부하지 않은 사람도 쉽게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예시가 들어가면 어떨까요?”


 마치 자기 일처럼 며칠이고 몇 시간이고 전화를 걸어 비전공자의 입장에서 내 글이 어떤지를 ‘대중의 눈’으로 봐주었다. 그리고, 네 번의 ‘안타깝지만 이번에는 모시지 못하게 되었습니다’를 다시 잊고 다시 내 소개와 집필 계획에 대해 소개하는 그 페이지에 들어갔다.


 그때 ‘이런 것들을 써보겠습니다’라며 적었던 글은 지금 나의 첫 번째 브런치 북 ‘영웅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되었다. 브런치에 5번째 도전장을 던질 그때, 아직 영웅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서문은 완성하지도 못했던 때였고, 길가메시 서사시와 우트나피쉬팀에 대한 글을 작가 신청과 함께 제출했다.


 “이번에도 떨어지면 어떻게 해?”


 그럴 리 없다고, 이번에도 떨어지면 정말 브런치가 보는 눈이 없는 거라고 말했던 그의 말을 기억한다. 솔직히 당시에는 ‘그냥 기분 좋으라고 하는 말이겠지’ 생각했다. 다음날, 8월 28일 네이비색 피케티와 베이지색 치노 팬츠를 입은 날이었다. 정확히 기억한다. 스마트폰 화면을 캡처했으니까.



드디어 나도 작가야!



 ‘지이잉’ 알람이 왔다. 카톡이나 메일이 온 줄 알았다.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글 발행에 앞서 프로필에 ‘작가 소개’를 추가해주세요!’ 정말이었다. 아, 내가 쓸 수 있는 글, 나만이 쓸 수 있는 글. 이제 정말 나도 브런치 작가구나 생각했다.


 믿기지 않았다. 이야기를 해야 했다. 전날 “형, 브런치 통과하시면 바로 저한테 제일 먼저 연락 주셔야 해요.” 말했던 일월님이 떠올랐다. 신호음이 세 번 정도 간다. “여보세요...” 아직 의식이 흐리다. 늦게 잔 모양이다. “형, 제가 뭐랬어요. 축하해요.” 흥분은 없었지만, 확신은 있던 그의 축하. 그렇게 나는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이후 정말 열심히 글을 썼다. 매일 글을 올리지는 못했지만, 꾸준히 라이킷을 눌러주시는 분들을 보며 그저 ‘내게 와주신 고마운 분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쩌다 ‘**님이 내 브런치를 구독합니다’라는 알림이 오기라도 하면 나는 가슴이 터질 듯했다.


 ‘구독이라고? 이거 내 글을 꾸준히 읽겠다는 말 아닌가?’ 과몰입이고, 지나친 의미부여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매일이 행복했다. 브런치를 소개해주고, 들어올 수 있도록 인도해준 일월님에게 이 글을 빌어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많은 작가님들을 통해 읽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처음에는 브런치가 ‘쓰는 공간’이라고만 생각해서 내 작가명처럼 ‘쓰는 놈’이 되는 것에 집중하기만 했다. 물론, 내가 아는, 나를 구독해준 분들의 글도 자주는 아니지만 천천히 읽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초반에는 그저 나는 ‘쓰기만’ 집중했다.


 어느 날 늘 있었던, 하지만 아직 눌러보지 않은 탭 ‘브런치 나우’를 눌러봤다.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작가님들을 글이 양장점의 양복들처럼 세련된 모습으로 진열되어 있었다. 에세이나 시는 물론이고, 시사, 인문 교양, 스포츠, 심지어 주식이나 각종 리뷰까지 다양했다.


 쓰는 일과 읽는 일을 동시에 하다 보니 많은 분들이 내게 찾아오셨다. 감사하게도, ‘라이킷’을 한 나의 행동이 내 브런치로 누군가를 모시는 초대장이 된 모양이었다. ‘00님이 라이킷 했습니다’ ‘댓글을 남겼습니다’ ‘내 브런치를 구독합니다’ 어느새 카톡이나 페이스북, 인스타보다 브런치 알람이 손목에선 자주 울렸다.


    ‘아무렴 어때?’ 그냥 내 글만 쓰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브런치는 그런 공간이 아니었다. 글을 쏟아내는 기계들의 무덤이 아니라, 글로 소통하는 공간, 글을 쓰고 읽으며 글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브런치였다. 지난 글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나 스스로 생각했다. ‘이런 글을 누가 봐줄까?’ 하지만 그 생각을 깨 주는 수많은 알림들이 있었다.


 ‘글이 따뜻하다’며 자신의 온기를 나누어주신 분, ‘작가님의 글이 지금 당장은 다른 글에 비해 읽히지 않는 것 같아도, 이런 사유가 있는 글이 훨씬 가치 있다는 것을 기억해주세요’라며 ‘남들 잘 읽는 에세이나 써볼까’ 생각했던 철없는 나의 어깨를 두드리고 가신 분, ‘와, 저도 이런 경험 해봤는데’ ‘저도 이런 생각 해봤어요. 너무 공감해요’ 하며 공감을 살포시 두고 가 주신 분. 부족한 글이 ‘위로가 된다’ ‘깊은 사유가 느껴진다’ 말씀하시며 오히려 내게 위로를 주시고, 더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신 분들까지.


 과분하다. 너무나도 과분하다. 물론, 지금 내가 눈물겹게 감사한 100이 아득할 그 순간도 언제는 오겠지. 하지만, 그때는 또 그때고, 지금은 아직 그때다. 이제 시계는 12시 25분. 자정을 넘겼다. 어린 시절 숭배했던 숫자 100을 오랜만에 다시 보고 가슴 뛰었던 날은 지나갔다.


 이 글에 마침표가 찍히고 발행을 누르면 131명의 구독자 분들에게 ‘쓰는 놈님의 새 글’ 하고 내가 달아놓은 제목이 함께 알림으로 뜨겠지. 8월 28일부터 12월 17일까지 112일 모두의 ‘쓰는 놈’을 지켜보셨던 분이나, 며칠 사이 구독을 눌러주신 분들 모두 그런 생각을 하셨으면 좋겠다. ‘그래, 쓰는 놈이구나’ ‘당신은 여전히 쓰는 놈이구나’ 하셨으면 좋겠다.


 자기소개에 달아놓은 것처럼, 나는 인생이 ‘달지’ 않아 차라리 ‘쓰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쓰는 놈이 되었다. 앞으로도 쭉 쓰는 놈으로 남을 거다.(사실 ‘놈’이 부담스럽다고 하신 분들이 계셔서 ‘인간’으로 바꿀 거다.)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실까. 쓰는 놈/인간의 글, 댓글 그리고 모든 것들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될까.


 글쎄, 나는 모른다, 다만, 지금 막 알림을 받은 당신, 그리고 앞으로 우연히 이 글을 읽을 당신에게 이 글을 ‘쓴’ 인간/놈으로서, 그리고 앞으로도 ‘쓸’ 인간/놈으로서 잘 부탁드린다고 말씀드리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러니, 앞으로도 ‘달지’ 않은 삶에 ‘쓸’ 생각인 나를 잘 부탁드린다고 보이지는 않으시겠지만 고개를 푹 숙이며 진심으로 인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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