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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 인간 Jan 29. 2021

하얀 운동화가 잘 어울리는 남자

어느 날 신발을 선물 받았다.


"신발 사이즈 좀 알려줄래요?" 그는 신발 사이즈를 물었다. 외부에서 누가 사무실 직원들에게 신발을 선물한다고. 며칠 후 신발 받아가라는 카톡이 왔다.

   까만 종이 박스에 흰색으로 알만한 브랜드 이름이 쓰여있다. 내 신발 사이즈가 맞는지 확인하고 박스를 여니 하얀 운동화가 보인다.

   길고 날렵하게 빠진 겉모습. 하얀 신발끈이 정갈하게 묶여있다. 연락처도 남기지 않으신 채 신발만 선물하고 가신 그분의 얼굴을 잠시 상상해본다.

   하얀 신발처럼 깔끔한 차림의 신사분일까? 운동화처럼 활동적이고 쾌활한 사업가일까? 왜 얼굴도 모르는 나에게 갑자기 신발을 선물하신 걸까?

   질문들을 뒤로하고 신발을 사무실 바닥에 조심스레 내려놓는다. 갈색 로퍼를 벗고 하얀 운동화에 발을 밀어놓는다.

   몇 걸음 걸어본다. 두껍지 않은 밑창 치고는 폭신폭신하다. 동요가 생각난다. '새 신을 신고 뛰어보자 팔짝!'

   머리가 하늘까지 닿을 정도로 뛰고 싶은 마음을 정리하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좋아하는 스타일의 신발을 선물 받으니 기분이 좋았다.

   어렸을 적엔 검은색 운동화를 좋아했다. 흰 운동화는 사준다고 해도 고개를 저었다. 흰색은 싫었다. 금방 때 탈 것 같아서.

   신발장에는 갈색 구두가 두 개, 하얀 운동화가 네 개다. 물론 브랜드도 디테일도 전부 다르지만 같은 색 운동화를 네 개나 갖고 있다.

   하얀 운동화가 좋다. 아무 옷에나 잘 어울리는 흰 신발이 좋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나 보다. 누구와도 잘 어울리는 사람. 어디에 있어도 어색하지 않은 사람.

   얼굴도 목소리도 모르는 그분은 왜 까만 신발, 갈색 구두 대신 흰 신발을 선물해 주었을까? 별 뜻 없었을 수도 있다. 어쩌면 흰색을 좋아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 신발을 꺼내 신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하얀 운동화가 잘 어울리는 남자, 어디에 있어도 어색하지 않은 그런 남자,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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