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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몬트 Jul 21. 2024

여름 : 바닷마을 다이어리

살아 있는 건 다 손길이 필요하기에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원제: 海街diary, 2015




이 영화는 사계절이 모두 나온다. 하지만 처음과 마지막 장면의 배경이 여름이기에, 나에게 이 영화는 여름의 영화로 기억된다. 영화에 큰 사건이 없어 일부에게는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이 영화는 영화 속 자매들이 꼿꼿하고 건강하게 하루 하루를 건너가서인지 보고나면 기특하고 뿌듯한 마음이 들어 계절이 돌아올 때나 문득 생각날 때마다 보았던 것이 이제는 열 손가락으로 세는 것도 부족하다. 그럼에도 볼 때마다 매번 달리 보이고 다른 감정을 남긴다. 평생 동안 계속 해서 찾아볼 영화 중 하나일 것이라 감히 짐작한다.


이 영화의 감독이자 프랑스 영화제 칸느에서 자주 초청되어 세계 영화 팬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자신의 영화에서 대체로 잔잔하고 소박한 일상을 그린다. 그리고 그의 영화적 특색이라 하면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몇몇 영화를 제외하고 공통적으로 "가족" 안에서 생겨나는 에피소드를 소재로 삼고 있기도 하다. 이 영화 역시도 "가족을 버린 아버지가 남겨 준 가족"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통해 가족의 범위에서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다. 


영화의 주인공인 네 자매. 왼쪽부터 치카(카호), 사치(아야세 하루카), 스즈(히로세 스즈), 아사노(나가사와 마사미)


말했듯이 감독은 여러 번 가족에 대해 영화를 만들었다. 하지만 들여다보면 전형적인 가족의 모습과는 조금 다른 영화들이 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자신의 아이라 키웠던 아들이 알고 보니 출산 과정에서 병원의 실수로 다른 집의 아이와 바뀌어버린 두 가족을 서사로 세웠고, <아무도 모른다>는 부모라는 보호자가 자신들만 두고 도망가버린, 철저히 아이들로만 이루어진 가족이 나온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도 심상치 않은 캐치프레이즈에서 볼 수 있듯, 아버지는 외도로 집을 나가버리고 어머니 역시도 할머니에게 아이들의 양육을 맡김으로써 일찍이 철이 들어야 했던 세 자매가 어느 날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이복동생과 마주하며 이후 네 자매가 한 집에 함께 살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상기한 영화들에서 등장하는 가족들의 모습은 현실의 관점에서 비극적이라 느껴진다. 십여년 간 키웠던 내 아이가 알고 보니 다른 사람의 아이라니? 아빠는 누군지도 모르고 돈을 버느라 가끔씩만 집에 들어오던 엄마 역시도 잠적해버려 생활비도 없이 어린 동생들과 살아가야 한다니? 어찌 보면 우리 가족을 무너뜨린 데에 단초가 된 배다른 동생이 어느 날 나타난다면? 현실로 상상해보자면 숨이 턱 막히는, 절대 나에게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상황들인데 그렇다면 이 영화들은 이러한 설정을 자극적으로 그릴까? 혹은 우울하고 무거운 분위기로 이야기를 이을까? 


이처럼 현실적으로 암울한 상황을 설정하면서도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네 자매가 가족이 되어가며 겪는 소소한 에피소드들을 그려냄으로써 오히려 분위기를 담담하게 연출한다. 영화 속 인물들의 대사나 그들이 지나왔을 상황들을 돌이켜보며 부정적인 정서들이 오고가지 않았을까 짐작만 할 뿐이다. 더욱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가마쿠라 시의 자연적이고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잔잔히 흘러가는 일상들을 보여줌으로써 일본 영화 특유의 분위기 중 하나인 슬로우 무비의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오랫동안 연락을 끊고 살았던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세 자매가 듣는 것으로 시작되며 자매들이 어릴 때부터 교류를 하고 지내며 자주 찾는 식당의 주인이기도 한 이웃 아주머니 니노미야 아주머의 장례식을 다녀오는 것을 마지막으로 영화가 끝나는 등 영화에 '죽음'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이 잔잔한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다.


현실이라면 막장의 설정에, 이렇게 죽음이라는 소재가 전반에 깔려 있는데도 왜 영화를 보고나면 힐링이 되는지에 대한 대답은, 이 영화가 가지는 매력과 동시에 이 영화를 사랑하는 이유와도 연결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에서 (그나마) 극적인 사건을 이루는 세 죽음을 통해 이에 관한 대답을 대신 해보려고 한다.



1. 아버지의 장례식, 그리고 네 자매의 만남


아버지의 장례를 마치고 가마쿠라로 향하는 사치, 요시노, 치카


코다 성을 가진 세 명의 자매*는 가마쿠라에 있는 낡고 오래된 주택집에서 함께 살고 있다. 어렸을 적 아버지는 바람이 나서 상대 여성과 야반도주를  사라졌고, 어머니는 그 충격에 못이겨 자매들을 이들의 외할머니 손에 맡겨 두고 역시나 집을 나가버린다. 세월이 흘러 연로해진 외할머니는 자매들을 두고 세상을 떠났고, 짐작하건대 이것이 세 자매가 겪은 처음의 죽음이었을 것이다(그리고 이 외할머니의 흔적은 영화 곳곳에도 언급된다). 그다지 평탄하지는 않았을 유년과 학창시절을 보내고 이제는 성인으로서 첫째 사치는 간호사로, 둘째 요시노는 은행원으로, 셋째 치카는 스포츠 매장 관리 직원으로 일을 하며 저마다 좋아하는 이와 연애도 함으로써 오순도순 지내고 있다.


그러던 중 자매들은 오래 전 자신들을 떠나고 왕래가 끊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야간 근무가 있던 사치 대신 아버지가 생전 마지막까지 살던 야마가타행 기차에 몸을 실은 요시노와 치카는, 아버지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상이한 유년의 기억들(이때 요시노는 '밤만 되면 아버지와 어머니가 자주 다퉈서 슬퍼하는 어머니를 위로하는 언니의 모습이 기억이 난다'고 아버지를 회상하는 한편, 동물원에 자주 데려가주었던 상냥한 모습 말고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말하는 치카에게 '그때 넌 아직 어렸으니까'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곧 장례식에서 마주할, 아버지가 바람을 피워 낳은 배다른 여동생의 존재를 상상한다. 기차역에 도착한 둘을 반기는 것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빨리 마주하게 된 이복 여동생, 스즈. 어색함도 잠시 요시노와 치카가 묵을 여관까지 길을 안내한 스즈에게 둘은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어린 나이에도 어른스러운 아이라는 첫 인상을 갖게 된다. 장례식에 오지 못할 거라던 사치도 다음 날 참석을 하게 되면서, 이때 사치는 자신의 배다른 여동생인 스즈와 아버지의 세 번째 부인인 요코와도 인사를 나누게 된다.


네 자매의 첫 대면, 그리고 아버지의 마지막까지 곁에서 돌봐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스즈에게 전하는 나머지 세 자매


장례식이 끝나고 스즈는 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유품 중에 언니들의 사진을 본래의 주인에게 돌려주고, 사치는 즉흥적으로 스즈에게 '여기서 가장 좋아하는 곳을 구경시켜달라'고 제안함으로써 오롯이 네 자매가 있을 시간이 마련된다. 스즈는 생전 아버지와 자주 들렀던 곳이었다며 아버지를 회상하고, 그 풍경이 어쩐지 가마쿠라를 연상하기도 하여 세 자매 역시 아버지와의 추억에 잠긴다. 아무리 어른스러운 성격이라 해도 고작 중학생의 나이에 오래 전 병환으로 어머니를 떠나 보냈고 마지막으로 남은 가족이던 아버지마저 보내야 했던 스즈는 실은 자신의 아픔을 편히 털어놓을 상대가 없었을 뿐 여느 또래처럼 힘들어하고 상처를 받아왔을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야 마주하기는 했으나 평상시 아버지로부터 자주 이야기를 건너서 들었을 언니들과 함께 있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조심스럽게 눈물을 흘려보내던 스즈의 모습에 사치, 요시노, 치카는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 이렇게 잘 자라주어서 고마워.'라는 말을 따뜻한 손짓과 눈빛으로 대신하여 전한다. 


다시 가마쿠라로 돌아가야 하는 사치, 요시노, 치카. 비록 아버지가 생전 (세 번째) 결혼을 했기 때문에 스즈에게도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는 아닐지라도 새어머니가 있는 셈이지만, 그 새어머니는 스즈 말고도 본래 자신이 낳아 키우고 있던 어린 아들이 있기도 하고 몸져 누운 아버지의 병간호도 스즈가 전부 도맡아 했다는 것이 드러나기도 한 데다 심지어 장례에 참석한 조문객들에게 답례 인사를 하는 것조차 어린 스즈에게 미루는 모습을 보였기에 사치는 스즈가 그다지 오래 살지도 않아 깊은 우정을 나누는 친구도 있을리 만무한 야마가타에 스즈를 홀로 두고 떠나는 것이 신경쓰인다. 그래서 기차에 올라탄 언니들에게 다소 슬픈 눈으로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스즈에게, 사치는 즉흥적으로 가마쿠라에서 함께 살자고 제안하고 처음엔 당황해 하지만 마찬가지로 스즈가 마음이 쓰였던 요시노, 치카도 곧 웃음을 띄우며 이 제안을 생각해 보라한다. 스즈에게는 유일한 가족이었던 아버지까지 떠나면서 진짜 가족에게 가지는 유대감을 상실했던 차에 짧은 시간이었지만 스즈에게 진심을 보였던 언니들의 따뜻함에 기차가 출발하기 직전 이 제안을 승낙한다.



장면이 바뀌고 스즈의 이삿짐이 코다네 자매가 사는 가마쿠라의 낡은 집에 들어오는 것으로 이들 자매가 이른바 "스스로 선택한" 새로운 가정이 꾸려진다. 어찌 보면 가장 껄끄러울 수 있는 이 관계에서 짧은 찰나에 가정의 결합이 정말 가능할까? 이러한 의문과 우려는 정작 자매 당사자들에게서가 아니라 주변인들에게서 간접적으로 표시된다. 코다네 자매를 오랫동안 봐온 이모할머니는 장녀인 사치에게 "그 아이가 동생이긴 하지만 너희 가정을 깨뜨린 딸이지 않냐"며 언니네 손녀들이 상처받을까 걱정하고, 사치가 장례식장으로 가도록 조언하고 직접 데려다 준 것이 이후에 암시되는 사치의 직장 동료이자 몰래 교제를 하고 있는 카즈야는 부정적인 반응을 내보이지는 않지만 같이 살기로 한 선택을 대담하다 표하는 반면, 요시노가 교제하는 토모아키는 스즈의 새엄마가 스즈를 세 자매에게 떠넘기고 아버지가 남긴 유산도 독차지했으니 일석이조였겠다며 흉을 본 후 손사레 치는 요시노를 보고는 "자긴 사람이 너무 좋다"고 경고하듯 말하는 것이 그 예시이다.


아마 현실에서도 대부분의 사람은 자매의 주변처럼 반응을 할 것이다. 하지만 이들 자매에게는 그러한 고민은 애시당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비단 이 자매들의 선한 성정에서만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장례식을 마치고 나와서 세 자매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혹은 원망을 쏟아내기 보다는 앞으로 살아가야 할 이복동생인 스즈에 대해 걱정한다. 한편 자신의 어머니와 아버지까지 어린 나이에 두 번의 죽음을 목도하며 오랜 기간 동안 자신의 나이보다 더 어른스러워야 했을 스즈는 아버지의 생전 자주 함께 왔다는 장소에서 꼭 가마쿠라 같다는 세 자매의 말을 듣고 왜 아버지가 말년에 이 곳으로 오기로 결심했는지 알게 되었다며 자신의 이복 언니들 사이에서 아버지의 부재를 위로받는다. 이들 자매가 아버지에 대해 느끼는 유대는 각기 다를지라도 아버지를 상실했다는 것은 동일하다. 부모의 부재를 이미 오래 전부터 겪은 세 자매와, 이 부재를 가장 크게 겪고 있는 막내 스즈는 말하자면 주변의 죽음을 경험한 이들이다. 이 네 명의 자매는 그렇기에 죽음 속에서도 헤엄을 치며 다른 살아있는 사람들과 어떻게든 살아내야 한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았을 것이다. 주변의 어른과 기존의 가족에게서 유년을 상처로 얼룩지워야 했지만 세 자매가 끈끈하게 서로를 지탱하며 그 시기를 건너왔듯, 이제는 스즈에게 손을 내밀어 상처를 주는 가족이 아닌 살아 있기에 서로를 보듬어 주는 새로운 가족이 되자 말한다. 가족에게서 받은 아픔을 외면할 수 있었을 텐데도 이들이 내리는 결정과 새로운 가족의 형성이 그래서 기특하고 너무나 찬란해 응원해지고 싶은 것이다.



2. 세 자매의 외할머니의 2주기, 갈등과 화해


스즈가 가마쿠라로 이사를 오고나서도 네 자매의 주위에는 항상 죽음이 곁에 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네 자매가 함께 살게 되었듯, 가마쿠라의 낡은 집에 부모 대신 세 자매를 키워 주었던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의 사진은 거실 옆에 고스란히 마련되어 있고 스즈가 이삿짐을 정리한 후 조부모의 사진 앞에 앉은 치카에게서 이 외할머니의 존재에 대해 처음 듣기도 한다. 


세 자매는 어릴 적부터 자라 온 곳이기에 서로가 익숙하지만 스즈에게는 적응의 시간이 필요하다. 가령 사치와 요시노가 투닥거리는 것을 보고 싸운다고 염려한 것에 치카가 '저렇게 평소에 말투가 서 있어도 제일 합이 잘 맞는 것 또한 둘'이라며 대수롭지 않은 듯 대답하는 장면이나, 실연이나 직장에서의 고민 등으로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고타츠에 모여 앉아 한탄을 하며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왔던 세 자매들의 곁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기 보다는 옆에서 숙제를 하면서도 자매들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는 장면에서 이러한 스즈의 어색함이 묻어난다.


가마쿠라의 명물인 잔멸치 덮밥을 스즈가 처음 먹는 거라 생각한 세 자매의 기대하는 얼굴, 이 장면 참 좋다!


그런 스즈에게 세 자매는 가을, 그리고 겨울을 보내면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다가간다. 고타츠에 모여 앉아 신세 한탄을 하는 다른 자매들처럼 스즈에게도 힘든 일이 있으면 말하라며 장녀 사치는 어른스럽게 스즈를 챙기고, 관심사가 연애 혹은 술인 요시노는 스즈에게도 좋아하는 남자애가 없냐며 자신의 관심사와 공통될 소재를 꺼내며, 스즈가 들어오기까지는 막내였던 치카는 특유의 애교로 스스럼없이 치카를 대하며 학교 내외적으로 치카가 가마쿠라에 잘 적응할 수 있게끔 도와준다. 이 자매들의 바람은 그저 스즈가 자신들과 함께 살며 행복하기를, 자신들에게 상처를 주었던 부모의 잘못된 선택과 뒤이은 상실로 빨리 어른이 되어야 했던 스즈가 자신들 곁에서만큼은 또래의 장난스럽고 철없는 중학생으로 돌아감으로써 자신들이 잃은 유년을 스즈 역시 잃지 않도록 지켜주려는 것이다.


점차 스즈에게도 머뭇거리고 어색해 보였던 첫 만남에서와 달리 줄곧 웃음을 터뜨리는 날이 많아진다. 이제 사치와 요시노의 투닥거림이 깊어진다 싶을 즈음 치카와 눈을 교환하고는 말을 끊는 재주까지 생기며, 언니들의 어릴 적부터 추억이 깃든 바다고양이 식당에서 주인 아주머니인 니노미야 사치코가 들려주는 언니들의 유년 시절을 들으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요시노가 잔소리 대마왕이라 불릴 정도로 부모의 빈 자리를 대신해서 요시노와 치카를 엄하게 키워왔던 사치는 스즈가 괜히 눈치를 볼 것을 염려해 따뜻하게 대해주다가도 시간이 지나 같이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을 때 급하게 식사를 하는 스즈의 모습을 보면서 '빨리 먹는 거 치카 보고 배웠네!' 하며 스즈에게도 잔소리를 하는 모습은 자매 자신들이 선택한 가정에 온전히 적응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봄, 새 학기가 시작된 스즈는 계절을 건너가며 쌓인 언니들과의 유대가 소중해질 수록 점차 자신의 존재가 언니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에 더 고민이 깊어지는 모습이 간접적으로 나타나는데,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친구들과 잔멸치가 올라간 토스트를 먹으며 아버지와 둘이 살 때 자주 만들어주던 추억을 떠올리면서 동급생인 후타에게 이러한 추억을 언니들에게는 털어놓을 수 없다고 말하는 장면에서이다. 다른 언니들은 한편 외적인 변화를 맞이한다. 사치는 일하던 병동의 선배 간호사에게 새로 생기는 터미널 케어 병동의 이직 자리를 추천 받은 후 나아가 카즈야로부터 지지부진하게 관계를 이어왔던 부인과 드디어 이혼을 할 것이고 미국의 병원에서 연수를 받을 것이라며 함께 가자는 프로포즈와 같은 제안을 듣는다. 요시노는 이번이야 말로 정상적이라 여겼던 토모아키로부터 돈도 떼이고 일방적으로 이별을 선고받음과 동시에 창구에서 일하던 업무에서 과장과 함께 대출 및 융자 등을 상담하는 외근직으로 전향한다. 치카는 다른 세 자매에 비해서는 비중이 덜하나 자신이 일하는 스포츠 매장의 점장이 이전에 일부 발가락을 전달해야 했던 등정을 계속해서 그리워하고 있음을 알고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보지 못할까 다소 초조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 점에서 부모에 대한 추억을 네 자매가 제각각 다르게 기억하고 있다는 점은 자매 간의 거리감을 증폭시킨다. 첫째 사치는 아버지가 다른 여성과 사랑에 빠져 가정을 버렸을 때 중고등학생이었다는 점으로 이미 상황에 대한 판단과 스스로 결정을 할 수 있는 나이였다. 다만 아버지가 떠난 후 이혼의 아픔을 이기지 못해 아이들을 할머니에게 맡긴 채 무책임하게 떠나버린 어머니에 대한 분노가 더 컸기에 아버지에 대해서는 '착하긴 해도 제대로 끊지를 못하는 사람', '정이 너무 많아 민폐를 끼치는 사람'이라는 유보적인 평가를 하기도 한다. 둘째 요시노는 사치만큼 당시 크지는 않았지만 아버지와 자주 다퉈 슬퍼하는 어머니와 그녀를 위로하는 언니의 모습이 기억난다는 대사를 통해 자신의 가족을 둘러싼 상황이 어떤 것인지를 어느 정도는 파악하고 있었음이 묘사된다. 다만 요시노 역시도 사치와 마찬가지로 자신들 자매를 떠난 아버지에 대한 분노는 그다지 드러내지 않고 오히려 부고 소식을 들었을 때 "굳이 안 가도 되지 않겠냐"고 말하거나 다른 자매들의 회상에 '그래, 그랬었지'라며 아무 감정도 드러내지 않는 반응을 보임으로써 아버지에 대해 무관심한 것으로 보이거나, 혹은 어머니에 대해서는 '아버지가 잘못을 했으니 (우리를 할머니의 손에 맡겨두고) 이 집구석에서 떠날 만 했다'며 언니보다는 어머니를 더 이해하고 동조하는 모습으로써 아버지에 대해서 분노의 시기가 있었으나 영화 속 시점에서는 이미 시간을 많이 지나왔기 때문에 어느 정도 분노와 원망에서 해소되었거나 초연해진 것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실제 영화 초반부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듣고서 당시 함께 있던 남자친구에게 '별일 아니야'라고 말한다던지, 아침 식사를 하던 와중에 '그 여자가 (부고 소식을 알리러) 연락했냐'며 태연하게 묻기도 한다. 셋째 치카는 부모들이 자신을 떠날 당시 고작 네 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 아이였으므로 어른들의 속사정이나 복잡한 감정다툼들을 이후 언니들에게 이야기를 듣거나 본인이 알아서 짐작해가며 성장했을 것이라는 점을 추측해볼 수 있다. 어릴 때 아버지는 동물원에 자주 데려가주는 등 상냥했다며 회고하거나, 동생 스즈에게 '네가 나보다 아버지와 더 오래 지냈으니 언젠가 아버지에 관련된 이야기를 들려달라'며 웃는 등 네 자매 중 부모에 대한 정보가 가장 없지만 어린 아이가 가졌을 동심만은 남아 있어 부모를 나쁘게 평가하지 않는다. 반면 스즈는 부모에 대해 가장 복합적인 심리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자신이 아버지의 외도로 태어난 사실을 언제부터 알게 되었는지는 영화에 드러나지 않으나 마찬가지로 이른 나이에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이후 아버지가 세 번째 부인을 만나 졸지에 새어머니와 어린 이복동생이 생긴 것도 모자라 아버지마저 이어서 병환으로 떠나보냈던 만큼 스즈에게 있어 부모는 자신이 태어나 삶을 누릴 수 있는 기쁨을 안겨주었으나 그 삶을 죄책감으로 얼룩지게 해버렸고 끝으로 스즈가 앞으로 살아가며 방패막이 되어주지도 못한 채 일찍 스즈 곁을 떠나버림으로써 결과적으로 함께 했던 추억이 많지만 동시에 마음껏 추억할 수 없도록 상황 속에, 그리고 앞으로의 생 속에 홀로 남겨져 버린 상처 또한 갖게끔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네 자매가 모여 함께 살아가는 데에 있어, 언니들은 스즈에게 먼저 자신들과 같이 살자고 제안하는 등 스스럼없이 대하지만 반대로 스즈는 자신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언니들을 사랑하고 따르면서도 문득 문득 튀어오르는 태곳적 죄책감과 부모에 대한 원망으로 자신을 억누르며 살아가는 것이다.


코다네 자매의 어머니, 니노미야 아주머니가 운영하는 바다고양이(우미네코) 식당.


예컨대 네 자매의 서사와 동시에 비중 있게 그려지는 바닷고양이 식당의 주인인 니노미야 사치코에게는 정 반대의 상황이 펼쳐지는데, 일찍이 집을 나가 가족과 관계가 원만하지 않았던 동생이 니노미야의 어머니가 죽고 나서 자기 몫의 유산을 달라며 니노미야를 힘들게 군다는 것이 드러난다. 이로 인해 평소 건강이 좋지 않았던 니노미야의 병세가 더욱 악화되었기 때문에, 니노미야의 눈에는 어른들 사이에 이런저런 일이 있었어도 자매들끼리 선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스즈에게 너라는 보물을 남겨 부모님이 뿌듯하시겠다는 진심 어린 말을 건네는 것이다. 반면 스즈는 선한 언니들에게서 아버지를 빼앗았다는 죄책감 때문에 자신은 보물 같은 것이 아니라며 자조하는 장면은, 아마도 감독이 관객에게 던지고 싶었을 '진정한 가족이란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 한 울타리 내에서 태어난다고 가족인가, 혹은 만들어지는 가족 또한 가족 아닌가'라는 질문을 간접적으로 담고 있다. 


스즈가 언니들 앞에서는 애써 숨겨 왔던 이 자책감과 이러한 스즈를 불안하게 지켜보던 세 언니들의 불안은 언니들의 외할머니의 7주기에서 최고조에 이른다. 여기에 사치, 요시노, 치카의 어머니가 7주기에 참석하면서 네 자매가 사는 가마쿠라의 집을 처분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청천벽력과 같은 말을 꺼내고, 엄마는 우리를 버리고 일찍이 집을 나갔기 때문에 이 집의 처분권이 없다고 반발하는 사치에게 애초에 집을 나간 원인은 바람 난 너의 아빠 때문이었다는 언쟁으로 스즈의 표정은 점차 무거워진다. 이러한 갈등은 엄마가 돌아간 날 오후까지도 사그러지지 않고 이제는 요시노까지 이러한 상황이 생길 줄 알았으면서 스즈를 데려온 것은 엄마를 위한 사치의 개인적인 복수가 아니냐며 그 복수에 스즈를 이용하지 말라는 일갈을 함으로써 언제까지 여기서 평생 살 수는 없다며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을 되짚는 반면, 사치는 이렇게 자매를 키워내는 것은 자신의 책임이라며 강경하지만 흔들리는 눈빛으로 답한다. 그날 저녁 결국 자매들은 화해를 하고 다음 날 엄마 역시 다시 찾아와 자신의 자식들을 대신하여 길러준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경의를 표하면서 사치와 갈등이 누그러지기는 하지만, 사치에게만 조심스럽게 "부인 있는 남자를 사랑하다니 옳지 않았다"며 자신의 부모에 대해 도덕적 판단을 하는 스즈를 보면서 사치 역시 생각이 깊어진다. 이 말은 스즈가 늘상 해오던 자조 섞인 말이었으나, 실제로 부인 있는 남자를 사랑하고 있던 사치 역시 자신이 바람이 난 아버지로 인해 가정이 깨진 피해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자신이 가정을 깨고 있는 가해자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짚어주는 것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외할머니의 존재는 어쩌면 스즈와 스즈의 언니들이 절대로 화합할 수 없게 만드는 상징과도 같다. 사치, 요시노, 치카에게는 유년 시절 부모로부터 버림 받았기 때문에 부재한 부모의 자리를 채워주었던 외할머니는 달리 말해 유년의 상실을 의미한다. 스즈에게는 기실 언니들의 외할머니일 뿐 직접 만난 적도 없고 기실 자신과는 관계가 없으나 가마쿠라에 오면서부터 이 외할머니로부터 언니들이 유년의 상실을 메우려고 노력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짐작하게 되면서 외할머니는 의도하지는 않지만 스즈에게 죄책감과 자기 부정을 안기게 하면서도, 언니들의 성장을 도와준 데에 감사함을 가지는 존재이다. 영화에서 이렇게 잠시 갈등이 봉합된다 하더라도, 이러한 외할머니의 부재는 끊임없이 자매들을 흔들어 놓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제 우리는 안다. 이 자매들은 일년 가까이를 보내며 이미 서로에게 단단한 가족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온전히 넷이어야 완성되는 이 가족을 말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갈등이 앞으로 전혀 없지 않겠지만, 다시 봉합되고 화해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3. 니노미야 아주머니의 장례식, 더 단단해질 가족


다시 돌아 여름. 아버지의 부재는 여전히 자매들 곁을 맴돈다. 어느 날 치카와 스즈는 외할머니가 자주 해주시던 것이라며 어묵을 넣은 카레를 함께 먹는데, 아주 어릴 적 부모님과 이별해야 했던 치카에게는 이 어묵 카레가 자신에게는 유년을 떠올리게 하는 맛이라 전한다. 반면 잔멸치 덮밥에 대해 이미 아버지가 자주 만들어줘 알고 있었음에도 괜히 이야기를 꺼내 언니들을 상처주지 않고 싶었던 스즈는 치카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는데, 치카는 "그렇구나" 라며 담백히 답하고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스즈에게 더 많을테니 그 기억을 앞으로 찬찬히 들려달라 웃으며 말한다. 



그 사이 사치는 미국에 함께 가자는 카즈야의 제안을 거절함으로써 카즈야와의 관계를 정리한 후 터미널 케어 병동으로 이직을 결심한다. 여전히 스즈는 해소되지 못한 자기 부정의 감정이 있어서, 이를 오히려 언니들 앞이 아닌 친한 친구인 유야에게 "내가 여기 있어도 될까, 나의 존재로 상처 받는 사람들이 있는데"라는 솔직한 심경을 말하기도 한다. 그러다 주위 사람들에게 어린 시절을 잃어버려 어려서부터 책임감을 가져야 했던 점에서 공통점이 있던 사치와 스즈는 함께 가마쿠라의 전망이 보이는 산을 오르게 되고, 첫 만남 때 아버지와 자주 올랐던 곳이라며 스즈가 소개했듯 사치는 이 곳이 유년 시절 자신이 아버지와 자주 올랐던 곳이라며 스즈에게 안내한다. 그러면서 사치는 탁 트인 허공에 "아빠 바보!" 라며 가혹한 운명을 자매들에게 준 데에 대한 원망 섞인 말을 시원하게 토해내고, 뒤이어 스즈 역시 이번엔 "엄마 바보!"라며 외치다가 "더 오래 있고 싶었는데.." 하며 결국 본의 아니게 책임을 가져야 했음에도 부모의 사랑을 그리워 하고 있는 결국 어린 아이였을 뿐인 모습으로 사치에게 울며 안긴다. 사치는 드디어 자신에게 진심으로 전한 스즈에게 반갑고 기특하다는 듯 "엄마에 대해 우리에게 얘기해도 돼"라며 "여기가 네 집"이라는 것을 분명히 전달한다. 여기에 언제까지나 있고 싶다는 스즈의 화답으로 이 가족은 더욱이 단단해진다.



비교적 짧은 투병 기간을 지내고 생을 마감한 니노미야 아주머니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네 자매는 다시금 상복을 꺼내 입는다. 스즈가 가마쿠라에 와 언니들과 함께 살기로 하면서 죽음은 자매들의 곁을 계속해서 떠나지 않은 것이다. 가까이 지냈던 네 자매는 장례식장에서 니노미야 아주머니의 부재에 슬퍼하지만, 다른 한편 그녀가 유언 격으로 남긴 "아름다운 걸 아직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어 행복하다"는 말을 듣고 생각에 잠긴다. 장례식을 나와 잠시 바닷가에 들른 가운데 스즈는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남겼던 유언 역시 같았다며 다시금 같은 대사를 읊는다. 아름다운 걸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어 행복하다. 이 대사는 글 초반에 던진 질문인 '비관적인 설정에 죽음이 항상 등장함에도 이 영화를 보며 왜 따뜻함과 포근함을 느끼는가'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다. 죽음을 경험하였기에 자매들은 살아 있음의 아름다움을 안다. 그 아름다움을 보살피며 아름답고 여기는 데에도 생의 시간은 부족하다. 사치, 요시노, 치카, 그리고 스즈는 서로가, 그리고 직접 선택한 서로를 모아주는 이 가족이 그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알기에, "마지막엔 어떤 생각이 들까" 하는 질문에 스즈는 "많이 생겼어"라고 답하며 언니들과의 살아갈 날들을 행복한 미소로 그리고, 밀려오는 파도에 발을 담그며 까르르 웃는 스즈를 바라보며 다른 세 자매는 아버지를 끝내 원망스럽다고 표하면서도 다정스러운 사람이었을 거라고, 그것은 우리에게 이런 여동생을 남겨 주었기 때문이라며 마찬가지로 스즈와 함께 네 자매가 그려 나갈 앞으로의 날들을 상상한다. 


영화의 영어 제목이 Our little sister이라는 점을 떠올려 보면, 이 마지막 대사는 가마쿠라에 사는 조금은 외롭게 자랐을 코다네 세 자매가 스즈라는 선물과도 같은 이복동생을 만나 쌍방으로 잃어버렸던 가족의 가치를 되찾는 것과 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나는 부지런하고 느린 선함이 빠르고 자극적인 나쁨보다 나으며 선함이 다른 선함을 알아본다는 말을 믿고 싶은 사람이기에 정확히 이런 메시지를 담고 있는 영화가 그래서 반가웠는지 모르겠다. 원작인 동일한 제목인 만화책을 2권까지였나 사두었는데 유학을 오면서 다 읽지 못했다. 언젠가 만화책을 읽으며 이들의 더 전개된 이야기를 보고 싶다. 그리고, 가마쿠라 어디선가 이 자매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믿으며. 가족에 대해, 그리고 선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를 두고 두고 찾아보리라.



* 첫째 사치, 둘째 요시노, 셋째 치카와 이복동생이자 막내인 스즈는 아버지가 같아서 일본의 문화에 따라 성씨가 같은 줄 알았으나, 막내 스즈만이 아버지의 성씨인 아사노를 쓰고 나머지 자매들은 어머니의 결혼 전 성인 코다를 쓴다. 보통 부모가 이혼을 해도 자녀들이 성을 바꾸기란 흔치 않은 일인데, 이 과정에서 영화보다 나이가 어렸을 자매들이 겪었을 고민과 혼란들이 간접적으로 암시된다. 그리고 막내 스즈의 입장에서도 언니들과 다른 성씨라는 것으로 가족으로서의 소속감을 가지는 것에 불안해 하거나 죄책감을 느낄 수 있는데, 더욱이 스즈 자신의 어머니가 언니들과 언니들의 어머니를 불행에 몰아넣은 당사자였다는 상황에서 이 영화적 설정이 스즈에게도 참담하고 곤란한 장치라는 것이 더 증폭된다. 물론 일본은 성씨를 바꿀 수 있는 권리를 법률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향후 스즈가 언니들과 같은 성을 쓸 수도 있겠지만, 남들이 불가능하다거나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았던 네 자매의 결합부터 정작 자매들끼리 탈 없이 순탄하게 이어왔기 때문에 성씨는 형식과 다름없다는 생각으로 계속해서 언니들과 다른 성씨로 살아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스즈는 언니들을 가족으로 생각하고 아버지와의 추억 역시 소중히 여기지만, 다른 한편으로 아버지와 자신의 어머니가 생전 저지른 잘못을 감내해야 한다는 너무나 일찍 철이 들어버린 아이이기 때문에 오히려 본인이 이러한 점을 잊지 않고자 아사노라는 성씨를 고집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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