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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읽는 인간

중요한 것은 절대 사라지지 않아

유럽의 교육 | 로맹 가리 지음

by 김담유

로맹 가리의 『유럽의 교육』이 원제를 찾아 다시 소개되어 무척 반갑다. 시기가 시기이니 만큼 이 책이 남다르게 다가오는 이유를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2003년 3월 20일 미국의 일방적 침략으로 시작된 이라크전의 현장이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에서 방영될 때, 팔다리가 잘린 채 침상에 누워 있는 아이들의 고통이나 미군의 찝차를 따라붙으며 물이나 음식을 구걸하는 아이들의 불안한 눈을, 우리는 노력하지 않아도 자주 접할 수 있었다. 질서가 사라진 삶터, 이성과 합리적 행동이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발견할 수 없는 폭력과 만행의 현장에 내팽개쳐진 아이들은 그야말로 야성적 본능으로 삶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더불어 꿈을 키워야 할 시기에, 부모님이나 형제들의 품속에서 삶의 행복을 만끽하기에도 모자란 시기에, 이라크의 아이들은 짐승이 되는 법을 먼저 배우고 있는 것이다. 폭격과 총격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이 아이들은 이로써 모두 테러리스트의 인자를 갖게 되지 않을까. 그러나 스스로 테러리스트를 키운 강자들은 이 사실을 결코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이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벌이는, 힘을 가진 자들이 펼치는 한 판 신기루 같은 서커스는 종내 오장육부에 파고드는 암 덩어리로 자리할 것이 분명한데도 말이다. 이 아이들의 눈은 무엇을 보았으며 또 앞으로 무엇을 보게 될 것인가. 『유럽의 교육』을 읽는 동안 이 아이들의 두 눈이 무시로 떠올랐던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의사 아버지의 죽음 이후 혼자 남겨진 소년 야네크가 산속에서 생명에 대한 원초적 본능으로 살아나가는 과정을 그린 『유럽의 교육』은 다음과 같은 전언을 전한다. “중요한 것은 절대 사라지지 않아!”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전쟁, 습격의 기회를 엿보며 굶주림과 추위의 나날을 견뎌야 하는 빨치산들의 고통스러운 현장에서 소년 야네크는 여러 위기를 겪으며 마침내 삶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나 삶을 받아들이기까지 야네크가 겪어야 했던 공포와 절망은 작지 않다. 아버지가 죽고 혼자 남겨졌다는 것을 알게 된 야네크는 이제 모든 사람들을 의심하게 될 것이며, 절대로 변치 않는 사실이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며, 남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었다. 그러나 야네크는 아직 꿈을 포기하지 않은, 미래를 절망하지 않는 건강한 빨치산들을 만나게 되고 창녀짓을 하며 근근히 먹고사는 소녀에 대한 연민과 사랑으로 자신의 고통을 추슬러 나가기 시작한다. 함께했던 이들이 총격으로 사망하고 하나둘 곁을 떠나가는 날이 오지만 야네크는 절망의 한복판에서 만났던 삶의 얼굴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는 믿음이 사람과의 따뜻한 교류를 통해 질박하게 생겨났기 때문이다.


자기 앞의 생』에서도 부모들에게서 버림받거나 태어나면서부터 혼자일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진 아이들에 주목한 로맹 가리는 소년소녀들의 고통스러운 성장담을 통해 인간 사회의 단절과 분열은 물론 원초적 공포와 절망을 있는 그대로 제시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는 듯하다. 이 지옥을 벗어나는 방법은 무엇일까. 어느 날 갑자기 부모가 죽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질 수 있고 내 팔다리마저 잘려나갈 수도 있는 세상에서 중요한 것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는 희망이나 믿음은 로맹 가리가 버리고 싶지 않은 꿈 중에 하나일 것이다. 무엇보다 인간 세상이 보호막 없는 난장, 전장과 다르지 않다는 절망적 인식이 있기에 그의 꿈이 한층 애절하게 다가오는 것일 터이다. 그가 버려진 아이들에 주목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인간의 시스템, 체제가 갖는 이러한 본질적 모순 속에서는 어느 특별한 아이만이 버려지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가 버려질 수 있다는 사실을 그는 말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때문에 ‘유럽의 교육’은 누구나 읽어야 할 책인 동시에 강자들이 먼저 읽어야 할 책이라 생각된다. 누구에게나 유년이 있고 그 유년은 유년이기 때문에 보호받거나 존중되어야 할 것이다. 타인의 유년을 훼손해야 할 까닭은 그 누구에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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