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패자 | 레너드 코언 지음
「I'm Your Man」 등의 노래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레너드 코언의 장편 소설 『아름다운 패자Beautiful Losers』가 국내에 처음 완역되었다. 서양의 포크 음악을 이야기할 때면 밥 딜런과 함께 반드시 언급되는 코언이 시인이면서 소설가라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일군 문학 세계는 서구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사를 논할 때면 빼놓지 않고 이야기될 만큼 작품성과 실험성을 크게 인정받았다. 그중 두 번째 장편 소설인 『아름다운 패자』는 영문학도의 필독서 『노튼 영문학 개관』에 실릴 만큼 그 문학적 실험성을 인정받았고, 70년대까지 수십만 부가 팔려나갈 만큼 독자들의 사랑도 크게 받았다. 사실주의 관습에 거의 얽매이지 않고 쓴, 마치 한 편의 산문시인 양 언어적 실험과 긴장감이 팽팽한 이 작품을 한국어로 읽게 된 것은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사랑하는 아내와 친구를 잃은 이름 없는 화자이자 인디언 A족 연구의 권위자인 익명 화자, A족의 마지막 일원이자 익명 화자의 젊은 아내인 이디스, 그리고 그들의 친구이자 정신적 지주인 F가 벌이는 사랑과 성장 이야기. 줄거리가 뚜렷한 소설이 아니기에 이 책의 스토리를 요약하는 일은 쉽지 않다. 다만 이 간단한 구도 안에 현재와 과거, 현실과 환상, 성애와 신성, 백인과 인디언, 아메리카 개척사와 인디언 신화, 종교와 정치, 시와 선동적인 선언문이 경계를 지우며 넘나들고, 여기에 광고, 영화, 포르노, 만화, 라디오, 유행가 가사 등 대중문화 요소가 덧대며 만들어가는 예술적 무늬는 가히 환상적이라 할 만하다. 같은 영어권이지만 영국도 미국도 아닌 캐나다, 그중에서도 프랑스령 퀘벡의 혼종 문화를 배경으로 한 탓인지, 조화를 이루기 어려운 이질적인 것들이 한데 엉켜 형성하는 미학이 마치 만화경 속 세상을 들여다보듯 현란하고 아름답다.
하지만 이 책을 가장 돋보이게 하는 것은 모순투성이 인간 ‘존재’와 인류가 만들어낸 ‘시스템’, 그리고 그것들이 삐거덕거리며 굴러가는 ‘세계’에 대해 작가 코언이 갈파하는 시적이고도 철학적인 통찰이다. 음유시인, 음유수도승이라는 수식어가 꼭 알맞게 팽팽한 세상의 질서에서 한 발 물러선 지점에서 존재와 세계가 만들어내는 불협화음을 리듬으로 바꾸어놓는 그의 목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혼란이 반드시 혼란인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된다.
이 책을 원고 상태로 처음 읽었을 때는 다소 당황스러웠다. 무슨 이야기인지 전혀 짐작하기 어려운 데다가 노골적이고도 파격적인 성애담에 어찌할 줄을 몰랐기 때문이다. 오케이 교정을 보며 글자 하나하나를 씹어 먹듯 읽었을 때는 절규에 가까운 코언의 노래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서평을 위해 다시 읽는 지금은 이 책이 무척 슬픈 음악이고 그래서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특별한 책이 우리에게 왔다. 많은 이들이 이 책에 담긴 자유와 해방감을 만끽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2008년 6월 어느 날엔가 쓴 편집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