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슈비츠 이후 예술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 이상빈 지음
『아우슈비츠 이후 예술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의 저자 이상빈은 개인의 아픔을 사회적 환부로 확장시키려는 진지하고 열성적인 불문학자이다. 사회의 환부란 다름 아닌 ‘아우슈비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 자행되었던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상상을 불허하는 인간 광기가 극단적으로 표출된 곳이자 인류사의 씻을 수 없는 상흔이다. 저자는 어떤 연유로 자신의 문제도, 한국 사회의 문제도 아닌 유럽의 아우슈비츠 문제에 천착하게 되었을까?
저자는 이산가족의 자식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어린 시절을 억압했던 주제는 바로 ‘이산’이었고 지금도 그것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고 한다. 다만 미학적 극복을 시도할 만큼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성장했다. 이 책은 그 미학적 극복을 위한 시도 중 하나이다. 프랑스 유학 시절 당시 저자는 “당신은 유대인인가”라는 질문까지 받았다고 한다. 한 동양인이 아우슈비츠 문제에 갖는 관심과 연구는 현지에서도 이색적이었으리라. 한국에 있든 프랑스에 있든 이방인이자 분리된 자라는 의식이 저자를 고통스럽게 했을 거라는 추정은 어렵지 않다. 다루고 있는 소재와 주제의 이례성이 충분히 이 책을 주목하게 만들지만, 이 외에도 문학, 역사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논의를 전개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주변인으로 살아가야 했던 저자의 분투와 그렇기 때문에 가능한 다층적인 관점을 접하게 된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아우슈비츠 이후에도 문학이 가능한가? 대량 학살을 예술화하는 것은 정당한가? 문학 연구는 역사와 이데올로기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 이것은 지금 수용소 문제를 두고 서구에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역사적, 미학적, 문학적 논쟁들이라고 저자는 전한다. 이러한 논쟁이 유럽 지성계에 불붙은 데에는 전 인류를 충격에 빠뜨린 유대인 학살도 어쩔 수 없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잊힌다는 사실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유대인 학살에 대한 미학적 형식화를 시도하려는 입장과 그것을 사실 차원으로 보존하려는 기존의 입장이 그 어느 때보다 팽팽히 맞서고 있다고 보고한다.
하지만 이 책은 아우슈비츠 이후에도 예술은 존재한다고 보고, 어떤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는지를 다방면으로 탐구한다. 역사와 기억이 사라질 때 남게 되는 것은 예술의 몫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또 유대인 학살 문제는 우리와는 동떨어진 듯한 문제로 보이지만 역사에 대한 총체적 이해와, 그 이해를 바탕으로 한 예술 전반에 대한 성찰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결코 우리와도 멀지 않은 문제임을 환기시킨다. 문학과 역사, 그 외 다양한 예술 형식에서 아우슈비츠 문제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논의되고 있는지는 직접 책장을 펼쳐 확인할 일이다. 다만 마지막 장에서 저자가 전하는 유럽의 분위기를 다시 한번 환기해보자. 저자가 전해주는 유럽의 모습은 518 광주민중항쟁이라는 상흔을 안고 있는 우리에게도 남의 일만은 아닌 듯하다.
‘기억하라’는 유대적 명제는 유럽의 문화를 짓누르고 있다. 기억은 대부분 고통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하기에 그 모습을 극히 무겁게 만들고 있다. 죽은 자들의 망령은 도처에서 여전히 산 자의 머리 위를 맴돌고 있고, 당분간 유럽의 모든 문화 현상이 아우슈비츠에 대한 기억에서 빠져나올 수 없음이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