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페미니즘 | 팸 모리스 지음
팸 모리스의 『문학과 페미니즘』 가운데 제1장 「다시 바라보기 : 여성의 읽기」는 〈남성이 만들어낸 여성 이미지 다시 읽기〉, 〈서사적 관점에 저항하기〉, 〈구조 : 여성의 운명을 다시 짜기〉라는 소 항목 아래 문학에서 페미니즘이 취해야 할 기본 관점을 제공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다시 바라보기(re-vision)’이다.
현 단계의 페미니즘은 보통 1960년대에 시작된 것으로 간주되는데, 당시 미국에서는 시민의 권리를 얻기 위한 격렬한 정치적 시위가 한창이었고 프랑스에서는 68혁명의 성과로 드골 정부가 하야하는 상황이었다. 당시 여러 정치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여성들은 자유와 평등의 수사를 구사하던 남성 동료들이 여전히 남녀를 차별하는 틀에 박힌 가정들에 기초하여 여성을 바라보고 있음을 발견하고는 실망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60년대 후반의 페미니즘은 여성들이 그들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언어적, 시각적 이미지들에 똑같이 대항함으로써 정치적 실천 속에서 그들 스스로를 재현해야 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여성들의 투쟁의 역사는 1960년대에 시작된 것이 아니다. 문명이 생겨난 이래 수많은 여성들이 그들에게 불평등한 위치가 부여되고 있고 또 이를 유지하기 위해 남성들이 여성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음을 민감하게 의식해왔다. 페미니즘 연구는 여성들의 항변, 그들의 창조성 그리고 이를 담고 있는 작품의 전통, 다시 말해 인식되지 못하거나 상실된 채로 지속되어온 그 전통을 재발견하는 데 역점을 둔다. “그의 이야기(history, 역사)뿐 아니라 그녀의 이야기(Her-story)”를 회복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여성들은 끊임없이 남성들에 의해 잘못 읽혀지고 있는 것일까.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은 그러한 문제에 답한 최초의 시도로 여겨진다. 보부아르에 따르면, 남성들이 끊임없이 여성들을 그들의 타자로 간주하기 때문에 남성들에 의해 재현되는 ‘여성’은 이중적이고 기만적인 이미지를 갖게 된다. 그리고 남성은 자신이 욕망하는 것과 두려워하는 것 또 사랑하는 것과 미워하는 것을 동시에 여성에게 투사함으로써 여성을 신비화시킨다. 신비화는 공포와 기대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공포와 기대는 여성과 남성이 서로를 이해하는 데 장애물로 작용하여 남성들이 여성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없도록 한다.
좀더 심각하게 이야기하자면 문화적 우월성을 지닌 남자들이 규범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남성의 관점이 인간의 보편적 관점이 된다. 규범은 남성들이 만들어낸 여성성에 대한 규정들이나 남성들이 여성에 대해 가지는 환상들을 영속화시키고 그것들에 권위를 부여하여 남성적인 것을 ‘인간적인’ 진리인 양, 환상을 ‘현실’인 양 만든다. 여성들 역시 남성들의 관점을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인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남성들의 여성 읽기를 다시 읽어야만 한다. 중요한 것은 남성 작가의 텍스트에 나타난 여성 이미지들은 결국 남성들이 권력 획득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주며 남성들의 재현에 대한 지배 역시 불안정하다는 것을 입증해준다는 사실이다. 이제 텍스트를 대함에 있어 이런 형태의 비판적 읽기와 여성적 읽기가 요청된다. 그러나 이러한 여성적 읽기는 여성만이 아니라 남성에 대한 이해도 가져온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문학 작품에 구현된 남성이 만들어낸 여성 이미지를 다시 읽고(방법론), 서사적 관점에서 남성 신화에 저항하며(태도), 여성의 운명을 다시 짜는 서사적 구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대안). 이에 대한 모리스의 다양한 예시와 정치한 분석과 타당성 있는 주장은 제1장 말미 ‘주요 내용 요약’을 옮겨 적는 것으로 대신한다.
1. 남성들에 의해 행해지는 여성에 대한 왜곡된 묘사는 남성들이 여성의 종속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했던 전통적인 수단들 중 하나이다. ‘남성이 아닌 것’으로 규정되는 여성의 부정적 정체성은 남성들이 ‘여성성’ 속에 어떤 자질이라도 부여할 수 있도록 했다. 남성들은 ‘여성’이란 이미지 속에 그들의 꿈과 두려움을 투사시킨다.
2. 지배적인 성이며 규범인 남성들의 재현은 ‘진리’로서 권위를 인정받는다. 그것은 보편적인 인간의 관점이 된다. 그러므로 여성‘으로서’ 읽는 방식들을 구성하기 위해서 우리는 여성들에 대한 남성들의 읽기나 쓰기를 다시 검토해야 한다. 이는 전형들의 단순한 목록이라기보다는 남성들이 여성에 대해 가지고 있는 두려움과 불안을 드러낼 것이다.
3. 유혹하는 여성 : 스펜서의 『선녀여왕』에서처럼 남성을 유혹하고 그 때문에 도덕적인 책망이나 징벌을 받아야 하는 인물로 여성을 묘사하는 것은 성행위에 있어서 자신의 지배력과 통제력을 상실해버릴지도 모른다는 남성의 두려움을 반영한다.
4. 더 연약한 그릇 : 자손 생산에 있어서 여성들이 맡는 지배적이고 안정된 역할은 남성들의 또 다른 부안 요인이 된다. 이 때문에 창조력이나 지식은 남성적이고 신적인 것으로 재현되고(밀턴의 『실낙원』) 남성에 대한 여성의 종속이 강조된다.
5. 완벽한 여성 : 결혼을 했든 ‘처녀’이든 간에 여성의 미덕은 항상 육체적 순결과 복종이다(『심벌린』의 이모젠). 하지만 남성들은 여성들을 늘 판에 박힌 구조 속에서만 파악하기 때문에 결코 여성들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없으며 이로 인해 계속 불안감을 갖게 된다.
6. 악녀 : 매력적이지도 순종적이지도 않은 여성들은 두 배로 위협적이다. 이런 이유로 그들은 늘 ‘실제로는’ 남자를 원하고 있는 것으로 그리고 처벌받아야 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7. 서사 관점은 항상 남성적이다. 그것은 텍스트의 지배적인 가치들이나 가정들에 공모하도록 독자들을 끌어들인다. 한 사람의 여성으로 텍스트를 읽는다는 것은 텍스트의 이러한 의도에 저항하며 읽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8. 플롯 구조는 현실 인식을 보여준다. 전통적인 플롯 구조들 속에서 여성의 운명이란 제한된 범위에서의 선택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고 이로 인한 고통을 참아내는 것 또 죄를 지었을 경우 그에 대한 벌을 달게 받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