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호의 손에 잡히는 인공지능
미술 시간 풍경을 떠올려보자. 예전에는 그림을 잘 그리기 위해서 붓 터치를 연습하고 물감의 비율을 맞추는 손기술이 절대적으로 중요했다. 아무리 머릿속에 멋진 풍경이 있어도 그것을 손으로 구현해내지 못하면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말 몇 마디, 글 몇 줄로 1초 만에 훌륭한 그림을 그려내는 생성형 인공지능 시대가 열렸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직접 붓을 들고 땀 흘리던 화가의 시대에서, AI라는 붓을 지휘하여 작품을 만드는 감독의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새로운 인류를 호모 프롬프터라고 부른다.
호모 프롬프터라는 개념은 단순히 AI 명령어를 잘 입력하는 사람만을 뜻하지 않는다. 이는 영화감독의 역할과 매우 흡사하다. 영화감독이 직접 카메라를 들고 조명을 설치하지 않아도 스태프들에게 정확한 지시를 내려 자신이 상상한 장면을 영상으로 만들어내듯이, 호모 프롬프터는 AI라는 유능한 스태프에게 작업을 지시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만들고 싶은지에 대한 명확한 청사진이다. 감독의 머릿속에 구체적인 그림이 없으면 스태프들이 우왕좌왕하듯, 사용자가 모호하게 질문하면 AI는 엉뚱한 결과물을 내놓는다.
예를 들어 단순히 판타지 소설을 써줘라고 입력하는 것과 용이 등장하지만 인간과 평화롭게 공존하며, 마법 대신 과학 기술을 사용하는 22세기 배경의 판타지 소설을 주인공의 1인칭 시점으로 써줘라고 입력하는 것은 천지 차이의 결과를 낳는다. 전자가 뻔하고 지루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면, 후자는 구체적이고 독창적인 세계관이 담긴 작품을 탄생시킨다. 이처럼 호모 프롬프터에게 요구되는 핵심 능력은 그림 실력이나 문장력이 아니라, 자신의 상상을 구체적인 언어로 구조화하여 전달하는 기획력이다. 이것이 바로 질문의 격차가 곧 실력의 격차가 된다는 말의 의미다.
또한 호모 프롬프터는 훌륭한 편집자가 되어야 한다. AI는 가끔 존재하지 않는 역사적 사실을 지어내거나 논리에 맞지 않는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영화 촬영본 중에 쓸 수 없는 장면을 걸러내고 좋은 장면만 이어 붙이는 편집 과정처럼, 사용자는 AI가 내놓은 정보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논리적 허점을 찾아내 수정해야 한다. 아무리 AI 기술이 발전해도 최종 결과물의 품질을 책임지고 가치를 판단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몫이다. 훌륭한 감독이 배우의 연기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다시를 외치며 원하는 컷이 나올 때까지 반복하듯, 호모 프롬프터는 끈기 있게 AI와 대화하며 최선의 답을 찾아간다.
혹자는 이러한 변화가 인간의 고유한 창작 능력을 퇴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한다. 직접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얻는 배움이 사라질까 걱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계산기가 발명되었다고 해서 수학적 사고력이 사라지지 않았듯, AI의 등장은 오히려 우리를 단순 반복 작업에서 해방시켜 더 고차원적인 창의성에 집중하게 해 줄 것이다. 붓질하는 시간을 아껴 어떤 그림을 그릴지, 그 그림에 어떤 메시지를 담을지를 더 깊이 고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기술적 한계 때문에 포기했던 상상들을 현실로 구현할 수 있는 기회가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셈이다.
앞으로의 사회는 내가 얼마나 많은 지식을 알고 있는가보다 내가 아는 것을 AI를 통해 어떻게 확장할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될 것이다. AI가 인간을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AI라는 강력한 도구를 손에 쥔 호모 프롬프터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훨씬 앞서 나가게 될 것임은 자명하다. 이제 우리는 AI를 경쟁자가 아닌 든든한 조수이자 파트너로 받아들여야 한다.
고등학교 교실에서도 이러한 변화는 이미 감지되고 있다. 단순히 정보를 검색해서 복사해 붙이는 과제는 의미가 없어졌다. 대신 AI와 토론하며 생각을 발전시키고, AI가 만든 초안을 자신만의 관점으로 재해석하여 완성하는 능력이 진짜 실력이 되고 있다. 여러분은 AI에게 어떤 지시를 내릴 준비가 되어 있는가. 붓을 쥐는 법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그 붓에게 무엇을 그리라고 명령할지, 그 상상력을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한 시대다. 호모 프롬프터로서의 준비, 바로 지금 시작해야 한다.
| 작가 프로필
이용호 작가는 스마트공장에서 주로 사용되는 ‘AI 머신비전’ 전문회사인 ‘호연지재’를 경영하고 있다. ‘머신비전’에서 인공지능 딥러닝에 의한 영상처리기술을 자주 적용하다보니 10년 이상 연구한 AI 분야에 대해서도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아 현재는 인공지능 커뮤니티인 ‘AI 에이전트 연구회’를 운영하고 있으며, SKT 이프랜드 플랫폼에서 3년 이상 인플루언서로 활동하며 ‘호몽캠프’를 110회 이상 진행한 바 있다.
작가는 ‘50플러스 오픈랩’이라는 중장년과 시니어의 디지털 역량강화를 위한 교육 플랫폼에서 수석 가디언즈로 AI 분야의 전도사로 활동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