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팸을 넘어 슬롭으로, 디지털 생태계의 새로운 쓰레기

이용호의 손에 잡히는 인공지능

by 호몽 이용호
260122 브런치.png [AI 슬롭(slop) 인포그래픽]


알고리즘이 차려준 밥상, 그 위에 올라온 가짜 요리들


음식을 주문할 때 우리는 메뉴판의 사진과 설명을 보고 맛을 상상하며 기대감을 품는다. 그런데 막상 나온 요리가 플라스틱 모형이거나 먹을 수 없는 재료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어떨까. 지금 디지털 세상에서는 이런 황당한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의 발전과 함께 등장한 AI 슬롭 현상 때문이다. 이는 마치 식당 주인이 손님의 건강이나 맛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싼 재료로 양만 불려 팔아치우려는 행태와 다를 바가 없다.


AI 슬롭은 겉보기에는 그럴싸하지만 알맹이가 없는 디지털 폐기물을 뜻한다. 과거에는 스팸 메일이 불특정 다수에게 무차별적으로 살포되는 광고 전단지 수준이었다면 오늘날의 AI 슬롭은 소비자의 취향을 정밀하게 분석하여 맞춤형으로 제작된 가짜 요리와 같다. 문제는 이 요리가 셰프의 정성이 들어간 것이 아니라 기계가 레시피도 모른 채 재료를 무작위로 섞어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구체적인 예로 최근 온라인 서점이나 전자책 플랫폼에서 겪는 불편함을 들 수 있다. 특정 주제에 대해 깊이 있는 지식을 얻고자 책을 검색하면 AI가 짜깁기한 수준 미달의 서적들이 검색 결과를 도배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버섯 채취 가이드북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실제로는 독버섯과 식용 버섯을 구별하지 못하는 위험천만한 내용을 담고 있거나 코딩 입문서라면서 실행조차 되지 않는 엉터리 코드를 나열해 놓는 식이다. 표지는 화려하고 목차는 전문적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AI가 인터넷상의 텍스트를 무단으로 긁어와 문맥 없이 붙여넣은 텍스트 덩어리에 불과하다. 이는 독자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기는커녕 잘못된 정보로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다.


영상 플랫폼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역사적 사실을 설명한다면서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았던 사건을 마치 진실인 양 묘사하는 영상들이 넘쳐난다. 고대 유적지라며 소개된 장소가 실제로는 AI가 생성한 판타지 배경이거나 위인들의 일화를 소개한다며 검증되지 않은 인터넷 괴담을 사실처럼 읊어대기도 한다. 내레이션조차 감정 없는 AI 성우가 담당하여 기괴한 느낌을 주지만 자극적인 썸네일에 이끌린 시청자들은 무방비하게 이러한 가짜 정보에 노출된다.


이러한 현상이 지속되면 우리는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능력을 점차 상실하게 될지도 모른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양질의 콘텐츠를 선별하는 일은 점점 더 고단한 작업이 되어가고 있다. 검색 엔진의 첫 페이지가 광고 수익만을 노린 AI 슬롭으로 가득 찰 때 사용자는 피로감을 느끼고 결국 정보 검색 자체를 포기하거나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저질 콘텐츠에 안주하게 될 위험이 크다. 이는 곧 건강한 공론장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더욱이 AI 슬롭은 창작 생태계를 위협한다. 인간 창작자가 며칠 밤을 새워 만든 작품이 AI가 몇 초 만에 생성한 수백 개의 모조품 속에 파묻혀 빛을 보지 못하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다. 노력과 재능이 정당하게 보상받지 못하는 환경에서는 그 누구도 질 높은 콘텐츠를 만들려 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인터넷은 서로가 서로를 베끼고 재생산하는 무의미한 데이터의 순환 고리에 갇히게 된다.


우리는 이제 디지털 편식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옛말은 AI 시대의 인터넷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화려한 이미지와 자극적인 제목 뒤에 숨겨진 정보의 진위를 의심하고 콘텐츠의 출처를 확인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또한 플랫폼 운영자들은 기계적 생성물을 걸러낼 수 있는 강력한 필터링 시스템을 구축하고 인간 창작물의 가치를 보호하는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 우리가 섭취하는 정보가 우리의 사고를 형성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기계가 차려준 가짜 밥상이 아닌 인간의 지성과 감성이 담긴 진짜 요리를 맛보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가 현명한 미식가가 되어야 한다.


|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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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호 작가는 스마트공장에서 주로 사용되는 ‘AI 머신비전’ 전문회사인 ‘호연지재’를 경영하고 있다. ‘머신비전’에서 인공지능 딥러닝에 의한 영상처리기술을 자주 적용하다보니 10년 이상 연구한 AI 분야에 대해서도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아 현재는 인공지능 커뮤니티인 ‘AI 에이전트 연구회’를 운영하고 있으며, SKT 이프랜드 플랫폼에서 3년 이상 인플루언서로 활동하며 ‘호몽캠프’를 110회 이상 진행한 바 있다.


작가는 ‘50플러스 오픈랩’이라는 중장년과 시니어의 디지털 역량강화를 위한 교육 플랫폼에서 수석 가디언즈로 AI 분야의 전도사로 활동하기도 한다.


주요 강의 분야는 “챗GPT 시대 생산성을 500% 높여주는 인공지능”, “머신비전에서의 인공지능 활용”, “손에 잡히는 인공지능”, “스마트폰 AI 활용하기”, “시니어와 MZ세대간의 소통”등이 있으며, 저서로는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황금키』, 『손에 잡히는 인공지능』, 『나는 시니어 인플루언서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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