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r president, <노무현입니다>

우리가 만들어가야 하는 시대

by Ellie

스포일러 있음


아직도 그 영화관의 냄새를 기억한다. 서울에서 열리는 크고 작은 영화제들을 두루 섭렵하며 '영화덕후'가 되어가던 무렵, CGV 1호점인 강변 테크노마트에서 <사이에서>를 봤다. 커다란 칼을 혓바닥에 대고도, 날카로운 작두 위에서 힘차게 뛰어도 다치지 않는 스크린 너머의 무당들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내겐 처음으로 극장에서 본 다큐멘터리 영화다. 전주영화제 방문을 결심하고 상영작을 검토하다 이 영화를 발견했다. 마음에 이는 호기심만큼이나 걱정이 앞섰다. 작년에 개봉한 그 영화처럼 만듦새가 엉망이면 어떡하나. 시류에 편승하기 위해 대충 만든 영화는 아닐까? 그러다 감독 소개글을 보았는데 낯익은 영화명이 보였다. 내게 다큐영화의 매력을 알려준 <사이에서>의 이창재 감독 작품이라고 했다. 그라면 믿고 볼 수 있겠다 싶어, 가장 우선 순위에 이 영화를 올렸다.




상영관은 올 때마다 조금씩 변해가는 거리에서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전주 시네마타운이었다. 문을 열자마자 팝콘 냄새가 진동했고, 엘레베이터 앞에는 상영관으로 올라가려고 줄서있는 관객들이 보였다. 아마 우리는 같은 영화를 보게 될 것이다. 자원봉사자의 안내에 따라 미로 같은 계단을 지나 상영관으로 들어갔다. 유독 그 어떤 영화보다 한국인 관객들이 많았던 것 같다.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되었다. 올해 전주영화제에서 보는 다섯 번째 영화다. 익숙한 리더필름이 지나간 뒤, 영화가 시작되었다. <노무현입니다>라는 영화 제목이 나왔을 땐 영어 자막에 'our president'라고 적혀 있었다. 처음부터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대표적인 노동가요인 '사계'를 배경음악 삼아 영화는 노무현을 품었던 한국의 정치사를 짧게 보여준다. 88올림픽을 지나, 도청장치를 폭로하는 뉴스 사고, 새 대통령이 취임하고 건물이 무너지고 다리가 붕괴되고, 금을 모은 이후 또 새로운 대통령. 그 가운데 노무현은 소리를 지르는 초선 국회의원으로 등장한다. 우호적이지 않은 주민들에게 손을 내밀며 '노무현입니다' 자신을 소개하는 그의 모습과 함께 영화는 줄줄이 낙선하고 마는 그의 선거 결과를 보여준다. 그리고는 결국 '바보'가 된, 그런 바보를 사랑하는 이들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2002년의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은 노무현을 얘기하거나 한국의 정치사를 말할 때, 언급해야만 하는 중요한 순간일 것이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그 시절의 노무현에게 조명을 비춘다. 검은 배경을 바탕으로, 관객들과 마주하는 자리에 그와 함께 했던 사람들도 불러 모은다. 눈을 맞추며 손을 건네는 그를 대신하여, 카메라 앞에 선 이들의 입을 빌려 노무현은 관객들에게 소개된다.


우리는 경선 결과를 알고 있다. 어느 도시에서 그가 역전하기 시작했는지, '노풍'이 어떻게 불었는지도 알고 있다. 언론과 상대방 후보와 맞서야만 했던 그의 이야기도 알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에게, 그리고 그를 사랑했던 모든 이들이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달려가는듯 영화는 끝없는 희망을 안겨준다. 하지만 우리는 또 알고 있다. 그 희망이 결코 즐겁지만은 않았다.


영화는 연출을 통해 희망을 더욱 희망적이게, 슬픔을 더욱 슬프게, 그리움을 더욱 그립게 만든다. 총 다섯 개의 챕터로 나누어진 노무현과 연결된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그를 새롭게 만난다. 영상에 덧붙여진 장면을 제외하면, 인터뷰를 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화면의 절반을 차지할만큼 크고 가까워 그들의 표정에 담긴 감정이 고스란히 관객들에게 전해진다. 즐겁게 이야기하다 갑자기 고개를 떨구는, 눈물이 차오르는 이들의 얼굴을 보며 함께 울 수밖에 없었다.


잔인하게도, 행복이 절정에 이른 순간엔 슬픔의 정점으로 바꾸어 놓는다. 취임식 카퍼레이드 장면이 장례식 운구차량으로 바뀐다.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미 오래전부터 눈물을 흘리고 있던 나는 울음이 소리로 새어나올 것만 같아 입을 막았다. 한참을 울었다.


지금 이 영화를 보고 있는 전주 영화제를 처음 방문했을 무렵이 10년 전이다. 그가 대통령을 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탄핵이 가결되던 날, 거리로 나가 처음으로 시위란 걸 해보고 민중 가요도 배웠다. 그의 행보를 두고 골수 민주당 지지자였던 아버지와 정치학도인 나는 무던히도 싸웠다. 아버지는 당을 쪼개고 나간 그를 용서할 수 없다고 했다. 자꾸 싸움을 거는 대통령이 마음에 안 든다고 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적극적으로 그를 옹호해주지 못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을 하지 못해 집에서 늦잠을 자고 있던 어느 날 아침 그의 소식을 친구로부터 전해들었다. 그의 대통령 자리를 지켜주기 위해 광장에 나갔던 것처럼, 햇볕이 강렬하던 어느 봄날에 그를 배웅하기 위해 다시 광장으로 나갔다.


그 날로부터 8년이 지난 뒤 관객들과 만나는 이 영화는 우리가 가진 마음의 빚은 '대통령을 지켜주지 못한 것'이 아니라 '노무현의 시대를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었음을 알려준다. 여전히 희망은 놓지 않은 채로, 그래서 우리가 지금 만들어가야 하는 세상이 '노무현입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