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괜찮아요. 편하게 하셔도 되세요.
지금 내가 제주도에 와서 일터로 삼고 있는 '마음에 온'이라는 카페가 마음에 들어 사장님에게 찾아가 준비했던 말을 어렵게 꺼냈을 때 사장님이 나에게 해주었던 말이 이것이었다. 그것도 바로, 자연스럽게. 서울에서 어떻게 얘기드리면 좋을까, 이렇게 이야기를 할까, 이 이야기를 할까, 저 이야기를 할까, 하고 생각하고 고민하면서 준비했던 시간이 무안하게 느껴질 정도로 열린 마음으로 허락해주셨다.
그때 내가 준비해왔던 말은 이것이었다. 길게 이야기하지 않고 짧고 불편해하지 않으실 수 있게 이야기를 드려야 한다고 하며 나름 고심해서 준비해왔던 한 문장의 말.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에 있는 연남동이라는 곳에서 심리카페를 하고 있는데 여기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여기에서도 제 카페에서 해드리는 상담을 해도 될까요?"
마음에 온 카운터
카운터에서 주문과 함께 꺼낸 나의 말에 사장님은 괜찮다고, 편하게 해도 된다는 말과 함께 이 말도 해주셨다.
"얘기 안 하고 하실 수도 있는데 이렇게 얘기해주면 저야 고맙죠."
그리고는 손님들 주차는 어디에 하면 좋은지 설명해주시고, 상담하기에 시끄럽진 않을지 모르겠네요라는 말도 해주셨다. 사장님과 카페를 중심에 놓은 것이 아닌, 나의 입장을 중심에 놓고 챙겨주듯 말씀해주시는 것이 참 신기하고 따뜻하게 느껴졌었다.
나였다면 어땠을까?
나는 이 사장님처럼 이렇게 반응하지 못했을 것 같다. 나였다면 일단은 생각을 해보겠다고 하고 뭐라도 문제 될 것은 없는지 피해볼 것은 없는지, 피곤해질 일은 없는지 생각해보고 물어보고 확인하려고 했을 것 같다.
이상한 사람이면 어떡해?
어느 순간 사람을 믿을 수 없고, 마음을 열고 받아주었을 때 상처가 되는 일을 겪게 되었던 적이 쌓여가다 보니 사람에게 마음을 열기가 어려운 일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누군가를 믿고 마음을 여는 것이 어려워진 나에게 "너무 사람들에게 잘해주지 말아요. 나중에 상처 받게 돼요."라고 말을 해주던 사람이 있었던 것을 보면, 나만이 그렇게 사람을 경계하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제주도 생활을 하면서 누군가 나를 다치게 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모습에 대해 많이 깨지고 금이 가게 만드는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해보게 되곤 한다.
그리고 여전히 연남동에 있는 내 심리카페에서 상담을 시작할 때 꼭 하는 말이 있다. 진행을 '있는 그대로' 해드리는 것을 원하시는지, '부드럽게' 해드리는 것을 원하시는지이다. 손님이 '있는 그대로'로 해달라고 하시면, 정말 있는 그대로 이야기를 드리기 때문에 원치 않는 얘기, 불쾌해지고 불편해지는 얘기를 들려드릴 수 있는데, 그랬을 때 스스로 조절하고 저에게 해를 가하지 않으실 수 있는지 여쭙는다.
이렇게 말을 하게 된 이유는 올해 초, 상담을 받고 가신 분이 밤 10시가 넘어 전화를 하고는 따지면서 사과하라고 했던 적이 있어서이다. 정말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모습을 접하기 위해 저에게 해를 가하지 않으실 수 있는지를 여쭙는 것이 어이없게 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도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하고 싶어서 어이없는 말을 계속 하고 있다.
신호등이 없는 3차선 횡단보도
이와 비슷한 경험은 내가 제주도에서 살기 시작한 집 근처에서도 했었다. 내가 살고 있는 집 근처에는 신제주 로터리라는 곳이 있다. 이곳에 횡단보도가 있는데, 이 횡단보도에는 신호등이 없다. 1차선 길이 아닌 3차선 대로인데 말이다.
퇴근 시간이 되면 차들이 계속 오는데 신호등이 없으니 알아서 건너가야 한다. 그런데 나는 도통 그 타이밍을 잡기가 힘들었다. 왜냐면 계속 차들이 오니깐 말이다. 그런데 그때 한 젊은 여자분이 차 오는 쪽을 한번 쓱 보더니 자연스럽게 걸어 나가는 것이었다. 그러자 오는 차들과 버스가 알아서 속도를 줄여서 서기 시작했다. 나는 그 여자분을 따라 3차선 대로를 건넜었다.
나는 안전한 타이밍만을 찾으면서 건널 때 나를 보고 속도를 줄이지 않으면 어떡하지, 그래서 차에 치이면 어떡하지 하면서 아무리 신호등이 없어서이지만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았었다. 그날 자연스럽게 걸어 나가는 그 여자분을 보면서 사람에 대한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신뢰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너무 경계하고, 너무 긴장하고, 너무 못 믿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여기 제주에서 생활하는 현지인들은 사람에 대한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신뢰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너무 내가 각박한 환경 속에서 생활하고 있었던 것을 여기 제주에 여행자가 아닌 생활하는 사람으로 지내다 보니 깨닫게 되는 것들이 많다.
마트
내가 사는 집 앞에는 제주도에만 있는 제스코 마트라는 큰 마트가 있다. 제주도에 있는 코스트코 마트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걸어서 2분 거리인지라 나에게는 동네 슈퍼 가듯 서울에서 제주로 퇴근할 때 들리는 곳이다.
이것저것 먹을 것을 사고 카운터에서 계산하려고 줄을 서있는데 한 나이가 많으신 할아버지 한 분이 카운터에서 계산하시는 분에게 흥분해서 따지며 화를 내고 있으셨다. 무언가 계산하시는 분이 잘못을 한 것 같기는 한데 저렇게까지 큰 잘못을 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뭐라고 쏘아붙이고 있었다. 계산하시는 분은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하면서 넘어가려고 하고 있었다.
소동 아닌 소동은 그 할아버지가 나가고 나서 사라질 수 있었다. 그때 내 옆쪽에 있던 할아버지 한 분이 계산하고 있었던 분에게 이렇게 말을 하셨다.
왜 저렇게 화를 내?
저러는 사람은 타지 사람들이야.
글쎄, 나는 왜 이 할아버지의 말에 속으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적어도 내가 연남동에 있는 내 카페에서 사람들을 상담해주면서 많이 접하게 되는 분들이 저런 성향의 사람들에게 치이고 다쳐서 온 경우들이니 말이다. 그리고 나 역시 저런 류의 사람들에게 치이고 다친 경험이 있다 보니 고개가 끄덕여지게 되었던 것 같다.
나는 제주로 퇴근하게 되면서 사람에 대해 경계하고 긴장하게 되던 나에서 조금씩 편안해지고 온화해지게 대하게 되는 내가 되어 감을 느끼게 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