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를 무시하는 바쁜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계속 놓치고 있는 것
매주 월요일 저녁 제주로 퇴근해서 목요일 아침 서울로 출근을 하는 나의 일상은 조금씩 나에게 편안함과 온화함을 되찾아주는 경험들을 시켜준다. 확실히 믿음 소망 사랑 다짐보다 좋은 영감과 기운을 주는 환경을 찾고 만들어가는 것이 편안함과 온화함을 찾는 데에 도움이 됨을 느끼게 된다.
자리에 앉아서 대기해주세요.
출발하기 전 비행기 안
서울에서 제주로 가는 비행기를 매주 타다 보면 익숙하게 접하게 되는 모습이 있다. 아직 승무원들이 벨트를 맨 채 의자에 앉아 있는데 비행기가 멈췄다고 벨트를 풀고 일어나서 앞으로 나오려는 사람들 모습이다. 비행기에서 먼저 내리고 싶은 마음은 이해가 간다. 불과 제주를 오가던 올해 초의 나도 어느 정도 이런 모습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언제나처럼 제주로 퇴근하던 어느 날, 비행기 안에서 두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날은 꽤 많이 앞쪽 자리에 앉아서 가던 날이었다.
비행기는 제주에 착륙해서 천천히 활주로 위를 이동하고 있었다. 그런데 앞에 앉아 있던 승무원이 손과 팔로 착석해달라는 신호를 보내며 자리에 앉아서 대기해달라고 말을 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뒤쪽을 보았더니 좌석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막 일어나 짐을 꺼내고 앞으로 나오기 시작하고 있었다. 마치 좀비 영화 부산행의 한 장면을 보는 것만 같았다.
나와 마주 보는 방향에 앉아 있던 승무원은 더 크게 손과 팔을 흔들며 착석해달라는 신호를 보내며 급정거로 인해 위험할 수 있으니 좌석에 앉아서 기다려주세요.라고 여러 차례 말을 했지만 비행기 안은 순식간에 무질서한 혼잡 상태가 되어 있었다.
서울에서 제주로 가는 비행기는 작은 비행기여서 통로가 많이 좁다. 그래서 금세 꽉 찬 전철 안처럼 따닥따닥 붙어 있는 상황이 되었다. 비행기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면서. 승무원들은 아직 자리에 앉아 있는데 말이다. 마치 문이 열리면 시작 땅! 소리에 맞춰 앞으로 전진하려는 기세가 느껴질 정도였다. 뭐가 그렇게 급할까, 뒤쳐지면 안 된다는 생각일까, 새치기당할 순 없다는 마음일까.
예전의 나도 비슷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보니 사람들의 모습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다시 고개를 돌려 앞의 승무원을 보았는데 착석해달라고 신호와 말은 더 하지 않고 사람들의 이런 모습을 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이해는 간다는 느낌의 미소였다.
그 미소를 보며 한 할아버지가 했었던 말이 떠올랐다. 약간의 변주를 준 문장으로.
왜 저렇게 서둘러?
저러는 사람은 타지 사람들이야.
나는 제주도로 퇴근을 하면서 서두르고 분주하고 조급하고 조바심 내며 몽글몽글하지 못한 모습에서 조금씩 몽글몽글 온화해져가고 있다. 서두르고 분주한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섬세하고 세심한 모습을 보면서.
지금은 저쪽 자리에 있어요.
퇴근할 곳을 만들 수 있게 중심을 잡아주는 '마음에 온'이라는 카페 사장님에게 여기에서 심리상담 일을 해도 괜찮은 지를 얘기드리면서 준비해 갔던 것이 내 카페 명함과 예전에 만들었던 책이었다. 짧은 순간에 나에 대한 신뢰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나를 함축해서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면서 고른 것이 명함과 책이었다.
그런데 정작 사장님이 바로 편하게 그렇게 하라고 얘기해주시는 바람에 허락을 받고 드리게 되었지만 말이다. 암튼 그렇게 허락을 받고 다음 주에 다시 '마음에 온'이라는 카페를 갔었는데 나를 맞아주시고 반겨주셔서 너무 좋았다. 특별히 미소를 지어주시거나 그런 것은 없는데 뭐랄까 담담한 모습이신데 되게 좋은 느낌이었다.
주문을 받으시고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나서 저번에 주신 책 사람들이 꺼내서 보곤 하더라고요. 지금은 저쪽 자리에 있어요.라고 이야기를 해주셨다. 사장님이 가리키신 자리는 카페 안에서 특히 더 분위기 있는 자리였다.
그런데 내가 섬세하고 세심하다고 느끼며 뭉클하게 선물 같은 감동을 받게 된 것은 선물로 드렸던 책을 책들이 놓여 있던 곳에서 꺼냈을 때였다. 내가 드린 명함을 책에 붙여주셨던 것이다. 내가 드린 것에 신경을 써주신 것이 너무 감사했다. 그리고 그 책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알려주시는 모습도 너무 감사했다.
누군가의 성의를 말과 표정으로만이 아닌 이렇게 대해주는 모습에 마음이 온화해지게 되지 않을 수 있을까? 이곳 제주에서 내가 보고 접하고 경험하게 되는 것들이 나를 좀 더 나다운 모습이 되어갈 수 있게 해 줄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실제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
목요일 아침 비행기로 서울로 올라와 12시부터 예약 손님들을 받아 상담해드릴 때에도, 금토일 쉬지 않고 예약 손님들을 상담해드릴 때에도 좀 더 나다운 모습으로 대하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