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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남동 심리카페 Aug 31. 2022

이게 정말 나야? 침착해야 해.

<하울의 움직이는 성>

아버지가 물려준 모자 가게에서 모자 만드는 일을 하며 자신감은 점점 낮아지고 울적한 기분이 되기도 하던 소피는 어느 날 갑자기 마녀로부터 한 순간에 할머니가 되어버립니다. 하울을 노리던 마녀가 낮에 하울이 소피와 다녔던 것을 보고 소피를 질투해 저주를 건 것이죠. 


하지만 소피는 그런 사실을 모릅니다. 그냥 갑자기 할머니가 되어버린 것이죠. 아무런 잘못도 없이 갑자기요. 최근에 계속 놓이고 겪게 되는 일들이 소피나 키키(마녀 배달부 키키)와 같네요. 코로나든, 우크라이나 내전이든,


갑자기 할머니가 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놀라는 소피


거울 앞으로 가서 할머니의 모습이 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한다.


이게 정말 나야? 침착해야 해. 


거울이 있는 자리에서 벗어났다가 다시 거울이 있는 곳으로 온다. 거울에 여전히 할머니의 모습을 하고 있는 자신을 보고 놀란다.


정신 차려야 해. 고민하면 더 늙을지도 몰라. 


집 밖으로 나왔다가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간다.


별일 아니야.


바로 집 밖으로 나온다.


신경 끄자.


다음날 아침, 소피는 침대 위에 몸을 수그리고 걸쳐 앉아 창밖을 보고 있다. 엄마가 방문을 노크하며 소피를 부른다.


문 열지 마세요. 독감인가 봐요. 옮으면 큰일 나요. 오늘은 쉴래요.


침대에 걸쳐 앉아 있던 자세에서 일어나 거울이 있는 쪽으로 걸어간다.

 

이런… 참…
괜찮아, 할멈. 건강해 보이고 옷도 잘 어울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차분하고 담담하게 조금은 미소를 머금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여기 계속 있다간 큰일 나겠어.


모자에 숄더까지 하고는 방문을 열고 나온다. 부엌으로 가서 치즈와 빵을 봇짐에 넣고, 몸을 수그린 채 집에서 걸어 나온다.



길거리 젊은이가 말을 건다.


할머니, 도와드릴까요?
마음은 고맙지만, 사양하지.


마부가 말을 건다.


태워드릴 순 있는데 어딜 가시게요?
자네보다 훨씬 멀리 갈 거야. (마차 뒤에 걸터앉아 타고 간다)


산 입구 길가에 있는 아저씨가 말을 건다.


관두는 게 좋을걸요. 저 너머엔 마법사들만 있어요.
고마워 (노래를 부르듯 대답을 해준다. 마치 그 말에 개의치 않아함이 담겨 있다)



숨을 거칠게 내쉬며 언덕을 오른다. 바위에 걸터앉아 집에서 싸 갖고 온 치즈와 빵을 아무런 표정 없이 담담하게 먹는다.


이빨은 건강해서 다행이군.


주위를 보다 나뭇가지가 덤불에 꽂혀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지팡이로 써야겠다


뽑으려고 하는데 쉽게 뽑히지 않는다. 힘줘서 뽑으니 허수아비가 거꾸로 덤블에 박혀 있었던 것이었다. 허수아비는 자신을 구해준 소피가 고마웠었는지 소피의 뒤를 따라가 소피 곁으로 가서 지팡이를 소피 앞에 떨어뜨려준다.


지팡이로 딱 좋네. 고마워.



그 후로 허수아비는 하룻밤 묵을 곳을 찾던 소피를 위해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소피 앞에 나타나게 해 준다.


야, 무대가리야. 저건 하울의 성 아니니? 집 찾아 달랐더니 하울의 성을.


허수아비가 움직이는 성의 문을 알려준다. 소피는 일단 문을 열어본다.


안은 따뜻해 보이니 일단 들어갈게. 고마워.






우리에게 어떤 일이 주어졌을 때 옳고 그름, 맞고 틀리고 가 의미가 있을까요? 



말 그대로, 일어나 버린 것이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가 중요하지 않기도 합니다. 왜냐면 일어나버렸기 때문입니다. 괜찮아서 괜찮게 있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세상 모든 일과 상황을 대비하고 준비하고 위험요소가 없는 계획적인고 안정된 일은 적습니다. 그리고 그런 일들은 너무 재미가 없습니다. 사는 거 같지 않은 삶이니까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소피가 마녀에 의해 갑자기 할머니가 된 순간부터 하울의 움직이는 성 안으로 들어가기까지의 모습과 과정이 요즘의 우리에게 필요한 모습 아닐까요? 그냥 회피하고 부정하고 합리화하면서 있는 것보다는 움직임을 선택한 소피의 모습이, '어떤 것 하나도 놓을 수 없어'가 아니라 받아들여야 할 것은 받아들이고 그다음으로 움직임을 갖는 것이 살아가는 모습과 과정 아닐까요? 


그게 쉽고, 아무렇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러는 것이 낫고 그래야 하니깐 그런 선택을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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