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심리카페에서 새로 준비하고 있는 독서모임을 만들어가는 30일간의 기록과 생각을 담고 있고, 이 글이 다섯 번째의 글이랍니다.)
며칠 전, 제 채널의 글에 하나의 댓글이 달렸습니다. 상처가 되고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말에 "미안해"라는 말로 시작하는 대답을 했었다는 내용과 '슬퍼요'라는 말로 끝나는 댓글이었습니다.
그리고 어제 하나의 기사를 보았습니다. 댓글과 기사에 담겨 있는 내용이 제가 준비하고 있는 독서모임을 좀 더 빨리 구현시키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여기 한 유치원 교사가 있습니다. 섬세하면서 착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분입니다.
우리가 보통 누군가가 보이는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상냥하면' 착하다고 하니까요. 아래 글은 이 분이 남긴 글의 일부입니다. 이 분이 우리가 보통 말하는 착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맹장이 터져 수술하느라 자리를 비웠더니 진료기록 보내라고 요구하는 학부모가 있었을 때도 잘 버텼습니다.
아이가 집에 오면 선생님만 찾는다며 너무 애착관계를 형성하지 말라며 부부 싸움 후 술 드시고 새벽에 연락 오는 학부모가 계셔도 괜찮았어요.
다 괜찮았습니다.
부모님들의 과도한 요구, 컴플레인도 일종의 사랑이겠거니 생각했어요.
이 유치원 교사에 관한 기사 내용을 보면서 너무 안쓰러웠습니다.
이 유치원 교사는 7개월 된 아이를 유산하고 일주일 만에 출근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하교 시간에 학부모에게 이런 말을 듣습니다.
"책임감 없이 무턱대고 임신하셨을 때도 화났는데, 수술한다고 일주일이나 자리를 비우실 수 있어요?"
그리고 이 학부모 옆에 있던 다른 학부모는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합니다.
"우리 ~~가 내년에도 선생님 볼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이 섬세하면서 착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분은 이렇게 말을 하십니다.
아직 몸도, 마음도 회복되지 않아
학부모 이야기가 예민하게 받아들여지는 지도
모르겠어요.
위에 빨간색으로 표시한 부분들에서도 상대와 상황에 대한 분별을 하지 않으세요. 여러 이유와 사연이 있어서겠지만 참 안타깝죠.
아이를 유산해서 몸도 마음도 힘들고 아픈 사람에게 한 명은 책임감을 운운하면서 어떻게 자리를 비울 수 있냐고 합니다. 가끔 이 정도로 사람에 대한 공감과 교감이 0인, 그 기능을 소실되어 있는 사람과 대화를 하다 보면 내가 비정상이거나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정말 정신을 차리고 있지 않으면 내가 문제인 것처럼 느껴지게 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말이 맞고 틀리고 보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파악하고 분별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너무도 아무렇지 않게,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너무도 내가 무언가 잘못한 것인 듯 말하니까요.
또 다른 한 명은 상심을 경험을 겪고 온 사람 면전에 대고 자기 아이가 다음 해에도 이 교사를 볼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고 말합니다. 본인이 생각하는 다행이라는 것이 상대의 큰 아픔과 슬픔이라는 것에 대한 이해도, 그 아픔과 슬픔에 대한 공감과 교감도 없죠.
위해주는 척 말해주고, 착하게 말하고, 따뜻하게 말하고 하는 것이 있어도 그 사람의 민낯과 본바탕은 상대의 기분과 감정과 상태에 대해 어떻게 인지하고 느끼고 반응하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이 분은 실수한 것도 아니고, 그럴 수도 있는 것도 아니며, 다양성 범주에 있는 모습도 아닙니다.
이 유치원 교사분이 몸과 마음이 회복되어 있는 상태이면 저런 민낯의 본바탕 모습이 괜찮은 것이 되나요? 위의 빨간색으로 표시한 부분의 말처럼 일종의 사랑인 것인가요? 한번 잠깐 생각을 해보면 어떨까요?
뭐가 괜찮은 것이고,
뭐가 일종의 사랑인 것이고,
뭐가 자신의 상태가 좋지 않아 예민하게 받아들인 것인가요?
그래서 누군가를 미워하고 증오하고 싸우라는 것이 아닙니다. 분별을 말하는 것입니다.
버티지 말아야 하는 것에 대해 버티지 않는 것, 괜찮지 않은 것에 대해 괜찮지 않은 것으로 분별해서 괜찮지 않은 상태가 괜찮은 상태가 될 수 있게 하는 것, 사랑이 아닌 것을 사랑이겠거니 하며 생각하지 않고 조치를 취하거나 벗어나오는 것,
이런 분별을 막는 것이 무분별한 착함입니다. 좋게 좋게 생각해서 넘기는.
무분별하게 상황과 사람을 보며 감상적으로 좋게 좋게, 갈등을 일으키고 싶지 않아 좋게 좋게, 불편하고 부정적인 기분과 감정이고 싶지 않아 좋게 좋게 해석하고 넘기는 모습이 안타깝게도 소중한 것을 잃게 만들죠.
제 마음이 더는 못하겠다고 해요.
제 마음이 더 이상은 못하겠다고 해요. 다시 유치원으로는 돌아가지 못할 것 같아요. 이전과 같은 마음으로 아이들을 사랑하지 못할 것 같아서 못 하겠어요. 학부모들을 마주할 에너지도, 용기도 없어졌어요. 무섭고 숨이 막힐 것 같아요.
무분별하고 무턱댄 좋게 좋게는 진짜 좋은 것들도 함께 잃게 만들어요. 감상적으로 좋게 좋게, 갈등 일으키지 않기 위해 좋게 좋게, 어떤 상황과 사람들이든 민낯과 본바탕 상관없이 무조건 미화시켜서 좋게좋게 생각하며 삶을 지탱하다 보면 아예 다 포기하게 돼요.
이런 모습이 관연, 유치원 교사여서, 학부모여서, 유치원이라는 곳이어서 생기는 일일까요?
다른 직업군에서도 얼마든지 있죠. 저도 심리카페를 운영하며 질 안 좋고 본 바탕이 나쁜 사람들 적지 않게 만나곤 합니다. 열에 한 명 정도 씩요. 그런데 그들이 끼치는 데미지가 상당히 크죠. 그들에 대한 분별을 잘 하지 않으면 자신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일, 그리고 그로 인해 누군가 소중한 도움을 받게 되는 순간들도 잃게 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