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제 심리카페로 출근하는 길에 누군가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요즘 모든 게 귀찮아지고 누워서 티비만 보고 싶어.
제가 그분이 이 말을 하는 타이밍에 그분 옆을 지나갔던 것이었죠.
오늘 날씨가 흐려서였을까요, 아니면 제 마음과 비슷해서였을까요, 이 말이 카페에 도착할 때까지 몇 번 더 맴돌았습니다.
며칠 전, 우연히 여기에 올리는 글이 곧 100개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작년 9월부터 여기에 글을 쓰기 시작해서 7개월 정도의 시간을 볼 수 있게 해주더군요.
100개의 글에 시작과 시도라는 의미를 담아 <심리카페 - 시즌 1>이라는 이름의 카테고리를 만들어 분류하고, 이곳의 방향성에 대해 생각해 보며 재정비를 하고, 좀 더 정돈된 모습으로 <심리카페 - 시즌 2>를 시작하고자 하고 있답니다.
<심리카페 - 시즌 1>이라는 시간을 되돌아보며, '꾸준히 글을 쓴다는 것'이 가지고 있는 힘에 관해 들려드리고 싶었습니다.
'꾸준히 글을 쓴다는 것'은 그만 접으려고 내놓았던 제 심리카페를 접지 않는 것으로 결심하게 만들어주었을 정도의 마법 같은 힘이었으니까요.
단지 접지 않는 것만이 아니라, '연남동 심리카페'이라는 공간에서 다시 새로운 시도인 독특한 독서모임을 만들고 시작해 볼 수 있게 해준 힘이었습니다.
무기력에서 벗어난 것을 넘어 새로운 것들을 시도하고 시작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죠.
제 심리카페만의 독특한 독서모임은 제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마음속으로 꿈꿔왔던 것이었습니다. 시도하고 시작하지 않았던 것은 그럴 의욕도 기운도 영감도 부족하고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그랬죠.
'귀찮아, 피곤해, 괜히 불편하게.'
하지만, 제 머릿속에, 마음속에 막연하게 있었던 독서모임은 '마음 힘들 때 갈 곳'인 <연남동 안전가옥>과 '나 또는 상대를 알 수 있는' <연남동 사랑방>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올 수 있게 해주었답니다.
특히, <연남동 사랑방>은 제 머리와 마음속에 막연하게 있는 바람과 아이디어가 아닌, 연남동이라는 현실 공간에서 점점 더 유용한 시간일 수 있게 구체적으로 보완해가며 실재하는 시간으로 만들어가고 있죠.
말 그대로, 머릿속에 있던 것을 재현하고 있죠. 매일 두 번씩 사전 예약제로 신청을 받아 진행을 하는 방식으로 하는데, 어떨 때는 한 분이나 한 팀과 시간을 갖기도 하고, 어떨 때는 아래 사진처럼 여러분, 여러 팀과 시간을 갖기도 하죠.
위에서 잠깐 언급을 했었지만, 불과 작년 겨울만 해도 '그거 해서 뭐가 달라진다고,'라는 생각을 많이 갖고 있었습니다. 그냥 일상을 유지해가고 있었죠. 7년을 운영하고 있던 심리카페도 정리하고 그냥 더 편하게 살자란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되게 우울하거나 그러진 않았지만, 뭔가 살아있다는 느낌보다는 멈춰있거나 정체되어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때는 손실회피 심리가 꽤 컸었죠. 매우 방어적이고 보호적으로, 마치 초초초절전모드로 핸드폰을 사용하고 있는 사람과 같다고 해야 할까요,
그런데 별생각 없이, 별 기대 없이, 그냥 우연히 들렸던 커피숍에서, 우연히 이야기 나누게 되었던 커피숍 사장님과의 잠깐 대화에서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를 듣고 시작하게 되었던 것이 '꾸준히 글쓰기'였었답니다.
처음에는 이왕 시작한 거 3개월은 꾸준히 써서 올리자 하고,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마다 글을 올렸답니다. 그땐 글을 올리면 조회수가 5명, 10명, 며칠이 지나도 대부분 조회수가 두 자리를 넘지 않는 날이 이어졌었죠. 3개월이 되던 12월까지만 글을 올리고 그만하는 것으로 마음먹고 있었는데, 생각지 못하게 12월에 조회수와 함께 구독자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었어요.
저의 글이 존재감을 갖고, 영향력을 갖고, 그렇게 누군가들에게 반응을 일으킨다는 것이 주는 뿌듯함과 보람은 당연히 좋은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주위의 반응은 '꾸준한 글쓰기'가 가져다준 진짜 힘은 아니었어요.
주위의 반응이 주는 영향력은 컸지만, 그것이 멈춰있던 삶을, 초초초절전모드로 생활하고 있던 저를 다시 움직이게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잠시 신기하고 기분 좋은 것이었죠.
의도하거나 예상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 되돌아보니 꾸준히 글을 쓴다는 것은 저의 일상에 집중을 하고 의미를 부여하게 해주고 있었습니다. 어떤 내용의 글을 쓸지, 어떤 주제, 어떤 소재, 어떤 메시지, 어떤 도움의 글을 쓸지 생각하고 자료를 찾고 정리하는 시간이 하루라는 시간을 매우 정성 들이고 있는 것이었죠.
그리고 하루를 내가 원하는 것으로 채우는 것 또한 내 삶에 집중하고 있는 경험을 계속 반복시켜주고 있었습니다.
일로써 쓰는 글쓰기였다면, 이런 순간을 주지 못했을 것입니다. 저는 매번 저답고, 저스러운 글을 생각하고 만들면서 제 일상에 의욕과 기운과 영감을 계속 채우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더욱이 오래된 구독자분들은 아시겠지만, 중간에 독서모임을 만들어가는 시간을 함께 나누고 싶어서 한 달 동안 매일 글을 올리기로 하고, 정말 한 달 동안 매일 글을 만들어 올렸었답니다. 그게 정말 가능할까? 란 생각을 갖고 있던 것을 어찌 되었든 정말 해내니깐 저 스스로에 대한 근력이 생기고, 무언가 계속하고 있다 보니 감각 또한 깨어나더군요.
그리고 독서모임 오픈을 출사표와 같이 얘기를 꺼내고 나니 혼자 생각하고 있었다면 중간에 어찌 보면 그냥 흐지부지해버릴 수도 있을 법하거나 무언가 아직 준비가 덜 되었는데라며 더 많이 미뤘을 수도 있을 법한 것들을 회피하거나 미루지 않고 하게 되더군요.
꾸준히 글을 쓴다는 것은 나의 시간에 정성을 들이는 순간을 계속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렇게 주위의 반응이 아닌, 스스로 자신의 시간과 순간에 집중을 하고 정성을 들이고, 나다움에 대한 것, 내가 해보고 싶은 것을 담아내는 것이 무언가를 해볼 수 있게 해주는 근력과 감각을 키워주는 것 같습니다.
"할 수 있어"를 수백 번 말하고, "괜찮아"를 수천 번 말해도 할 수 없었던 것을 가능하게 만들어준 것은 '꾸준히 글을 쓴다는 것'은 생각과 다짐, 위로와 바람이 아닌, 일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행동이었고, 태도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머리로 알고 생각하는 것은 힘이 없어요.
일상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은 삶에 이야기를 만들어주는 것과 같아요.
그냥 흘려보내는 시간과는 다르죠. 보낸 시간이 비슷해도 의미를 머금고 있는 시간과 그런 것 없이 그냥 흘려보내고 있는 시간은 삶에 가져다주는 힘이 다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