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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남동 심리카페 May 04. 2023

점점 울지도 웃지도 않는 무표정한 사람이 되어가나요?


안녕하세요, 숲길에 있는 작은 비밀장소, 연남동 심리카페의 도인종입니다. 


심리카페를 하다 보면, 해줄 수 있는 말은 많지만, 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안쓰럽고 안타까워서 더 마음 무너지고 힘들게 하는 말을 해드리고 싶지 않을 때죠. 마음이 공허해서 집착하게 되는 경우는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외로움이 사그라들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에서 그런 모습을 잘 담고 있는 부분을 들려드리도록 할게요.






빨갛게 생기 가득한 양 볼에 늘 사랑스러운 미소를 띠던 소녀는 수도 없이 다시 태어나고 세기와 세계를 넘나들며 웃음을 잃어갔다. 그러나 반복해서 다시 태어날수록 소녀의 검고 깊은 눈에는 슬픔만이 가득했고, 소녀는 울지도 웃지도 않는 무표정한 사람이 되어갔다. 지독하게 쓸쓸하고 공허한 눈빛으로 제대로 먹지도, 잠을 자지도 않아 앙상하게 말라갔다. 


슬프고 우울하고 짜증 나는 이야기를 듣는 일이 소녀에겐 힘들지 않았다. 사람들보다 오랜 시간을 살아오며 기쁨의 순간들보다 힘든 순간들이 생에 널려 있음을 자연스레 알게 되었고, 그들이 털어놓는 속내가 소녀에게는 음악 소리와 같은 '말소리'로 들렸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을 가슴속에 담고 살아가다 마음에 얼룩을 남기는 것보다, 자신에게 풀어내며 천천히 그들이 마음이 풀려 깨끗해지는 시간이 좋았다. 내심 많은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다 보면 언젠가 소녀의 마음도 채워지지 않을까, 기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긴 시간에 걸쳐 다시 태어나면서도 지난날의 과오를 자책하느라 정작 찾아야 할 것을 눈앞에 두고 보지 못하는 건 아닐까, 란 생각도 들었다.


며칠을 꼼짝 않고 해가 지고 뜨는 것만 지켜보던 소녀는 드디어 집 밖으로 걸어 나왔다. 


'원망과 자책을 당분간 멈추자. 자책할 시간에 문제를 풀고 문제 안에서 살아내 보자. 그 끝엔 답이 있지 않을까.'


이제 소녀는 사람들의 마음을 본격적으로 치유해 줄 장소와 일을 찾아야 한다. 이 도시 메리골드에서.






'구겨진 옷을 다리듯 마음을 다리면 어떨까, ' 


검고 깊은 지은의 눈동자가 빛나기 시작한다. 


'여기라면 가능하겠다.'


눈을 감고 무언가를 구상하는 지은의 심각한 표정이 조금씩 펴진다. 


'어떤 마음은 조금만 다리면 펴지고, 어떤 마음에 진 얼룩은 지우지 않고 간직하는 편이 더 좋을 텐데, 어떤 마음은 구멍이 너무 많이 나서 세탁도 하기 전에 잔뜩 기워야 하고, 어떤 마음은 아무리 세탁해도 구정물이 멈추지 않을 텐데.'


그 마음들을 안고 편안히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을 상상한다. 


'이곳에 들어오면 마음을 회복해서 돌아가는 거야. 마음의 얼룩을 세탁해서 돌아가면 좋겠어.'


편안함이 가득한 공간이 되길 바라는 지은의 간절한 바람으로 동네에서 가장 높은 언덕에 마음 세탁소가 그렇게 탄생했다.






"사랑의 얼룩을 지우고 싶어요."


길고양이처럼 웅크리고 떨다가 먹이를 주는 사람을 만난 듯 반기는 연희의 어깨를 어루만지며 지은이 묻는다. 


"사랑이 왜 얼룩이야?"
"사실, 그 사람이 다른 여자들을 만나는 걸 알면서도 끝 사랑은 저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처음엔 서로 죽고 못 살았죠. 희재는 꿈이 많은 사람이었어요. 희재가 눈을 반짝이면서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는 게 좋았어요. 저는 어떤 일을 간절하게 하고 싶다기보다 해야 하니까 하는, 할 수 있는 일을 했거든요."
"희재가 작곡을 하고 싶대서 24개월 할부로 좋은 노트북을 사줬어요. 작곡을 하다 보니 연주를 직접 해야 한대서 기타도 사줬어요. 그랬더니 기타보단 건반이래서 전자피아노를 사줬어요. 그러다 직접 음악을 불러봐야 할 것 같대서 마이크도 사줬어요."


"바보 같죠? 근데 그땐 희재가 제 유일한 숨구멍이었어요. 작곡을 한참 해보더니 이번엔 보컬 학원에 다니겠다더라고요. 그 다음엔 연기 학원에 다니겠다고... 그 돈을 대주려고 저는 일 끝나고 편의점에서 알바도 하고, 식당에서 서빙도 하면서 희재의 꿈을 응원했어요. 돈은 벌 수 있는 사람이 벌면 되니까. 전 딱히 돈 쓸데도 없었거든요. 희재가 꿈을 이뤄서 행복해하면, 저도 행복할 것 같았어요. 어쩌면 제가 가져본 적 없는 달콤한 희망을 희재를 통해 이루고 싶었는지도 몰라요."


사랑이 모두 행복일 순 없지만 사랑하면 할수록 연희는 고갈되어 갔다. 가슴이 아팠다.


"괜찮아, 마음 아픈 거, 정상이야. 마음이 아프다는 건 진심으로 최선을 다했다는 거야."


연희는 사는 게 외로워 누군가에게 기댔지만 사랑으로 외로움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마음이 공허할수록 희재에게 집착했고 그는 그럴수록 멀어져 갔다. 멀어짐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애썼던 연희를 아프게 한 건 그가 아닌 자신이었다. 


"내가 보기보다 오래 살아서 해줄 수 있는 말은 많지만, 안 할게. 대신 선물 줄게."


지은은 연희에게 오른쪽 심장 쪽에 작은 하트 모양 얼룩이 새겨진 티셔츠를 건넨다.


"이 얼룩 참 예쁘네요."


가만히 얼룩을 바라보던 연희는 입은 옷 위에 선물로 받은 티셔츠를 새로 입는다. 햇볕에 잘 말라 깨끗하고 바삭한 옷을 입으니 왠지 용기가 생긴다. 누구나 홀로 선 나무지. 그러니 기대지 않고 홀로 잘 서봐야겠다. 전에 없던 용기까지 생겨나다니, 참으로 이상한 밤이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만 저렇게 웃을 줄 아는 사람이기보다, 내가 나일 때 스스로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웃고 싶어 졌어요. 그래서 그 얼룩들, 지우지 않으려고요. 아픈 기억이 떠오르면 떠오르는 대로 생각하고, 좋은 기억은 좋은 대로 생각하려고요."


희망, 무엇이든 잘될 것 같다는 설렘 같은 기분을 오랜만에 느끼며 돌아 선 채로 잠시 미소 짓는다.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하다.


"그런데 사장님, 사장님이 예전에 살던 마을은 어떤 마을이었어요?"
"너랑 재하, 엄청 친하지?"
"어, 네! 어떻게 아셨어요?"
"참 둘 다 질문이 많아. 쓸데없는 거 묻지 말고 돌아가. 나 피곤해."


지은이 몸을 빙글 돌려 창 밖을 바라본다. 팔짱을 끼고, 눈을 감고, 서서 잠을 자듯이. 






숲길에 있는 작은 비밀장소의 보관할 적절한 런닝타임과 전달하고자 하는 부분과 내용 전달에 초점을 맞춰 오디오 콘탠츠로 제작하기 위해 부분 부분 각색하고 다듬었습니다.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라는 좋은 책을 내주신 윤정은 작가님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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