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카페에서 상담을 해드리다보면,
"이유는 모르겠는데 슬퍼요. 왜 그러는지는 모르겠는데 서운해요. 정확히 뭐 때문에 속상한지 모르겠어요. 화날 일이 아닌데 화가 나요."
라는 말을 하시는 분들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왜 서운하고 속상한지에 대해 심리치료사 이남옥님은 <나의 다정하고 무례한 엄마>라는 책에서 이런 이야기들을 해드리고 있답니다.
어린 나이에 식모살이를 간 여자분이 있었습니다. 남의 집 살이를 하면서 설음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때의 기억은 큰 상처로 남았고, 줄곧 엄마에 대해 부정적인 이야기만 쏟아냈습니다. 특히 잊히지 않는 기억이 있다고 했습니다.
어느 날은 엄마가 너무 그리워서 먼 길을 헤쳐 집에 갔다고 해요. 논두렁에 굴러 몸에 상처를 입기도 하면서 그 먼 길을 찾아갔는데 엄마가 자신을 보고 한 첫마디는 이거였다고 합니다.
“돈 가지고 왔니?”
이 이야기를 하면서 그녀는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쏟아냈습니다.
<양가적 애착 유형>의 사람들이 어린 시절을 떠올렸을 때 연상되는 다섯개의 형용사를 갖고 들려주는 이야기들을 들어보면 부정적인 기억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상처받은 이야기, 서러워서 가슴 아픈 이야기를 하면서도 부모를 떠나지 않습니다. ‘보지 않고 각자 살자. 그래. 내 인생 살자’ 할 수도 있는데 절대로 부모를 떠나지 않습니다. 떠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계속 가져야 했던 것은 자신의 서운하고 속상했던 감정과 그러한 감정을 읽어주지 않고 못하는 환경의 경험이죠. 그리고 그러한 환경과 함께 자기 자신도 자신의 서운하고 속상한 감정을 읽어주지도 다루어주지도 못한 채 살아내 갑니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모르는 자기 자신으로 성장하는 것이죠.
그렇게 마음에 생긴 결핍으로 인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관계를 맺고 서운해하고 속상해하며 안정감을 갖지 못하게 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연인 간에도, 친구 사이에서도 잘 보게 됩니다. 한번 자신에게 잘 대해주고 챙겨줬던 경험을 하게 되면, 그것에 대한 미련에 많은 시간과 감정을 쏟아버립니다. 저자는 이러한 모습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해줍니다.
당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을 때 연상되는 형용사를 다섯개만 선택해보세요.
그렇게 다섯개의 형용사를 선택하게 하고, 그 형용사를 활용해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설명하게 하면, 애착 유형에 따라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는 방법이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기억을 어떻게 다루고 표현하려고 하는지에서 애착 유형마다 다릅니다.
<안정 애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긍정적인 이야기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긍정적인 이야기도 하지만 자연스럽게 부정적인 이야기도 하죠.
안정 애착인 사람 역시 성장하면서 화가 나기도 하고, 불안하거나 억울한 감정을 갖기도 합니다. 하지만 부정적인 에피소드가 침울하고 답답하지 않습니다.
사람에 대한 신뢰 경험이 있고, 자신에 대한 수용 경험이 있고, 관계에 대한 회복 경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부정적인 에피소드 역시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입니다.
반면, <회피적 애착>을 형성하고 있는 사람은 오로지 긍정적인 이야기만 합니다. “어머니는 훌륭한 분이셨어요. 존경스러워요. 가족을 위해 희생을 하신 분이세요.”
이렇게 말하는 유형의 사람들은 시종일관 단편적이고, 언어적인 기억에서만 이야기가 나오고, 구체적인 심상과 장면에 대한 이야기가 없습니다. 체험과 경험이 없는 것입니다.
그럴싸하게 꾸미는 것이죠. 긍정적인 모습과 이야기로. 어린 시절에 대해 긍정적인 단어와 이야기만 나온다고 해서 안정 애착이 아닙니다. 언어적인 정보와 구체적인 심상 정보를 구분해야 합니다.
그런데 <양가적 애착 유형>의 사람들은 부정적인 이야기를 많이 하세요.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요. 양가적이라는 것은 매달리면서 다가오면 원망하는 두 반응을 보이는 것을 말합니다. 식모살이를 갔던 여자분이 여기에 해당되죠.
실제로 제 심리카페에서도 이런 분을 많이 보게 됩니다. 안타깝고 안쓰럽죠. 분별을 해서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는 알아도, 원망하면서 놓거나 끊지를 못하니까요. 않는다기보다 못한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죠.
결핍과 불안정함에 대한 목마름이 분별한 것을 바탕으로 행동을 못하게 만드는 것이죠. <양가적 애착 유형>을 보이는 분은 스스로 자신에 대한 자각과 함께 필요한 것이 한 가지가 더 있답니다.
바로 자신이 보내고 겪어야 했던 힘겨웠던 감정과 버거웠던 마음을 읽어주고 이해해주고 마음 써서 살펴주고 어루어주며 안심시켜주는 관계가 있는 환경이죠. 그러한 사람, 그러한 공간이 양가적 애착 유형의 틀에서 벗어나올 수 있게 해줍니다.
속상함과 서운함을 피하기 급급한 채 방치하는 것이 아닌, 자신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인식을 할 수 있게 되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답답하면서도 계속 미련에 끌려가는 것을 끊고 벗어나올 수 있다는 것을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두 가지가 모두 필요해요. "나의 의지"와 "내 곁의 환경".
안녕하세요. 연남동 심리카페의 도인종입니다. 심리카페에서 상담을 해드리다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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