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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남동 심리카페 May 26. 2023

행복을 위한 온갖 준비를 마치고 나서야 행복해 보겠다는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에 쫓기지만, '열심히'는 하지 않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하지 않고 있는 자신에 대해 자책을 하는 분들이 있죠.


안녕하세요. 숲길에 있는 마음약방, 연남동 심리카페입니다. 


타성에 젖어 있는 사람은 '열심히'라는 생각에 빠져 있는 것 같습니다. '열심히'한다기보다 '열심히' 해야 하는데 라는 생각에 빠져 있는 것 같습니다. 행복에 대해서도 그런 것 같습니다. 잘 모르겠고, 불안하고 초조하고, 그러다보니 무언가를 갖추어도 무언가 더 좋은 것을 갖추기 위해 또 준비합니다. 


이러한 모습에 대해 이근후님의 <어차피 살 거라면, 백살까지 유쾌하게 나이드는 법>이라는 책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들려드리도록 할게요.






한 번은 살아야 한다. 그리고 한 번만 살 수 있다. - 에리히 케스트너의 <두 가지 계율>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해야 한다고 하는 길을 따라, 눈앞의 목표를 따라 가기 급급한 삶을 살다보니, 왜 그래야 하는지,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스스로 답을 찾을 겨를이 없었습니다. 목표지향적인 삶은 어느 날, 앞으로 무엇을 목표로 달려가야 할지 감이 안 잡히는 푯대를 잃으 배처럼 흔들리게 될 때가 있습니다.


거기에 무언가 하기에 시간 많지 않다는 불안과 초조까지 가세하면 삶은 더욱 힘들어집니다. 


목표에서 과정으로, 타성에서 자발성으로의 전환, 이것은 경쟁적인 삶, 목표지향적인 삶을 살아와야 했고, 살아왔던 우리들에게 나이가 들면 한 번쯔 거쳐야 하는 생의 과업입니다. 


사회에 의미 있는 일도 좋고 봉사도 좋은데, 무엇보다 내 안을 채우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요? 그 동안 정작 자기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일을 할 때 즐거우며, 나에게 의미 있는 행위가 무엇인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으니까요. 


삶의 목표를 잃었다고 우울해지는 사람, 무기력해지는 사람을 많이 보게 됩니다. 


나답게 사는 것 외에 다른 답이 있을까요?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 외에 다른 목표는 전부 한시적일뿐입니다. 사회에 의미 있는 일도, 봉사도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 자기다움에 힘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면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나답게 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살아내가는 환경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방식은 자존감을 떨어뜨리고 있다면, 생각만 달리하고, 보여지는 의미만 그럴싸해보이는 것을 하고 있다고 해써 자존감이 생기지는 않습니다. 


자존감은 선함과 악함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선한 사람이라고 자존감이 높지 않습니다. 오히려 과도하게 선한 행동과 반응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실제로 자존감이 매우 낮은 분들이 많습니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살다 보면 몸음 피로하고 마음은 늘 허전하게 됩니다. 불안감은 생각을 경직되게 만들고, 경직된 생각에서는 어쩔 수 없어 라는 생각을 하게 되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지난날을 생각하면 헛되게 살아온 것 같고, 미래를 떠올리면 암담하기만 하게 느껴지게만 됩니다. 


엄살을 피우는 것이 아니랍니다. 그렇게 만드는 환경에 계속 있으면 그렇게 됩니다. 나답게 살기 위해 지금의 환경에서 나와야 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을 이야기드리자면, 우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예를 들어, "선생님, 젊어 보이세요." 이런 말에 현혹되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젊어 보여봤자 먹는 나이가 어디로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젊어 보인다는 게 젊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스스로 젊다고 우긴다면 그만큼 어리석은 짓이 없습니다.


내가 가진 조건이란 것이 유리한 것이 별로 없을 수 있습니다. 둘러보면 우울하고 슬픈 일들이 가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하는 마음으로 살펴보면, 전부 나쁜 조건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몸도 불편하고 마음도 불편하더라도 소일을 할 구석은 어디엔가 있습니다. 지금의 '나'는 지난 과거의 결과물입니다. 과거에 축적한 지식과 경험이 있게 마련입니다. 이게 바로 숨어 있는 재간입니다. 


만약에 자신의 재간을 못 찾게다면, 그것은 쌓아 온 결과물을 과소평가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서두르지 말고 '야금야금' 실천해 보아야 합니다. 알았다고만 하고 실천이 없다면 머리만 복잡해지고 마음만 불편해질 뿐입니다. 초조해 하면, 마음만 급할 뿐 몸이 따라주지 못합니다. 


결과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과정을 즐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동안 처절하게 경쟁하면서 살아왔다면, 이제는 그 가치를 보상받아야 합니다. 그 보상은 다름 아닌 '야금야금' 하는 '과정의 즐거움'입니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 하면, 결과에만 집착해서 시도 자체를 안 했던 것 중에는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었던 것들도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삶을 과거에 대한 집착과 후회,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으로 흘려보내고 있다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일까요?


우울감의 원인 중에는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해 보지 못했다는 자책감도 큽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라도 자유로운 자신을 꿈꿔 보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일 것입니다. 내가 나답게 살 때 가장 빛나는 나의 존재감이 있습니다. 


하루를 살아도 내 인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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