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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남동 심리카페 May 27. 2023

말 잘 듣는 착한 부모로 살자 (품격에 관하여)

아프고 힘들 때 품격 있는 모습이라는 것이 있다. 아프고 힘든 것을 수용하되, 지금 현재 누릴 수 있는 일들을 찾아서 즐기는 적극적인 태도이다. 


안녕하세요. 숲길에 있는 마음약방, 연남동 심리카페입니다.


예전과 다른 상황과 상태로 인해 아프고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속상하고 답답할 때가 있죠. '내가 되고 싶은 모습, 내가 되어주고 싶은 모습은 이런 것이 아닌데',라는 생각을 갖곤 하는 분을 위해 이근후 님의 <어차피 살 거라면, 백 살까지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이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을 다듬어서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참고로 이근후 님은 현재 연세가 여든여덟이세요. 






'아빠, 물 많이 드세요.'


폭염으로 온 나라가 지글지글 끓던 작년 여름 어느 날, 큰 딸에게서 메일이 왔다. 연일 울려대는 폭염 경보에 나에게 보내는 '경고장'이었다. 


자식들의 잔소리가 늘어 가는 걸 보면 나도 영락없는 할아버지가 된 게 분명하다. 더군다나 4년 전에는 집에서 주차장으로 내려가다가 계단에서 구르는 바람에 머리를 크게 다쳤다. 다행히 외상만 있을 뿐 뇌 기능 손상은 없어서 치료를 받고 퇴원을 했었다. 


그 일이 있은 후 아이들은 나에게 '금족령'을 내렸다. 밖에 나가지 말라는 명령이 아니라, 산에 가지 말라는 엄명이었다.  평생 산을 오르며 지친 심신을 달랬던 나에게는 슬픈 명령이었다. 안 그래도 체력이 떨어져 산을 잘 오르지 못하는데, 자식들까지 못 하게 막으니 더욱 슬펐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할아버지는 무릇 자녀의 말을 잘 들어야 하는 법이다.


때론 구차하게 느껴져도 원하는 걸 얻으려면 재롱을 섞어 가며 협상도 이끌어 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얻어 낸 타협안이 잘 만들어 놓은 둘레길은 가도 좋다는 허락이었다.


하지만 이 즐거움도 어쩌다 누리는 호사다. 더운 날, 추운 날, 비 오는 날, 미세먼지 심한 날을 빼면, 갈 수 있는 날도 적으려니와 체력이 점점 떨어져서 산책하는 횟수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언젠가는 이런 산책마저 그림의 떡이 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 느끼는 슬픔은 자녀의 금족령으로 인한 슬픔과는 비교가 안 되리라. 


그러니 조금이라도 체력이 허락하는 한 산책의 기쁨을 포기하지 말아야겠다. 그것이야말로 내가 지금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예전처럼 마음껏 몸을 움직일 수 없다고 슬퍼하고 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 기억력이 나빠지면 달력에 표시를 잘해 두고, 집중력이 떨어지면 첨단기기의 도움을 받으면서 노쇠한 내 몸에 적응하여 살아가는 법을 하나씩 찾아가는 수밖에 없다. 


힘에 부치는 일이 늘어 간다는 사실은 슬프지만, 그것은 응당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나는 정신과 의사로 일하면서 오랫동안 환자들을 진료했다. 그런데 환자들은 대게 제 나이보다 훨씬 늙어 보였다. 아마 환자들이 오랫동안 고통을 감수하고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외모에 영향을 끼친 게 병력만은 아닌 듯했다. 


정신과 의사로서 나는 환자들의 아픈 마음을 잘 듣고 객관적으로 구성하여 되돌려주는 일을 하는데, 자연인으로서 나는 스스로에게 한 가지 결심을 하곤 한다. "몸이 아프다고, 내 마음대로 안 된다고, 주저앉아 푸념하지는 말자."


아프고 힘들 때 품격 있는 모습이라는 것이 있다. 아프고 힘든 것을 수용하되, 지금 현재 누릴 수 있는 일들을 찾아서 즐기는 적극적인 태도이다. 


"너희들은 늙어 봤냐? 나는 젊어 봤다"


라는 말이 있다. 이는 수용력과 표현력이 풍부할 수 있다는 뜻 아닐까? 아프다고 징징대거나 힘들다고 푸념하는 식이 아니라, 좀 더 세련되고 현명한 방식으로 표현할 줄 아는 것, 또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 품격 있는 태동니 것 같다. 


"아빠, 물 드셨어요?"


메일로만 전한 것이 미덥지 못했는지 딸에게 전화가 왔다. 자녀들로부터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들을 때마다 마음 한구석에는 받아들이기 싫은 거부심도 든다. 


'나 아직 정정한데, 내 마음은 한창인데...' 


하지만 이런 마음을 절대로 표현하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자녀의 말이 백번 옳다. 싫은 마음은 받아들여하는 것에 대한 슬픔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슬픔은 받아들이되 거부심은 내려놓아야 하는 것 같다. 


'그래, 자녀가 갖는 연민의 마음을 가슴으로 받아들이자. 말 잘 듣는 착한 아버지로 살자.'


그래도 어떤 날은 괜한 심통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럴 땐, '내 체력이 쇠잔해서 산행을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들이 나를 걱정해서 안 가는 거다'라는 식으로 슬픔을 달래 본다. 어린아이가 할 법한 유치한 핑계지만, 그러고 나면 슬픔이 한층 가라앉는다. 


이렇게 마음을 다스리는 것 또한 내 상황과 상태에 적응하는 나만의 방식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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