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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이옴 Sep 27. 2024

날것의 인간을 사랑하는 법

날것의 인간, 날 선 시선

몸이나 마음이 힘들면 사람은 예민해진다. 즐겁자고 떠난 여행에서도 여지없이 예민해질 때가 있는 건 마찬가지다. 예쁜 풍경에 맛있는 음식이 있을 줄만 알았는데, 냄새나는 거리와 불친절한 사람도 있다.


그럼에도, 놀랍게도 이 여행을 통해 인간을 사랑한다.


캐나다 동부를 혼자서 여행한 적이 있다. 토론토에서 시작해 몬트리올을 거쳐 퀘벡까지 가는 일정이었다. 5박 6일이라니, 한국에서도 혼자, 아니 누구와 같이라도 이렇게 오래 여행한 적이 없는 대학생에게 이 여행은  분명 도전이었다. 함께 갈 만한 친구를 물색했지만 찾지 못했고, 지 않은 걸 후회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혼자라도 떠난 여행이었다. 혼자였기에 준비는 철저했다. 토론토 공항에 내려서, 호스텔에 체크인을 하고 캐리어를 맡긴 다음, 스타벅스에 가서 이메일로 받은 시금치 랩 쿠폰으로 아침을 저렴하게 해결한다—캐나다 스타벅스는 카드에 등록된 이메일로 무료 샌드위치, 커피 쿠폰을 종종 보내주곤 했다.



밴쿠버에서 출발했으니 이미 해외이긴 했어도 어쨌거나 인생 처음으로 혼자 한 해외여행은 대략 이 정도까지 순조로웠던 듯하다. 누군가 미션이라도 주는 듯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돌아오는 버스가 그곳에 도착한지 시간 만에 떠나야 하는 버스가 된 순간부터 완벽—할 예정이었던한 계획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첫날부터 대차게 시련에 빠지며 혼자 하는 여행의 유의사항 리스트를 채워갔다.


맛집에 가도 메뉴는 하나만 먹을 수 있습니다.

일행이 있을 때보다 위험에 취약할 수 있으니 더 조심, 또 조심하십시오.


캐나다와 미국에는 우리나라보다 '이상한' 사람이 많았다. 내가 한국인이라 그런 것이고 그들 눈엔 이상하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정제되지 않은 날것 같은 사람들을 도처에서 볼 수 있었다. 설렘보다 예민함이 커질 때면 각들이 곤두선다.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극적으로 돌아오는 버스 타기를 성공해 토론토로 돌아와, 버스였나 트램이었나를 타고 어딘가로 가 익숙한 듯 낯선 풍경을 보고 있었다. 버스 안으로 시선을 돌리자 도트 무늬 셔츠를 입은 아저씨가 보인다. 어떤 색이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도트는 빨간색이었던 듯하다. 강렬한 색상과 패턴의 셔츠를 입은 그는 리가 벗어지고 풍채가 있는 중년 남성이었다. 어디로 향하는지, 어떤 일을 하는지 모르지만 젊고 건강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꼭 젊은 사람만 저렇게 입을 수 있다는 것도, 젊음에 기준이 있다는 것도 아니지만 면서 '나이에 맞지 않게 입더라'하는 말을 한 번쯤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잣대에 굴하지 않고 꿋꿋이 튀는 것도 쉽지 않다. 직히 말하면 이야, 외국이라 그런가 아저씨들도 튀게 입네, 좋다, 였다.


기분 좋게 타인의 취향을 감상하며 긴장을 풀 때쯤 었니 긴장 풀기엔 일러, 하는 듯 다른 장면이 보인다.


창밖에 래인지 고성인지 모를 소리를 지르는 사람이 있었다. 자였고  한복판이었다.  미쳐 보였다. 분명 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였고, 이제 겨우 여행을 즐기고 있는 내 감상을 깨 기분이  좋지 않거니와, 무섭기도 했다. 아무래도 숨기기보다는 유롭게 표현하 문화권이라 이곳엔 이런 이들이 종종 보이는 걸까. 이 순간에 내가 옆에 지나가지 않아 다행이다. 불쾌함을 곱씹는 사이 맞은편에 앉 승객과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허허, 하 가벼운 미소와 함께 어깨를 한 번 으쓱한다. 그런 바람에 곱씹기를 멈추고 생각한다.


Whatever. (아무렴.)


그러자 창밖의 사람은 그저 즐거워 보인다. 그것은 찰나였으므로 내가 뱉고서도—마음으로 뱉었지만— 마법 같은 말이었다. 혼자만의 그 경험이 꽤나 충격었는지 그 여행올리면  기억이 유 또렷다.



밴쿠버에서 비슷한 일이 또 있었다. 지하철 시간표는 본디 버스보다 좀 더 잘 지켜지는 편인데, 밴쿠버의 지하철 스카이트레인은 우리나라의 지하철과는 다르게 꽤 자주 멈춰 있다. 그날도 어느 역에 멈췄고,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들어왔지만 열차는 출발하지 않았다. 문이 닫히지 않자 이곳에 좀 더 멈춰 있겠구나 생각할 때쯤 누군가 큰 소리로 뭔가 외치기 시작한다. 그래, 이곳은 캐나다였지. 또 시작이구나. 그러나 들리는 건 생각지 못한 대사였다.


Today's my birthday! Congrats to me!
(오늘 내 생일이야! 축하해(줘)!)


냅다 생일 축하 요구라니 한국에 수십 년을 살며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광경이다. 3초 정도였을까, 정적이 흐르고 곳곳에서 해피 벌쓰데이, 하며 박수가 쏟아졌다. 얼떨결에 같이 박수를 치고 있자니 묘한 경이로움에 마음이 동했고, 생일자가 열차 가운데 심어진 봉을 잡고 두어 바퀴 돌며 축하와 박수에 화답하자, 스카이트레인은 공연장이 됐다. 우리는 함께 호흡하는 관객이었다.


이옥섭 영화감독이 누군가 미워지면 그 사람을 사랑해 버린다고, 자기 영화의 캐릭터라면 어떨까 생각하면 귀여워진다고 한 걸 어딘가에서 봤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가 그런 순간들이 아니었을까. 는 분명 불쾌하게 여겼던 사람이 사랑스러워지는 경험을 했다.


이제 런 순간에 사람에 대한 평가와 판단을 보류하고 한 번쯤 웃어줄 수도 있게 됐다. 사실 이 모든 건 마음에 달려있는 게 맞겠지만 확실히 내 마음은 박해져 있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니  마음은 다시 메마르곤 하겠지만, 이런 순간이 종종, 아니 가끔 있다면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근래의 나를 돌이켜보면 아니나 다를까 까칠해져 있으니, 어쩌면 꽤나 당당하게 불쾌함을 쏟아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지금 이렇게 기억을 파먹으며 웃고 말겠노라 했던 그때로 돌아간다.


날것 같은 이들을 통해 정제된 줄 알았던 나의 날 선 시선을 느낀다. 낯선 곳에 간다는 건 낯선 사람들을 마주한다는 것이며, 좋은 곳에서도 늘 좋은 순간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안다. 그리고 좋아서 보이지 않았던 약점과 실망스러워서 놓쳤던 좋은 점을 비로소 인지한다. 그들이 날것 같은 사람일까, 내 시선 날이 서 있는 걸까.


사랑하는 법을 잊었다는 걸 깨달을 때 주문을 뇌어 보기로 한다. Whatever. 아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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