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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이옴 Oct 19. 2024

파란 불가사리를 좋아해도 되나

괌에 가면 에메랄드 밸리라는 곳이 있다. 괌 여행이 처음이라면 한 번쯤 가게 된다. 차를 빌려 지도에 에메랄드 밸리를 찍고 남부로 내려간다. 주차장에 도착하면 공장이 보이지만 조금걸어 들어가면 에메랄드 물빛을 발견한다. 에메랄드색이라 호수 같겠지만 이곳은 바다인데, 얕고 맑은 덕에 물속이 훤히 보인다. 가까이 가니 물고기라던가 불가사리라던가 하는 생물들이 보인다. 와중에 예쁜 물고기들은 더 눈길이 간다. 내가 아는 불가사리는 빨간색이고 두툼했는데, 파랗고 가는 불가사리가 있다.


물고기들아 미안, 예쁜 물고기—불가사리가 물고기는 아닌 것 같지만 영어로는 starfish인데 적당히 물고기라고 치자—가 더 눈에 들어오네, 라며 거기까지 가서 외모지상주의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재미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느끼다, 그마저 인간 세상의 것이고 물고기들한텐 딱히 상관없는 게 아닌가, 하며 또 괜히 민망해진다. 외모로 볼 것인가 미학으로 볼 것인가. 아름다움이란 좋은 것이지. 물고기는 인간과는 거리가 멀잖아. 그런데 강아지들은 외모로 왕따를 시키기도 한다던데. 그럼 강아지들은 인간과 가깝다고 해야 하나? 물고기는 멀고? 그럼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동물은?


여행이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아까워 세상을 보게 한다. 이 감정을 놓치는 게 아까워 글을 쓰게 한다. 망상이든 뭐든 각이란 걸 하게 한다. 덕분에 예쁜 물고기를 보며 즐거워하다, 물고기를 외모로 평가한 것 같아 미안하다가, 생물이 아니라 자연으로 보면 미학이지 않나 하다가, 이번엔 이 물고기들을 아 놓은 곳이 아니라 그들이 사는 곳에서 보아 다행이다 싶다.


동물원이나 아쿠아리움 인간의 욕심이라는 생각에 동의한다. 나도 가보긴 했다. 어린이들의 주요 소풍지니까. 젠가 내게 아이가 있다면 아마도 데려갈 것이다. 아이들은 좋아하니까. 세상살아야 할 생물을 우리나 수조가둬 제 명에 못 살게 해 가며 인간의 호기심을 채워야 하나 싶어 나 혼자서는 가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내가 세상 모든 아쿠아리움을 없앨 수 없다 내 아이들의 친구들에게는 있는 세상이 내 아이에게는 없는 건 싫으니까. 간에게 없어도 되지만 남이 가졌기 때문에 쥐어줄 세상을 위해, 말하지 못하는 생물의 세상을 빼앗는다.


여섯 살 정도 되는 어린 인간에게 말 볼까.


동물을 가둬두는 건 인간의 욕심이야. 그건 나쁜 거니까 우리는 절대 동물원도 아쿠아리움도 가지 않을 거야.


그리고 그는 동물원에 다녀왔다는 친구들에게 말한다. 그건 나쁜 거야! 게 맞나? 아니 그러니까,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방향 말고, 이 세상을 순탄하게 살아가는 방향이 맞나? 지금 나는 그의 세상은 그가 택하여 살아갈 수 있을 때, 그때 비로소 완성하였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나는 아이가 아니면 아쿠아리움 따위는 즐기지 않을 것이냐, 하면 그것 또한 자신이 없다. 여행 중에 세계적인 아쿠아리움으로 유명한 곳이 있기라도 한다면 가보게 되지 않을지. 이렇게 다시 비() 인간의 세상을 빼앗고야 다.


그러고 나니 예쁜 불가사리를 좋아하는 것 정도는 문제가 아니라는 엉뚱한 결론에 다다른다. 좋은 명분을 하나 대자면 인간은 외모로 평가받는 걸 인지하지만 불가사리는 인간의 동물 외모 평가를 인지하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외모든 미학이든 그들에게의 관심이 연구든 예술이든 좋은 방향으로 발현될 수도 있겠다.


아쿠아리움이나 동물은 글쎄, 인간과 동물 모두에게 좋은 그런 곳이 있나. 로의 세상을 지킬 수 있는 길은 역시 살아야 하는 곳에 사는 거 아닐까. 오늘도 생각뿐인 소극적인 인간이 되고야 말지만, 그래도 생각하는 소극적인 인간은 미미한 어떤 역할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여섯 살 인간이 열여섯쯤 된다면 함께 이야기해 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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