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보다 조금 다른, 차분한 새해를 맞았다. 늘 나이 먹는 게 싫어 한 살 어린 날이 끝나는 아쉬움으로 새해를 맞이했다. 나이 세는 법이 달라져 올해는 해가 바뀌었지만 나이가 달라지지 않았다는 게 다른 점이다. 그렇지만 문득, 이제 정말 부정할 수 없는 삼십 대구나 싶다. 더 어른들이 말한다. 삼십 대는 사실 뭐든 할 수 있는 나이라고. 모르지 않는다. 못할 것 같아서 아쉬운 것도 아니었다. 사십 대, 오십 대 언젠가에 지금을 돌이키면 분명 정말 아가였지, 하겠지. 지금이 소중한 것도 안다. 다만 이십 대만을 꿈꾸던 어린 시절의 내가 방심한 사이 삼십 대가 되어 있으니 낯설어서 그렇다. 배우 최화정의 유튜브 채널에서 그랬다.
그때가 소중한 줄 모르죠? 몰라야 젊음이에요.
새해맞이로 해돋이를 보는 데는 흥미가 있었던 적이 없다. 새벽 기상을 매우 싫어하며, 밝을 때 눈을 뜨는 걸 좋아한다. 새해에는 꼭 이렇게 해야지, 하고 다짐도 하지 않는다. 이미 벅찬 내게 더 짐을 지우는 것 같다. 혹여 지키지 못한다면 연말에 자책하고 있을 것만 같다. 사실은 그래서 평소에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다. 거국적인 다짐을 하기 싫어서 평소에 열심히 산다는 게 좀 웃기게 들리려나. 물론 게으를 때가 많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열심히 살고 있다고, 조금만 덜 게을러 보자고 생각해 본다. 그래서 새해 첫 날도 나에겐 평소와 비슷하다.
올해 가장 잘한 일, 못한 일을 떠올리자니 나태했던 시간들이 함께 떠올라 올해 가장 좋았던 책, 영화, 드라마를 생각해 본다. 나의 한 해를 그렇게 요약하기로 마음먹었는데, ㄷ이 묻는다.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일, 잘한 일이 뭐야? 아쉬운 일은 뭐야? 파리 여행도 너무 잘 다녀온 것 같고, 브런치를 시작하고, 글을 그래도 열한 개나 발행한 건 정말 정말 뿌듯한 일이야.
정말이다. 글 쓰는 나를 좋아했는데, 넘치는 이야기를 감당하지 못해 학교 다녀와서 밤에는 늘 노트북을 켰었는데, 언젠가부터 멀어졌다. 요즘은 쇼츠와 릴스에 잠식되어 생각하기를 멈춰버린 것 같기도 하다. 와중에 브런치에 도전하고, 글 쓰기를 시작한 건 너무 잘한 일이지. 그래서 오늘은 새해 첫날, 글 한 편을 쓰고 싶었다. 역시나 무슨 이야기를 써야 할지, 요즘 내가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 모르겠어서 메모장을 열어본다. 한참을 내리다 이십 대 언젠가 썼던 글을 발견했다.
스물한 살이 스무 살보다 나쁘지만은 않았듯
이십 대 어느 즈음, 지금이 인생의 황금기라고들 한다. 그러니 스물한 살이 스무 살보다 나쁘지만은 않았듯 머지않은 어느 날의 내 삶이 지금보다 더 좋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면 그때도 딱 지금만큼 행복할지도. '나도 저럴 때가 있었는데'하고 탄식할 순간이 오려나 아직은 조금 두렵긴 하지만 말이다. 심지어 그때는 지금보다 어떤 에너지가 부족하지 않을까, 그래서 덜 행복하지는 않을까 막연한 짐작까지 한다.
지금은 한 살씩 정도야 나이 먹는 게 그리 나쁘지만은 않지만, 언젠가 십 년 이십 년이 훌쩍 흘러 있을 즈음에도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당장 두렵게 다가오는 건 어쩌면 그 사실보다는 아직은 멀게 느껴지는 그 순간에 대한 막연함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다른 이유라면 죽음에 더 가까워지는 게 두려운 걸까. '죽음' 그 자체를 불쾌해했던 10대 때와 달리, 지금은 존재 자체에 대한 인정은 하지만 여전히 무섭고 싫긴 마찬가지이다. 그 이유로 나는 나이 드는 게 무서운 걸까. 그럼 죽음이 무서워지지 않을 때 즈음에야 나이 드는 것도 두렵지 않게 될까.
황금기는 꼭 이십 대여야 하나. 이렇게 말하며 언제나 황금기처럼 살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십 대가 지나고 나면 어이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더 좋네, 하면서. 십 대가 지나가는 건 그리 아쉽지 않았는데, 이십 대는 자꾸만 아쉽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시간이 빨리 가는 것 같은 게 인체시계가 실제로 변화하기 때문에 근거가 있다고 한다. 열심히 끄덕이다가 문득 십 대 때의 삶보다 이십 대를 어느 정도 살아온 지금의 삶이 너무 행복한 나머지 자꾸 걱정을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삶은 누적이니, 지금이 아니라도 지금의 행복한 순간들이 합쳐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도 더 행복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몇 살 때 썼더라,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십 대 중후반쯤이었던 것 같은데, 아직 글에서 말한 십 년 정도가 '훌쩍' 흘러 있진 않지만, 대충 이십 대가 지나 삼십 대가 되어 타임캡슐을 열어보듯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삼십 대가 되니 어때? 여전히 두려워? 나이 먹는 게 아쉬워?
응, 여전히 두렵고 아쉽네.
죽음에 가까워지는 것 또한 여전히 두렵다. 다만, 나도 나지만 나 말고, 엄마 아빠가 나이 드는 게 두렵다. 내 손은 아빠 손을 닮아 예쁜 편인데, 기어를 잡은 아빠 손이 거칠하고 퉁퉁하다. 이십 년을 넘게 휴무도 많이 없이 서서 일한 엄마가 절뚝이며 걸을 때가 많다. 그런데 가족들이 크게 아프지 않은 게, 다들 무탈한 게, ㄷ과 함께 할 수 있는 게 미치게 행복하다. 그래서 두렵다.
다행히 이십 대의 나도 삽십대의 나도 행복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인 게 감사하다. 이십 대였던나의 추측대로 행복한 순간들이 합쳐 지금의 나는 더 행복한가. 아니, 그런 이십대였어서 행복하고, 그와 별개로 이 삶이 행복하다. 사십 대에도 오십 대에도 여전히 두렵겠지. 그때 역시 예상과 달라도 좋으니 그럼에도 여전히, 행복을 발견해 내는 사람이었으면.
회사 동기 언니에게 다니는 한의원 선생님이 여자분인데 서른아홉, 마흔 정도로 보인다고 했더니 "나이가 꽤 있으시네?" 한다. 젊은 의사 선생님이라는 의도였는데. 혹시 우리가 몇 살인지 아냐고 물었더니 아 몇 살 차이 안 나는구나, 란다. 임신한 회사 선배에게 예정일이 언제냐고 했더니 내년이라고, 35세에 아기를 낳게 됐네, 조금 더 빨리 낳을걸, 하길래 선배 나이가 언제 그렇게 되었나 싶어 35세냐고 화들짝 놀라는 것도 잠시, 아, 저도 비슷하네요, 했다. 흐르는 시간을구태여 인지하고 두려워하기만 하는 줄 알았는데 낯설어도 한다. 이렇게 종종 몰랐던 척 낯설어하며 나이 드는 것도 괜찮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