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죽음이 가까워진다는 것

나이가 들면 죽음이 두렵지 않을까

by 지이옴

98세인 나의 할아버지는 정정하시지만 종종 아프다. 편찮으시다고 표현하자니 중증인 거 같고, 야금야금 아프다. 이번엔 배가 아프고 설사를 해서 병원에 가셨는데, 새벽에는 더 심해져 응급실로 향했다. 최근에는 매주 아픈 일이 생겨 아빠는 고생이다. 염증 수치가 높아 CT를 찍어 보고 입퇴원을 결정한단다. 의료원 응급실에선 할아버지가 고령인 탓에 진료를 거부했고, 대학병원은 아니지만 의료원보다는 조금 큰 처음 듣는 병원으로 갔다.

다행히 약을 드시고서 괜찮아지셔서 입원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설사가 멎지 않아 병원에 다시 가기로 했다가, 또다시 좀 괜찮아지셨다고 가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사실 1928년생 우리 할아버지는 85세에 인생의 꿈인 면허를 따셨을 만큼—노인의 운전에 대한 사회의 우려가 무엇인지 알고 있으나, 인구소멸지역으로 분류되는 지역에 사시는 할아버지는 차가 많을 리 없는 그 근방에서만 운전을 하셨고, 여기저기 다니는 걸 좋아하셔 즐겁게 다니시며 바람도 쐬기도 걷기도 하시는데 가족이 그 행복을 빼앗기는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정말로 운전을 하지 않으신다— 할아버지는 정정하시다. 건강하기 위해 평생 술도 담배도 안 하시고 평일과 주말의 구분 없이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운동하며 소식하시면서 살아온 분이니 분명 고령지만 정정하신 게 합리적 방향이다. 그런데도 100년 가까이 써온 몸은 말을 듣지 않는다. 120살까지 사실 거라던 할아버지는 노인들 설사 나면 죽는다는데, 하며 걱정이 많으셨.




올해 모두를 힘들게 했던 산불에 아빠가 지어드린 할아버지 할머니 집도 탔다. 말 모조리 타버렸는데, 재가 되어버린 집에서 쓸 만한 걸 골라내는 작업 따위 필요치 않아 죄다 쓸어버리는 게 쉬웠을 정였다. 산불 진화 이후 그래도 살던 동네에 있고 싶어 집에 다시 가 보신 할아버지가 엄마에게 말씀하셨단다.


야야, 우리 집이 없다



임시 주택이 설치되기 전이라 네에 이제 머물 곳이 없는데도 할아버지는 동네에 있고 싶어 고, 한창 더워지는 여름날, 아빠는 가 된 집의 주차 자리에 작은 컨테이너를 놓아드렸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낮엔 동네에서, 저녁엔 작은 읍내에 있는 오래된 모텔에서 지내셨다. 김없이 모텔로 퇴근하던 어느 날, 할아버지가 마을버스를 타고 좌석으로 향하던 중 버스가 출발해 버렸고, 할아버지가 버스 안에서 구르는 일이 생겼다. 98세의 노인은 예기치 못한 사고에 응급실로 향했고, 걸음을 걷지 못하셨다. 발을 내딛다가 넘어지고, 또 넘어지고, 일평생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려고 애써온 노인은 노력이 무색하게 사고로 한순간 걸음이 걸어지지 않자, 내 다리가 왜 일노, 하며 서글피 운다. 병원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고, 고령인 게 마치 잘못인 거마냥 우리 모두는 아무래도 고령이라 그런 걸까, 라고밖에 말할 수 없었다. 몇 주가 지나고, 정말 다행히도 다리는 돌아와 주었다.





아빠의 사과밭에서 우리 가족, 결혼하기 전 남자친구일 때의 ㄷ, 외가 식구들까지 모여 일을 돕고, 어린이들은 사과 따기 체험을 한 그날, 마무리를 앞두고 비가 오기 시작했을 때, 떨어지는 빗방울을 맞으며 모두가 조급해질 때 ㄷ은 딱 한 명 웃고 있는 사람을 봤다. 나뭇잎 장식이 달려 있는 분홍색 쁘띠 스카프를 한 나의 외할머니. 마치 영화처럼, 모두가 분주한데 외할머니 혼자만 아이고, 비가 오네, 하며 해사하게 웃고 있더란다.


엄마가 많이 닮은 외할머니는 소녀 같은 사람이다. 해사한 미소들이 얼굴에 남아 주름이 되었고, ㄷ은 외할머니를 귀여운 할머니, 라고 부른다. 외할머니는 귀엽고 다정한 할머니인데, 외할아버지도 다정하다. 롤모델로 삼고 싶은 부부를 떠올리자면 거의 유일무이하게 두 분을 떠올린다. 할머니가 찜질을 좋아하시니 집 옆에 작은 찜질방도 놓아주셨고, 바깥엔 땔감으로 쓸려고 할아버지가 패 놓으신 장작이 언제나 가득이다. 지금 있는 옷도 평생 다 못 입고 죽는다고 옷 하나 사 입지 않을 정도로 검소하시면서, 자식들이 옷을 사드리면 할머니랑 커플로 입겠다고 같은 색으로 해달라고 하신다. 당뇨가 있는 할머니가 밖에서 당이 떨어져 사탕이 필요해지면, 할아버지 주머니에서 각종 사탕이 종류별로 나온다. 할머니가 약 드시는 걸 잊어버릴까 봐, 할아버지는 매직으로 ''이라고 쓴 종이를 하얀 실에 매달아 주방 조명에 걸어 놓았다. 남끼리 만나 하는 사랑을 믿지 않는 사람도 두 분을 보면 믿게 될 것이다.



여전히 사랑이 넘치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편찮으시다. 할머니가 갑자기 황달이 심하게 와 병원에 가니, 담관암이 의심된다고 했다. 85세의 노인과 가족에게 선택지는 둘. 첫째, 황달 수치가 떨어지면 간의 3분의 2를 떼어내는 수술을 할 수는 있으나 수술 성공 확률은 50:50. 수술에 성공한다 해도 그 이후 회복은 환자의 의지 문제. 둘째, 수술의 실패 확률과 수술 후 85세의 노인이 감당해야 할 아픔과 회복을 뒤로하고 남은 여생을 보내기. 단, 남은 시간 6개월. 의료인인 가족들은 의견이 갈렸고, 비 의료인인 가족들은 수술을 하는 쪽으로 의견이 기울었다. 혹시나 본인이 암이어도 수술은 하지 않겠다고 선언해 왔던 할머니는 아기 시절 본인 손으로 키운, 지금은 의료인이 된 손자의 말을 가장 잘 들었고, 수술을 결정했다. 할머니는 살고 싶다고 했고, 간호사인 손자는 나는 할머니 무조건 살릴 거니 믿으라고 수술실에 본인도 함께 들어가겠다며 할머니를 설득했다—물론 수술에 참여한 것은 아니다. 왜인지 몇 년째 기력이 쇠해지고 있는 할아버지는 자식들 차를 타고 할머니를 보러 갔고, 할머니 할아버지는 손을 꼭 잡고 눈물을 그렁그렁하셨다. 수술날, 들어가기 직전에 할머니는, 영감 손 한번 안 잡아주나, 하시며 마지막일지도 모를 순간 할아버지를 불렀다.


다행히 모두의 기도 속에 수술은 잘 끝났고, 마취가 풀리며 참지 못할 고통에 차라리 죽게 두지 왜 수술을 시켰냐며 괴로워했지만, 아끼는 손자가 있는 병원에서 회복해 갔다. 더 이상 그 병원에 머무는 게 어려워지자 병원을 옮기려고 했지만 고집에 못 이겨, 또 환자에겐 희망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수술 잘 받고 회복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날만 기다린 할머니의 희망을 꺾는 것도 안 되긴 한다는 사촌동생을 포함한 가족들의 말에도 동의하며 조심히 집으로 모셔왔다.




외할머니 말고 친할머니도 병원을 싫어한다. 병원이야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좋아하기가 쉽겠냐마는, 노인은 병원에 가면 지레 못 나오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있는 듯하다. 산불이 무서운 속도로 번져 불기둥이 날아다니는 와중에 할머니 할아버지는 지금은 타버린 집에서 뛰어서 도망을 나오시다 할머니는 넘어져 무릎을 다쳤다. 나중에 아빠가 모시고 나와서 엄마가 병원 가시자고 그렇게 말을 해도, 할머니는 절대, 끝까지 가지 않으셨다. 할머니는 크게 편찮으셔서 병원에 입원한 적이 없는데, 일전에 검사할 게 있어 2박 3일을 머문 적이 있는데 그 기억이 그렇게나 싫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떠 있는 느낌이 든다고 고층을 무서워하시는 할머니에게 창밖의 풍경이 너무 높아 보였던 걸까. 할머니는 말을 아끼는 편이기에 어떤 마음인지 알 길이 없다.




살이 많이 빠진 채 집으로 돌아온 외할머니는 병원에 있지 않고 집으로 돌아온 대신 회복을 위해 매일매일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외할아버지는 외할머니의 회복을 위해 매일 한 손엔 지팡이를 한 손엔 할머니 손을 잡고 함께 산책을 하신다. 문제는, 이번엔 외할아버지였다. 뵐 때마다 눈에 띄게 기력이 빠지던 할아버지는 가래에 피가 섞여 나오기 시작해 검사를 하니, 폐암이 의심되는데 고령이라 조직 검사가 어려워, 주치의도 어떻게 할지를 모르겠다고 했다. 고민을 해 보고 수요일에 보호자만 오세요, 했는데 그걸 앞둔 주말, 엄마를 포함한 우리 가족은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시고 강릉 여행을 떠났다. 그러니까, 엄마는 아버지에게 어떤 병이 있을지 모르는 와중에, 그러니까 외할아버지의 동생들 세 분이 최근 몇 년 사이 모두 폐암으로 돌아가셔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와중에, 시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가야 했다. 한 부모님이 상황이 안 좋다고 다른 부모님 돌보기를 멈출 순 없었다. 여기저기 다니는 걸 좋아하시는 할아버지가 고령이 되시면서 여행을 가지 않은지 좀 되었는데, 정말 오랜만에 할아버지가 아빠에게 동해안 구경을 한번 가고 싶다고 한 것이다. 98세의 노인이 원하는 여행을 미루자면 다음 기회가 있을지도 없을지도 모른다는 걸 엄마 아빠는 알고 있다. 나의 엄마 아빠는, 이 여행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우리도 초대하여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시고 강릉으로 향했다. 할머니가 입이 짧으셔 드시는 음식으로 정하고, 더운 날 오래 걷길 피하기 위해 대게를 포장해서 숙소에서 먹고, 새벽부터 일어나시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아침 식사를 위해 전복죽을 끓여 가고, 계단이 힘들 수 있어 카페는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으로 찾는 등 온 가족이 두 분을 위해 노력했고, 할아버지는 오랜만에 가는 강원도에서 기가 이렇게 변했냐, 철길이 어디에 있냐, 여기가 주문진이냐, 하며 눈길이 닿는 곳마다 궁금해했다.


여행이 끝난 다음 날, 엄마가 소식을 알려 왔다. 외할아버지의 정밀 검사 결과 외할아버지에게 암이 없다고 한다. 사진으로만 봐도 심각해 보여, 자꾸만 돌아가신 작은할아버지들이 떠올라 마음이 무거웠는데 정말 다행인 일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외할머니는 병원에 가지 않고 회복하기 위해 해야 하는 일들을 하신다. 힘들어도 매일 걷고, 건강한 음식 먹기. 할머니의 회복을 위해 할아버지는 손을 꼭 잡고 매일 산책을 하신다. 젊고 부끄러웠던 이십 대 부부는 한 손을 잡고, 한 손은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천천히 걷는 노부부가 되었다.


노인에겐 시간이 없다. 신체의 시간은 빨리 가는데, 걸음 속도는 느려진다. 장애물도 많아진다. 어떤 면죄부도 주어지지 않는 잘못이 따라다닌다. 나이가 많다는 것. 나이가 많아 버스를 잡으러 뛰어갈 수도, 운이 안 좋아 넘어졌을 때 회복이 빠를 수도, 평생 경운기만 몰다가 꿈꾸던 운전대를 잡았는데 면허를 반납하지 않을 수도 없다.


아유 이제 죽어야지, 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있길래 노인이 되면 죽음이 두렵지 않아지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는 건가 생각했다. 아직은 노인이 되어보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청송 할아버지는 120살까지 사실 거라고 했고, 대구 할머니는 살고 싶다고 했다. 나는 지금 삼십 대인데, 나 역시 아직 이십 대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닌지 착각이 들 때가 있다. 나이가 더 든다고 오죽할까. 삼십 대도 사십 대도 오십 대도 옛 친구를 만나면 옛날로 돌아가는 것 같아서 좋는데.


또래 친구들, 주변 직장동료를 보아도 할머니 할아버지 모두가 아직 살아계시는 사람이 드문데, 정말 감사하게도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이렇게 비교적 잘 계셔 주신다. 자주 편찮으셔서 편도 두 시간 반 거리를 엄마 아빠는 이렇게나 자주 오가는데, 그럼에도 엄마 아빠는 말한다. 부디, 정말 오래오래 살아 계셔 주셨으면 좋겠다고.


부디 오래오래 건강해 주세요. 나의 엄마 아빠의 기둥이자 첫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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