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도 근육이라면 나는야 근손실

한때는 포도알 갑부였는데

by 지이옴

그렇다.


글쓰기도 운동이라 쓰는 만큼 는다는데, 브런치 작가 소개에 호모 라이터(homo writer)를 표방해 놓은 나는 브런치 데뷔에 성공한 재작년에 열한 개—8월부터 약 네 달 간, 년에 여섯 개, 올해 두 개의 글을 발행했다. 작년엔 글쎄 한 달에 하나가 채 안 된다는 것이다. 썼다, 가 아니라 발행했다, 인 건 그렇다고 브런치 외 어느 곳에 글을 쓴 곳이 딱히 있지도 않다는 고백이다.



나의 브런치 발행보다 브런치의 운동 협박이 더 잦았을 것이다.


호모 라이터라는 별명을 갖게 된 건 약 십 년쯤 전이다. 대학생이었고, 쇼츠와 릴스라는 게 온라인 세계를 지배하지 않았으며, 스낵 컬처라는 말은 있지도 않았다. 내가 대학교에 입학할 때는 SNS 유행이 싸이월드에서 막 페이스북으로 넘어갈 즈음이었는데, 신입생 오티에서 만난 동기나 선배들과 싸이월드 일촌까지 맺어 놓고 페이스북으로 또다시 팔로우를 했다. 페이스북으로 옮겨 가자 싸이월드는 금방 죽어버린 생태계가 됐고, 나의 아지트가 되었다.


떠오르는 생각과 문구들을 어딘가에 남기는 버릇이 있었다. 아니 버릇을 들이려고 했다. 인생 마지막 직업은 글쟁이였으면 좋겠는데 그에 반해 나의 재능이 그 정도로 출중한 거 같지는 않아서 언젠가 소재로 써먹겠다며 쌓아 갔다. 메모하지 않아 휘발된 상념은 대부분 다시 오지 않았다. 아, 순간들을 저장하고 싶다는 이유도 있었다. 이야기와 감정은 영구적이지 않아서 내 것이어도 시간이 지나면 마모되기 마련인데, 저장하지 않으면 재현하기는 힘들어진다. 아픈 것들은 보내주어도 됐겠지만, 그럼에도 남기고 싶어 울면서 쓰기도 했다. 직접 경험하는 것만큼 정확한 조사는 없을 테니.


나의 아지트는 엄마가 받았다며 준 동서식품의 증정품 다이어리였다가 세 개 한 묶음짜리 손바닥만 한 캐릭터 수첩이었다가 휴대폰 메모 앱이었다가 싸이월드 다이어리가 되었다. 싸이월드 즈음에 나는 보통 귀가하면 습관적으로 노트북을 켰다. 그러니까 나는, 포도알 갑부였다—싸이월드 다이어리에 글을 쓰면 아이템을 교환할 수 있는 포도알이란 걸 줬다.


(출처: X, @npop_zip)


알고 지내는 가장 최근의 지인들과 함께 하는 중이었던 페이스북에 이런 이야기와 감정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센티한 감정이 조금이라도 들어간 피드를 올리면 '감성 페북'이라며 조롱을 받는 시대가 오기도 했다. 싸이월드 다이어리는 더 이상 보는 사람이 없기에 쓸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러다 나처럼 그곳을 아지트 삼은 친구나 동창을 만나기도 했다. 실제 세계에서보다 오히려 글로 더 가까워졌더랬다. 그때 그중 한 명인 대학 동기 G가 그런 별명을 붙어줬던 거다. 호모 사피엔스는 지혜로운 사람. 호모 라이터는 그러니까, 써 재끼는 사람. 정말이지 밤에 잠은 안 자고 매일 같이 싸이월드에 짧게는 몇 줄, 길게는 A4 몇 장 분량의 글을 써 대니 붙여준 말이었다.


쓰다 보면 결론을 정해놓고 쓰지 않아도 쓰면서 정리되는 게 많았다. 신기한 일이었다. 힘들어서 쓰다 보면 스스로 위안이 되는 지점을 찾게 되기도 했다. 딱히 뭔가를 완성하고자 하는 게 아니었기에 첫 문장도 마지막 문장도 어렵지 않았다. 몇 년을 쓰다 보니 분량이 꽤 되어, 내 다이어리가 당장 출판이 되진 않을지라도 나만의 책이라도 만들고 싶어 일 년치를 한 권으로 묶어 제본해 보기도 했다. 갖고 있는 책들을 참고해 워드로 옮겨 표지와 목차, 도서 정보 등을 꾸며 A5 사이즈로 제본하고 나니 첫 책은 200페이지가 넘어갔다. 두 번째 해까지는 했는데, 이후 몇 년 치는 백업하지 않고 묵히다가 싸이월드 폐쇄의 순간까지 꺼내지 못해 사장되고 말았다.


후회했다. 적당히 숨기고 싶어서 선택한 곳이기도 했지만 언젠가 나의 글이 상품이 되는 꿈을 꾼다면 그래도 어딘가에 내보이는 게 낫지 않았을까. 정말 묵히고 싶은 게 아니었다면 글도 읽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팔리는 거니까.


그러다 브런치라는 플랫폼이 생겼다. 선택받은 자만이 글을 보일 수 있는 곳. 작가 지원 단계에서 이미 나의 글을 보여야 하고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어떤 글을 쓸 것인지 계획도 있어야 한다. 도전하자니 나는 그저 일기를 썼던 사람에 불과한데 어떤 기획을 해야 할지 덜컥 겁이 났다. 그러다 브런치가 어느 정도 인기를 얻고 있을 때쯤에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해 보자는 결론에 다다랐다.


충격적이게도 첫 도전은 실패였다. 실패가 썼는지 핑계가 필요했는지 이후 한동안 다시 도전하지 않았다. 두 번째 도전에 성공한 건 그로부터 오륙 년은 족히 넘겨서였던 것 같다.


작가 승인이 되자마자 메모에 쌓아둔 것들을 꺼내 글로 완성하기 시작했다. 쌓아둔 게 있었기에 세 편 정도까지는 하루에 하나씩 발행했다. 싸이월드 다이어리에 쓰던 거보다는 좀 더 다듬어야 할 거 같고, 이미지도 두어 개쯤 들어가야 가독성이 좋아질 거 같아서 퇴고를 열심히 하다 보니 아무래도 품이 더 들어간다. 그러다 한 달에 하나, 세 달에 하나, 하며 완성하는 글 수가 줄었다.


어떤 이야기를 쓸지 모르겠기도 했다. 분명 포도알 갑부 시절엔 매일매일 하고 싶은 이야기가 차고 넘쳤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정말 떠오르는 대로 쓰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이렇게 꺼낼 이야기가 잘 생각이 나지 않는 건, 아무래도 생각이 부족해져서일까. 생각 없는 인간이 되는 건 내 계획에 없었는데. 여전히 꺼내지 못한 메모가 많은데, 결론의 방향을 정리하지 못해 묵혀 두고 있는 것들도 있다. 그렇다면 조급해하지 말고 일단은 생각이 이야기가 될 때까지 더 고민하며 기다려 보는 게 맞는 걸까.


와중에 영상이 판치는 이 세계에서 놀랍게도 브런치가 살아남았고, 많은 베스트셀러들이 이곳에서 탄생했다.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 이 세계에서 경쟁력을 갖기도 어려워졌다는 이야기이다. 실제로 최근 브런치북 대상 수상작들은 대부분 전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하거나, 특수한 직업을 가진 분들의 이야기가 많다.


글쓰기도 운동이라 매일 쓰는 습관으로 근육을 만들어야 한다는데. 이런 야생의 브런치 세계에서 꾸준히 많이 쓰며 양이라도 채워야 더 많이 봐 줄 거 같은데, 음, 나는 아무래도 근손실이 온 것 같다. 그래서 이렇게 이런 이야기로 러닝머신을 뛰어 보는 거다.


그러니 앞으로는 꾸준히 근육을 키우도록 해 봐야겠다, 정도의 훌륭한 결론으로 끝내고 싶지만 반드시 지키지 못할 약속은 절대 못하는 병이 있다. 자랑은 아닌데 빈말을 잘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 글은 근손실에 대한 한숨, 정도로 끝맺어질 것이다.


호모 라이터라는 별명은 지키고 싶고 글쟁이로 죽고 싶으면서 과거의 영광—과거라고 작가였던 적이 있진 않지만 자주 썼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니까—은 현재에도 떠들고 싶은, 포도알 갑부 출신이자 구독자 열 명 미만의 브런치 작가, 혹시 나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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