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잘 있지?

그 겨울, 정춘자 씨께

by 정춘필

엄마, 잘 있지?

지난주에 누나네 아들이 군대를 갔어.

엄만 누군지 잘 모르겠지?

엄마 병원에 계실 때 누나가 낳은 아이야.
내가 휠체어 끌고 신생아실 앞을 지나면서 말해줬잖아.
"누나네 아기 여기 있으니까, 다음에 보러 오자."
그랬더니 엄마가 고개를 끄덕였잖아.


맞아, 그 애가 이번에 군대를 갔어.

논산으로 갔대.

이 더운 여름에 말이야.
지금은 군 생활이 예전보다 짧아져서 다행이긴 해도, 그래도 군대는 군대니까.

그러고 보니 나도 논산 훈련소 나왔었네.

벌써 그게 30년 가까이 지났어.


엄마,
조카 녀석이 군대 간다고 하니까

요즘 엄마 생각이 자주 나.

누나도 그런가 봐.

어제 전화로 그러더라고.

"난 하나 보내는 것도 이렇게 걱정되고 불안한데,

엄마는 어떻게 둘이나 보냈을까?"


게다가 그중 한 놈은 대학생 때 데모한 게 걸려서

육군 교도소까지 갔었잖아.

그러고 보면 엄마가 그렇게 맥없이 가신 것도 이런저런 마음고생이 크게 한몫했을 거 같아.

정말 미안해. 엄마


지금 생각해 보면 참 기막힌 시절이었어.

누나는 산부인과에,

엄마는 중환자실에.

같은 병원, 같은 층.

물론 건물 끝과 끝이었지만.


20여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기억해.

엄마가 있던 중환자실에서

복도 따라 쭉 가다가

모퉁이를 한 번만 돌면 누나 입원실이었잖아.

삶과 죽음이 멀지 않다는 걸 그때 처음 느꼈던 것 같아.


그렇게 엄마도 차츰 나아가고,

누나도 무사히 아기를 낳았지.

그러던 어느 날 엄마를 휠체어 태우고 복도로 나왔을 때

중환자실 바로 옆이 신생아실이라는 걸 알게 됐어.


면회시간이 아니라 아기 얼굴은 못 봤지만

'누나네 애기가 여기 있어, 엄마'

라고 태어난 조카 이야기하면
앞니가 두 개나 빠진 채로 환하게 웃던

엄마 얼굴이 아직도 생각나.


심폐소생 끝에 인공호흡기 달기 위해

앙다문 입을 억지로 벌리느라

빠져버린 앞니 두 개 때문에
엄마는 웃을 때마다 마치 아이처럼,

유난히 순해 보였어.

그때가 11월 말쯤, 겨울이 막 시작되던 시기였지.
날이 추워 밖엔 못 나갔고

좀 따뜻해지면 밖에 나가자던 약속도

애기 보러 다시 오자고 했던 약속도

끝내 지키지 못했네.


쓰러진 지 석 달만에 호흡기를 떼고

잠깐 외출했던 그때가 마지막일 줄 알았으면

면회시간에 맞춰 조카 얼굴이라도 보여줄걸,

춥더라도 따뜻하게 입혀서 잠깐이라도 밖에 나갈걸. 지금도 그게 후회야.


근데, 엄마...

그때 나도 너무 힘들었어.

그래서 잠깐 좋아진 엄마 모습에 나도 모르게 긴장이 풀렸는지도 몰라.

엄마는 몰랐겠지만

나 그때 김밥 한 줄, 컵라면 하나로 하루를 버텼어.
잠도 보호자 대기실이나 엄마 침상 옆에서

쪽잠 자며 근 석 달을 그렇게 버텼거든.
몸도 마음도 이미 한계였던 것 같아.


그리고 기억하지?

엄만 나만 옆에 없으면 자꾸 찾았잖아.

그게 힘들었지만 또 너무 마음 아팠어.


엄마,

난 아직도 엄마 돌아가시던 날을 기억해.
크리스마스를 이틀쯤 앞둔 날이었을 거야.

어떻게 기억하냐고?

그날 간호사들이 엄마 머리맡에 사탕이랑 작은 선물을 두고 갔잖아.
손엔 촛불, 머리엔 산타 모자 쓰고 "메리 크리스마스" 하면서 병실을 돌았지.
그 병원이 가톨릭 재단에서 운영하던 곳이었으니까.

그날 나는 중환자실 앞 복도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었어.

엄마 상태가 너무 급격히 안 좋아지자

담당 의사가 그러더라고.
“더는 치료가 의미 없다. 한 번 더 고비가 오면

연명치료는 하지 않는 게 좋겠다.”


그때 내가 엄마한테 했던 말도 기억해.
"엄마, 힘들게 고생하지 말고 그만 편히 가셔…

이제 다 내려놓고, 편하게 가셔…"


산소호흡기를 단 채 힘들게 숨 쉬는 엄마를

더는 못 보겠더라고.

숨이 안 쉬어지는데도 억지로 쉬려 얼굴이 일그러지는 모습이 너무 고통스러워 보여서…
아니, 내가 더 이상 엄마를 볼 자신이 없어서 회복할 가망이 없다는 엄마 귀에 대고 말했어.

“엄마, 이제 그만 힘들어. 이제 그만,

다 놔버리고 편히 가. 응?”
".. 동생도, 나도 너무 힘들어…"


그렇게 엄마만 남겨두고 병실을 나와 아버지, 누나, 동생한테 얼른 오라고 전화했지.


전화를 끊고 식구들 오기를 기다리며

복도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을 때,

어둑어둑해지는 복도에는

일반 병실의 말간 불빛이 새어 나오고

면회객들의 바쁜 발걸음 사이로 들리던

성탄을 축하하는 간호사들의

노랫소리와 촛불이 아직도 생각 나.


차원이 다른 세계가 우연히 겹치는 것 같은,

손에 잡히지 않고 닿을 수도 없는,

현실 같지 않은, 그런 시간이 말이야.


엄마, 그게 벌써 20년 전이야.


내 시간은 그대로인데 조카들이 자라는 걸 보면 세월이 흘렀다는 걸 알아.


그날, 엄마...

혹시 내 말이 서운했었어?

정말 미안해.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모진 말이었어.

근데… 엄마.
나 그때 정말, 죽을 만큼 힘들었어.

동생도, 누나도, 아버지도… 다들 그랬을 거야.

아무튼, 정말 미안해. 잘못했어.


엄마,

지금 밖엔 비가 와. 장마래.
거기선 잘 계셔? 거기서는 아버지랑 더 이상 싸우진 않지?

엄마 말대로 나 이제 아버지 안 미워해.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져 병원에 계실 때 내가 말했어.

아버지를 더 이상 안 미워한다고
그리고 아버지도 나한테 “미안하다” 하셨어.


엄마도 알겠지만 엄마 돌아가신 후 아버지도

요양원에서 고생 많이 하시다 가셨잖아.

그러니 그곳에선 잘 지내.

서로 의지하고, 싸우지 말고.


그리고 얼굴도 못 본 손주지만

군대 생활 잘할 수 있게 가끔은 챙겨줘.

또 소식 전할게. 잘 계셔, 엄마... 안녕.


2020.07.06 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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