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의미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귀한 것

by 정춘필

“돈을 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나의 시간을 내주는 것이다.”
언젠가 읽었던 책 속 한 문장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나의 시간을 준다는 것, 다시 말해 누군가를 위해 시간을 쓴다는 것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다.
‘시간 내서 한번 보자’는 일상의 인사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 말을 하려면 내 일상에서 작은 틈을 만들어야 하고, 그 틈을 위해 계획을 세우고 기존 일정을 조정하는

수고로움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에게 “시간 내서 보자”는 말을 쉽게 하지 않으려 한다.
그 말은 조심스럽고, 책임을 담아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반면 “시간 나면 한번 보자”는 말은, 하지 않느니만 못한 말이다. 말의 낭비다.


오늘 아침, 나는 서울로 수술을 받으러 가는 M에게 나의 시간을 내기로 했다.
불편한 다리로 택시를 타고 가는 대신, 내가 직접 역까지 데려다 주기로 한 것이다.
누군가는 여비를 건넸다지만, 나는 내가 가진 것 중 가장 귀한 아침 시간을 건네기로 했다.

거창한 이유에 서라기보다는, 심란한 마음으로 택시를 타고 이런저런 생각에 괴로워하는 것보다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며 가는 시간이 M에게 조금은 도움이 될 것 같아서였다.


아파트 앞에서 그를 태우고 출발하려는데, M이 말했다.
“안 울더니만, 막상 가려고 하니까 우네.”
나는 당연히 딸 얘기인 줄 알고 “그럼, 당연히 울지” 하고 무심히 대꾸했다.

그런데 가는 길에 이야기를 듣다 보니, 울었다는 사람은 딸이 아니라 아내란다.
그 말을 전하는 M의 얼굴을 쳐다보는데, 눈자위가 벌겋다.
다 큰 성인의 눈물, 특히 남자 어른의 눈물은 언제나 당황스럽고 낯설다.


이미 한 차례 수술을 겪은 그에게 이번 수술은 익숙해서 더 두려울 것이다.
그리고 어린 딸을 남겨두고 병원에 가야 하는 아버지의 마음은 말 못 할 불안으로 가득할 것이다.
무엇보다 모든 게 서툰 아내에게 아이를 맡기고 가야 하는 일이 가장 마음에 걸릴 테고.


그렇게 일상으로 다투던 부부 사이에도 이런 애틋함이 있다는 사실이 뜻밖이었다.
하긴, 싸움도 애정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라 했던가.

그 애정이 지금의 눈물로 이어졌을지도 모른다.

여기에 더해 코로나 시국에 혼자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하는 외로움,
나이 들어 애면글면 살아온 인생에 대한 회한까지 겹쳤을 것이다.


나는 그저 조용히 그의 말을 들어줄 뿐이었다.
어쩌면 그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다행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나는 과거에도, 앞으로도 그 눈물의 의미를 알 수 없을 테니까.


2022.08.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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