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많이가 아닌, 더 오래를 택하다.
모든 존재는 저마다의 무게를 지닌다.
그 무게들이 모여 하나의 세계를 이룬다.
잘 보이지 않는 먼지부터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우주까지,
볼 수 있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존재하는 모든 것은 자신이 점유하는
시간과 공간만큼의 무게를 지닌다.
이 세계가 유지되려면,
그 안을 채우는 무게들-관계든 감정이든, 일상이든-
일정한 총량 안에서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무게가 너무 쏠리거나,
무언가가 지나치게 넘치면,
균형은 무너지고 세계는 흔들린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사람 사이의 관계 역시 정해진 ‘총량’ 이 있는 건 아닐까.
이 관계의 무게가 내 세계를 압도하게 되면,
나는 금세 지치고, 균형을 잃는다.
그래서일까.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단단히 엮이기보다는,
가느다란 끈으로 외부 세계와 느슨하게 이어져 살아가길 원하는 듯하다.
어릴 적부터 나는 누군가와 깊이 연결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
오래 알고 지낸 친구들도, 좋아했던 사람도,
심지어 가족조차도 그랬다.
그게 사랑이었는지, 배려였는지,
아니면 상처받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다그친 결과였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어쩌면 나는,
나는 ‘누군가를 내 안에 들이는 법’을 아직 배우지 못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감정적으로 가까워지는 것 자체를
본능적으로 피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사실 나는 내 일상이 흐트러지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남들이 보기엔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일들,
집에 가서 씻고, 티브이를 보며 하이볼을 한 잔 마시는 일,
이불 빨래를 하는 일, 도서관에 들러 책을 반납하는 일.
이런 사소한 일들이 나에겐 중요한 리듬이다.
예기치 못한 상황이 그 흐름을 어지럽힐 때, 나는 종종 날카로워진다.
그래서 누군가의 약속조차도 반갑지 않을 때가 있다.
어차피 만나서 나누는 얘기도, 함께 하는 일도
대개는 반복되는 것들이니까.
그럴 바에는 차라리 혼자 있는 시간이 훨씬 좋다.
아니면 동네 뒷산을 산책하는 편이 더 낫다.
이건 아마 내가 관계를 감당할 수 있는 총량이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이들은 몇십 명씩 모이는 모임을 만들고,
매일같이 술자리에 나가고, 부지런히 각종 행사에 참여한다.
하지만 나에겐 듣는 것으로도 피곤하다.
어떤 이는 그런 삶을 “사회생활이라는 게 다 그런 거야”이라며 권하기도 한다.
그럴 때면 속으로 생각한다.
'글쎄. 내게 그게 맞는 생활방식일까?
나는 굳이 그렇게 살고 싶지 않고, 그럴 자신도 없어.
지금 맺고 있는 관계들만으로도 벅차.'
그 위에 또 무언가를 얹는다니 상상만으로도 숩이 턱 막힌다.
이제 곧 추석이다.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사회의 일원으로서,
관계 맺음의 일환으로
무언가를 의무적으로 해야 할 시기.
나는 지금 최소한의 노력과 시간으로
그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 중이다.
나에게는 새로운 사람과의 관계를 시작하거나,
더 많이 관리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이제는 안다.
관계란, 맺는 것보다 지키는 일이 훨씬 더 어렵다는 걸.
그렇다고 누구와도 단절된 삶을 꿈꾸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몇 안 되는 소중한 관계들이 더 오래,
더 친밀하게 유지되기를 바란다.
나에게 중요한 건, 얼마나 많은가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 이어질 수 있는가이다.
더 많이 연결되는 삶보다,
연결이 무너지지 않게 지키는 삶이
내겐 더 의미 있다.
조금 적고, 조금은 느리고, 가끔은 멀어도 괜찮다.
이것이 내가 지키고 싶은 관계의 총량이다.
2019년 추석 무렵에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