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보았다는 착각

어느 유기견의 죽음

by 정춘필

유턴을 할 때 조수석 앞바퀴 쪽에서 ‘덜컥’ 하는 느낌이 났다.

'전봇대 옆에 돌멩이라도 있었나?'
별일 아니겠거니 하고 지나쳤다.

하지만 그날 저녁, 지구대에서 전화가 왔다.

어떤 차가 강아지를 치고 그냥 가버렸다는 신고가 접수됐고, 차가 바로 팀장님의 차였다.


내가 전해 들은 이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식당 옆 전봇대에 묶여 있던 강아지가 죽었고,
식당 주인은 CCTV를 통해 차량 번호를 확인한 뒤 경찰에 신고했다.


팀장님은 경찰의 조사를 받은 뒤,

조언에 따라 해당 식당에 찾아가 아주머니에게 사과했다.


아주머니 말에 따르면,
원래 유기견이었지만 자신이 애지중지 키워왔다고 했다.
그러고는 그간의 사료값, 화장 및 납골 비용까지
모두 보상해 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하지만 요구 금액이 터무니없어 끝내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결국 자동차 보험으로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어쩌면 이 이야기는 반려동물을 키우는 이들에게

불편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생명을 돈으로 따지는 듯한 과정이

거북하게 느껴질 수 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몇 가지 의문이 들었다.

과연 이 모든 과정은,

정말 강아지를 위한 것이었을까.
그 강아지는 그만큼 사랑받았던 걸까.


유기견을 거두어 먹인 건

분명 칭찬받아야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차들이 쉴 새 없이 오가는 길가 전봇대에 묶어둔 것이, 과연 애정의 방식일까?

나는 그 현장에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곳은 내가 자주 가는 시장이었다.

아주머니가 운영하고 있는 식당도 안다.

식당 옆에는 살림집이 붙어 있고,

그 살림집은 마당이 딸린 제법 괜찮은 양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아지는,
차도와 맞닿는 전봇대에 묶여 있었다.


어쩌면 강아지는 그곳에서,
예전에 같이 떠돌던 친구들의 모습을 떠올렸는지도 모르겠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소리에, 아주 잠깐 마음이 흔들렸을지도.


불행 중 다행이라면 그날 아침,

강아지는 자던 중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얼마나 오래 그곳에 있었기에

차들이 오가는 그 번잡한 거리에서

잠이 들 정도로 익숙해졌던 걸까.


나는 바란다.
그 아주머니의 말대로, 정말 사랑받았기를.
요구한 보상금만큼, 오래 기억해 주길.
그리고 가끔은 납골당을 찾아가 이름이라도 불러주시길.


가끔은 사랑이란,
함께할 때보다 떠나보내고 나서야 더 깊어지는 경우도 있으니까.


한 생명을 돌본다는 건, 이름을 불러주는 일만큼이나

함께했던 그 자리에 머무는 일기도 하다.


그날 이후,

나는 그 시장을 지날 때마다

전봇대에 묶여 있었다던 강아지를 떠올린다.

한 생명을 마주할 때, 우리는 어떠해야 하는가.

돌본다는 건 단지 밥을 주고 묶어두는 일이 아니라,
그 곁에서 끝까지 지키려는 마음을 품는 일은 아닐까.


하지만 우리는,
때때로 누군가를 묶어두고는 ‘함께 있었다’고 착각한다.


지금도 어딘가에 묶여

누군가를 기다리는 또 다른 생명이 있을지 모른다.
우리의 무심한 시선과 방치된 책임 때문에
그 외로운 생명이 ‘덜컥’ 스러지지 않길 바란다.


왜냐하면

기억되지 않는 존재보다,

사랑받지 못한 존재의 쓸쓸함이 더 오래,

더 아프게 남기 때문이다.


2021.04.29에 쓰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사랑의 종착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