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다시 사랑을 시작할까
사랑이란, ‘너’를 통해 ‘나’를 알아가는 여정이다.
그 여정을 통해 우리는,
무엇이 내 마음에 생채기를 내고,
그 상처가 어떻게 아물어가는지를 천천히 깨닫게 된다.
또한 내가 무엇을 사랑하고 두려워하며,
무엇이 내 마음을 흔드는지도 알게 된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내가 타인을 대하는 태도와,
그들이 나를 마주하는 방식을 자연스레 배우게 된다.
그리고 진심을 다해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어떻게 마음을 건네야 하는지를 가슴 떨리는 방식으로 익혀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사랑은 늘 쉽지 않고,
왜 그렇게 자주 실패로 끝나는 걸까.
아마도 매번의 사랑이 완전히 다른 세계인 ‘너’를 만나,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변화하고, 또 다른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사랑은 어쩌면,
영원히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는지 모른다.
사랑의 길은 누구에게나 다르기에, 뚜렷한 정답을 가질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좋은 사람을 만나도 오래 이어지지 못하고,
설레었던 감정이 끝내 상처로 바뀌는 경험을 반복하면서,
나는 문득 이런 물음을 떠올리게 되었다.
사랑에는 정말, 종착점이라는 게 있을까?
그 물음은 생각보다 오래 머물렀고,
며칠 전 저수지 둘레길에서 마주친 한 장면이,
그 질문에 답을 건넸다.
그날도 산에서 내려와,
저수지 주변 야자매트를 따라 걷고 있었다.
한여름 저녁 6시.
햇빛은 물 위에 반짝이고, 낮의 무더위는 잦아들어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무성한 나뭇잎이 샤라락 소리를 내면, 산을 오르며 젖었던 옷은 바람결에 부드럽게 마른다.
그날은 평소처럼 곧장 집으로 가지 않고,
저수지를 한 바퀴 더 돌기로 했다.
그렇게 걷던 중,
멀리서 손을 꼭 맞잡고 걸어오는 노부부가 보였다.
나이는 일흔 후반에서 여든 초반쯤 되어 보였고,
두 사람의 발걸음은 느리고 조심스러웠다.
저녁 햇살은 두 사람의 그림자를 길게 늘이고,
살랑이는 바람은 할머니의 넓은 챙 모자를 가볍게 흔들었다.
그 장면은 마치 영화의 슬로 모션처럼 다가왔고
그 순간, 그 공간에 오직 두 사람만 존재하는 듯했다.
‘저렇게 서로를 의지한 채, 나이 들어간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두 사람의 맞잡지 않은 손에는,
각각 하나씩 등산스틱이 들려 있었다.
혹시 있을지 모를 돌부리에 휘청이지 않도록,
서로의 균형을 지켜주는 무언의 지지처럼 보였다.
그렇게 두 사람은, 맞잡은 손과 여섯 개의 다리로
서로의 남은 시간을 조용히 지켜주고 있었다.
수많은 사랑이 어긋나고, 무너지고,
결국 사랑마저 포기해 버린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간절히 바라는 사랑의 형태란,
어쩌면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두 사람을 지나 몇 걸음쯤 걸었을 때,
나는 다시 뒤돌아보았다.
모자에 가려 두 분의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포근하고 다정한 그 뒷모습만으로도 충분했다.
며칠이 지난 지금도 그 장면은
저녁노을과 함께
내 기억 속에 황금빛으로 남아 있다.
손을 맞잡고 천천히 걸어오던 부부의 모습이,
언제까지나 그대로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는,
그런 사랑의 종착점이 이 세상 어딘가에
정말 존재한다는 걸 믿기 때문에
사랑이 아프고, 때론 실패하더라도
조심스럽게,
또다시 누군가를 향해 마음을 열고
사랑을 시작하는 건 아닐까.
2020.08.01에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