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멈춰도 괜찮아

지친 당신에게, 지금은 잠시 멈춰도 되는 시간.

by 정춘필

이놈의 기계는

절대로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려 하지 않는다.


조금만 많아도 “지이잉” 하고 자지러진다.
너무 많다고,

너무 힘들다고 소리를 지르며 멈춰 버린다.
그러고는 나 좀 어떻게 해달라는 듯,

딱 멈춰 서서 꼼짝도 하지 않는다.


'성가신 기계 같으니'
속으로 투덜거리며, 물려 있는 종이를 조심스레 당겨 빼낸다.
그러면 그제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경쾌한 소리를 내며 다시 신나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파쇄기에 끼인 종이를 빼내며 나는 생각한다.
우리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삶이 버거울 때,
저 기계처럼 멈춰 서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냥 멈춰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울어버릴 수 있다면.
그리고 그렇게 울고 있는 내게
누군가 다가와 삶의 무거운 조각을

조심스레 빼내 준다면
그건 얼마나 큰 위로일까.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끼인 종이를 빼 줄 사람도,
멈춘 나를 다시 작동시켜 줄 사람도 없다.
종이가 끼면 끼인 대로, 버거우면 버거운 대로,
살아가야 한다.


어쩌면 우리 인생도 문서 파쇄기처럼
각자 감당할 수 있는 용량이 정해져 있는지도 모른다.

너는 종이 10장짜리,

너는 20장,

나는 겨우 5장.

사람마다 처리할 수 있는 무게가 다른 것이다.


물론 종이든 카드든 척척 삼켜버리는
성능 좋은 파쇄기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은 흔치 않다.


감당할 수 없는 무게에 짓눌릴 때

무심코 흘러나오는 한숨은,
어쩌면 우리가 가진 용량을 이미 넘었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천천히,
나에게 맞는 한 장의 종이를 삼키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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