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영화

삶이란, 편집되지 않은 필름

by 정춘필


“당신이라는 영화, 이대로 끝내시겠습니까?”


운동가는 길, 한 중학교 담장에 걸린 걸개 문구였다.
금연 포스터 공모전에서 1등을 한 작품이라고 했다.


금연을 일깨우기엔 다소 추상적인 문장이지만,
그 상상력과 상징성은 단연 눈에 띄었다.
무엇보다 중학교 1학년이 영화라는 장르를 인생에 빗댄 발상이 놀라웠다.


물론 담배 한 개비가 인생이라는 영화를 곧바로 끝내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비극으로 마무리될 가능성은 높아질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문장을 본 순간,
금연의 필요성보다도 훨씬 더 본질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됐다.


‘그렇다면 내 영화는 어떤가?’


지금 내 인생이라는 영화는 러닝타임의 어디쯤에 와 있을까.
내용은 흥미로운가?
기승전결은 있는가?
무엇보다—이 이야기는, 누군가 돈을 내고 볼 만한 가치가 있을까?


영화에는 보통 발단이 있고, 전개와 절정, 반전이 이어진다.
장르도 로맨스, 액션, 드라마, 서스펜스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인생은 그렇지 않다.

계획대로 흘러가는 일은 거의 없고,
복선 없이 사건이 터지며,
장르는 수시로 바뀌고 섞인다.
대부분은 예고 없는 장면들로 채워진다.


그럼에도 분명한 건,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바로 ‘나’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영화의 각본을 쓰고, 촬영하고, 편집하고,
주연까지 맡은 사람도 다름 아닌 ‘나’다.

말하자면, 나의 인생은 철저히 1인 제작 독립영화인 셈이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이 독립영화를 어디까지 끌고 왔을까.


100세 시대라고는 하지만,
그때까지 살 자신도, 욕심도 없다.
그렇다면 아마 지금쯤은 러닝타임상 영화의 중반부쯤 아닐까.


보통 영화의 중반은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며, 반전이 시작된다.

하지만 돌아보면 내 인생엔
그런 반전도, 특별한 기승전결도 없었다.

그저 잔잔한 전개 속에 부침은 있었지만,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그런 이야기들.

만약 내가 관객이라면

이 영화에 기꺼이 돈을 낼까?


물론, 특별한 인생이 곧 좋은 영화라는 뜻은 아니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극적인 사건을 겪는 삶만이 인상 깊은 건 아니다.

소소한 감정의 파문

한 문장으로 달라지는 마음의 결

설명이 아닌 눈빛으로, 싸움이 아닌 기다림으로

서로에게 돌아가는 이야기들—
그런 영화가 더 오랜 여운을 남기기도 한다.


나는 지금 어떤 장면 속에 있을까.
이 장면이 지나고 나면, 어떤 클라이맥스가 기다리고 있을까.
그리고 마지막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관객으로서의 나는 과연 박수를 칠 수 있을까?


“당신이라는 영화, 이대로 끝내시겠습니까?”

나는 다시 그 문장을 떠올린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대답한다.


“나라는 영화, 아직은 상영 중이다.”

2022. 07.22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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