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워지기 전, 나는 집에 간다

by 정춘필

퇴근 무렵,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종종 묻곤 한다.

“기다리는 사람도 없는데, 왜 그렇게 서둘러 가요?”

그럴 때면 나는 웃으며, 마음속으로 조용히 대답한다.
“집이 저를 기다립니다.”


나는 혼자 산다.

그래서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가지 않는 한,
집은 하루 종일 고요하다.

집 안에서 들리는 유일한 소리는
윙— 하고 도는 냉장고 소리뿐.
불도 켜지지 않고, 시간은 방바닥에 고여 느리게 흐른다.


겨울 햇살은 방바닥에 발을 살짝 내디뎠다가
이내 스러질 것이고,
복도에 면한 창문은 바람에 살짝 흔들리기도 할 것이다.


그 안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건 오직 ‘나’뿐이다.

이렇게, 나 아니면 그 집은 누구도 찾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이젠 누구도 기다리지 않는 나를

그 집 하나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나는 오늘도 집에 간다.


현관문을 열면 익숙한 냄새가 반긴다.
의자엔 어깨를 넘긴 셔츠가 걸쳐 있고,
앉은뱅이책상 위엔 읽다 만 책이 엎어져 있다.

대충 개켜진 이불,
아침에 씻지 못하고 담가둔 그릇들—
모든 게 어수선하지만, 하나같이 내 흔적이다.


세상에 태어나 지금껏
온전히 나에게 속한 것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그 집이 애틋하다.

내가 불을 켜면
비로소 공기가 돌고, 집의 시간이 흐르기 시작한다.
내가 있어야만 시작되는, 이 조용한 생의 기척.
그 사실은 작지만 분명한 위로다.


해가 지고,
창밖에서 들리던 말소리와 차소리도 멀어지면
사방이 고요해지고,
그제야 집이 본격적으로 말을 건다.


보일러가 부웅— 하고 힘차게 돌면
온수가 곳곳으로 밀려가고,
현관부터 따닥- 소리를 내며
바닥의 온기가 도달했음을 알린다.

그러면 주방의 냉장고가
우웅— 하고 조용히 화답한다.

그렇게 집은 도란도란 말을 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혼자 사는 집이 뭐 그리 특별하냐”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집은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다.

그건 매일의 피로를 씻어주는 손이며,
아무도 듣지 않는 말들을 묵묵히 들어주는 청자(聽者)이자,
잊고 지낸 내 이름을 다시 불러주는 유일한 화자(話者)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외로워지기 전에 집에 간다.


2023. 12. 21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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