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 내리는 비가 나흘째 이어진다.
예전엔 여름 한창일 때 며칠을 두고 지루하게 내리는 게 장맛비였는데
요즘은 중구난방, 시도 때도 없이 쏟아진다.
그래서 뉴스에서는 이런 비를 ‘가을장마’라 부른다.
‘가을장마’라는 말도, ‘우기’라는 말도 여전히 낯설다.
아침부터 잔뜩 흐렸던 하늘은
결국 참지 못하고 한두 방울씩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아침에 집 창문을 모두 열어두고 나왔던 터라
나는 부랴부랴 집으로 향했다.
집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빗줄기는 갑자기 굵어졌고
온 세상을 순식간에 덮어버렸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아파트 초입 신호에 멈춰 서 있던 그때,
쏟아지는 비 너머로 거뭇한 실루엣이 하나.
느리게,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뭐지?’
앞유리를 닦아내자, 그제야 보였다.
지팡이를 짚은 할아버지 한 분이
사나운 빗줄기를 뚫고 도로를 건너고 있었다.
비에 쫓기듯 바쁜 걸음이었지만,
속도는 너무 느렸다.
몸을 반쯤 기울여
어떻게든 속도를 내보려 애쓰셨지만
그 기울임 때문에 걸음은 쓰러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세차게 쏟아지는 빗줄기가
할아버지의 등을 마구 때리고 있었다.
도로의 절반쯤을 건넜을 무렵,
신호등은 냉정하게 초록불을 꺼버리고
차들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어디를 가시는 길인지,
어디서 오시는 길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가는 길이든, 오는 길이든
내리는 비는 야속했고
바뀐 신호등이 안타까웠다.
갑작스러운 비에 거리는 텅 비었고
비 피할 곳 하나 없는 길 위에서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다급히 내딛는
할아버지의 걸음에 눈물이 핑 돌았다.
‘빵——!’
경적 소리에 놀라 좌회전을 하며,
‘우산이라도 하나 챙겨 나올 걸…’ 하는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비가 그치고, 할아버지도 떠난 그 길 위에
다 건너지 못한 내 마음이 한참을 남아 있었던 건
돌아가신 아버지를 꼭 닮은 그 걸음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