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문을 열고 나서다
"휘이잉~~ 쾅!"
어느 날 퇴근 후였다.
익숙한 번호를 누르고 현관문을 열자마자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바람에 떠밀린 문이 내 의도와 상관없이 ‘쾅’ 소리를 내며 닫혔다.
그 짧고 날카로운 소리가 귓속을 파고드는 순간, 문득 깨달았다.
'이 문은 내가 다시 열기 전까지, 아무도 열지 않지 않겠구나.'
'오직 나 혼자만 여닫는 문이구나.'
그 순간, 매일 드나들던 아파트의 현관문은 더 이상 안과 밖을 잇는 통로가 아니라 나와 세상, 그리고 모든 관계를 나누는 단단한 벽이 되었다.
한동안은 편했다.
누군가에게 신경을 쓸 일도, 그것 때문에 상처받을 일도 없었으니까.
같이 사는 동안 끊임없이 고민했고, 쉬지 않고 무언가를 해야 했고, 의무적으로 해야 할 일들을 해내기 위해 억지로 힘을 내야 했다.
그래서 가끔 혼자 있을 때가 좋았다. 고요한 순간이 곧 평온이고, 행복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것이 상대적이었음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돌아올 사람이 있고, 혼자만의 시간이 언젠가는 끝난다는 걸 알기에 가능했던 안식이었다.
끝이 정해지지 않은 혼자의 시간은 무한한 자유가 아니라, 영원한 징벌일 수도 있음을 문이 닫히는 순간 깨달았다.
의도치 않게 닫혀버린 문처럼 채비 없이 닥쳐온 부재는 미처 준비하지 못한 나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였다.
이별을 알고 준비하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나는 도둑처럼 찾아온 이별에 원망도, 애원도 했었다.
그리고 이 괴로움이 흩어져 버린 내 삶의 조각들을 다시 맞춰가는 과정이길, 그 안에서 신의 뜻이 담긴 작은 단서라도 발견하길 바랐다.
그로 인해 내가 이 삶을 견뎌낼 이유를 찾을 수 있길 원했다.
하지만 매일 혼자 여닫는 문 앞에서 그 어떤 거창한 뜻도 알 수 없었고, 영화처럼 극적인 순간도 찾아오지 않았다.
며칠은 괜찮았다가 또 다음 며칠은 못 견디게 괴롭고, 그런 반복 속에서 시간은 흘렀다.
삶은 매번 이런 식이었다.
다행히 인간에겐 망각이라는 축복이 있어 뼈 시린 외로움도 점차 무뎌져갔다.
결국 나는 이렇게 적응하는 법을 배웠다.
혼자 여닫는 문이 외로운 건 여전하지만, 그 외로움을 일상으로 견디는 법을 익히게 된 것이다.
이제 나는 문을 열고 닫는 일상의 행위 속에서, 오늘을 견디고 내일을 살아갈 힘을 쌓는다.
거창한 이유가 없어도 괜찮다.
내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건 언제나 대단한 계기가 아니라, 매일 문을 열고 나서는 데 필요한 용기 하나면 충분하니까.
[덧붙이는 마음]
맑은 날, 맑은 바람.
바람이 선물처럼 분다
길 잃은 마음은
아직도 제 갈 길을 찾지 못해 멋대로 까분다.
하루는 괜찮다가도 하루는 견딜 수 없이 괴롭다.
여전히 혼자 있는 시간.
이 시간의 고요함이 예전엔 좋다 생각했는데
그건 돌아갈 곳, 돌아올 누군가가 있어 그러했음을,
그 끝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가능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한번 닫힌 문은
내가 다시 열기 전엔 절대로 열리지 않는다.
그래서 혼자 여닫는 문을 가진 사람은, 슬프다
계절은 여름이 한창인데
바람 부는 마음은 벌써 가을의 끝자락,
시린 겨울 언저리를 헤맨다.
만약 신이 있어 이런 삶을 살게 하셨다면,
이 괴로움이 내 삶의 조각들을 맞추는 증표라면,
부디 고단한 삶의 조그마한 귀퉁이에라도,
스쳐가는 바람결 끝자락에라도,
그 뜻, 그 조각, 조금이라도 남겨 당신의 뜻임을 알게 하시길ᆢ
그리하여 이 삶을 견뎌낼 이유가 되게 해 주시길ᆢ
2022년 8월에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