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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A Sep 17. 2015

밀라노에서 만난 똑순이

밀라노 #001

[홀로 떠난 유럽을 그리다] 가 브런치북 공모전에서 은상을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여행 후에도 기억에 남을 사람을 만나게 되기도 한다.

밀라노에서 만난 동생도  그중 한 명이다.


동그스름한 얼굴에 

예쁘고 건강해 보이던 그녀는 대학생이었다.

우리는 숙소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마침 둘 다 급한 일정이 없어 함께 피자를 먹으러 갔다.

쇼핑거리를 걷고, 유심을 사고, 

옷 구경을 하고, 밥을 먹고, 숙소에 돌아와 

옆 침대에 앉아서까지 우리는 계속 이야기를 했다.



그림보다 더 그림같은 할아버지. 쇼핑거리에서 신문을 읽고 계셨다.




어떤 일을 하고 무슨 공부를 하는지, 

어디를 여행했는지, 어디로 갈 것인지 등등… 

이야기는 즐거웠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여행경비를 모았다는 그녀는 

한눈에 봐도 야무지고 똑 부러져 보였다.

나도 혼자 다니긴 했지만 

그녀는 나보다 더 오랜 시간 홀로 여행했던 상황이라 

참 대단하다 생각했다. 

나는 어릴 때 그런 용기가 없었는데-.


주인이 쇼핑하는 것을 기다려주는 견공. 느긋하게 앉은 모습이 하루 이틀 기다려 본게 아닌 듯 하다.




여행을 하며 만나게 되는 사람들 중에는 

바로 옆 침대에 있어도 

더 이상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는 반면 

어쩐지 궁금하고 뭔가 챙겨주고 싶고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도 있다. 

그녀는 후자 쪽이었다. 

그녀와 유심을 사러 갔다가 주인과 너무 잘어울리는 견공을 발견했다. 더운 날씨에 지쳤는지 들어오자마자 대리석 바닥에 벌렁 누워버리던 녀석.  저돌적으로 흔드는 꼬리!




그녀와 나누었던 대화는

상당 부분 기억이 흐릿해진 상태이지만 

이 말은 선명하게 기억난다.



딱 보면 나랑 비슷한 또래 애들인데

씀씀이가 다른 애들 보면 박탈감 느껴요.

나는 바게트 먹으며 다니는데

어제 그 집 별로였어, 오늘은 어디 갈까 그런 얘기..

아예 직장인이면 자기가 벌어서 오는 거니까 

별로 안 그런데, 

내 또래 애들은.. 

나도 아르바이트 많이 해봐서 아는데  벌이가 뻔한걸..

딱 보면 알거든요. 

집에 돈이 많구나. 부모님이 주셨구나.



그녀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떠나온 여행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 모양이었다.

순간 쓸쓸함이 그녀의 얼굴을 스치는 것을 보았다.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웃으며 말했지만 

마음속은

‘어쩌겠니, 앞으로도 그런 모습을 계속 봐야 할 텐데…’ 

라며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그날은 잠들기 전에 

그녀의 여행이 행복한 시간이 되기를 빌어주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그것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혹시라도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면

맛있는 밥을 사주고 싶다. 

내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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