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 #001
[홀로 떠난 유럽을 그리다] 가 브런치북 공모전에서 은상을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여행 후에도 기억에 남을 사람을 만나게 되기도 한다.
밀라노에서 만난 동생도 그중 한 명이다.
동그스름한 얼굴에
예쁘고 건강해 보이던 그녀는 대학생이었다.
우리는 숙소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마침 둘 다 급한 일정이 없어 함께 피자를 먹으러 갔다.
쇼핑거리를 걷고, 유심을 사고,
옷 구경을 하고, 밥을 먹고, 숙소에 돌아와
옆 침대에 앉아서까지 우리는 계속 이야기를 했다.
어떤 일을 하고 무슨 공부를 하는지,
어디를 여행했는지, 어디로 갈 것인지 등등…
이야기는 즐거웠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여행경비를 모았다는 그녀는
한눈에 봐도 야무지고 똑 부러져 보였다.
나도 혼자 다니긴 했지만
그녀는 나보다 더 오랜 시간 홀로 여행했던 상황이라
참 대단하다 생각했다.
나는 어릴 때 그런 용기가 없었는데-.
여행을 하며 만나게 되는 사람들 중에는
바로 옆 침대에 있어도
더 이상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는 반면
어쩐지 궁금하고 뭔가 챙겨주고 싶고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도 있다.
그녀는 후자 쪽이었다.
그녀와 나누었던 대화는
상당 부분 기억이 흐릿해진 상태이지만
이 말은 선명하게 기억난다.
딱 보면 나랑 비슷한 또래 애들인데
씀씀이가 다른 애들 보면 박탈감 느껴요.
나는 바게트 먹으며 다니는데
어제 그 집 별로였어, 오늘은 어디 갈까 그런 얘기..
아예 직장인이면 자기가 벌어서 오는 거니까
별로 안 그런데,
내 또래 애들은..
나도 아르바이트 많이 해봐서 아는데 벌이가 뻔한걸..
딱 보면 알거든요.
집에 돈이 많구나. 부모님이 주셨구나.
그녀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떠나온 여행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 모양이었다.
순간 쓸쓸함이 그녀의 얼굴을 스치는 것을 보았다.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웃으며 말했지만
마음속은
‘어쩌겠니, 앞으로도 그런 모습을 계속 봐야 할 텐데…’
라며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그날은 잠들기 전에
그녀의 여행이 행복한 시간이 되기를 빌어주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그것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혹시라도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면
맛있는 밥을 사주고 싶다.
내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