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 #007
[홀로 떠난 유럽을 그리다] 가 브런치북 공모전에서 은상을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폭우가 쏟아졌다.
천둥 번개까지 쳤다.
조금은 흐렸지만 방금까지 해가 나오기도 했는데 말이다.
다행히 우산을 챙겨나왔으나
우산으로도 감당하기 버거운 비였다.
운동화는 이미 찔꺽대는 소리가 났고
바지는 무릎 아래부터 젖어서 종아리에 붙은 상태였다.
급히 건물 통로에 피신했고
그곳에는 나와 같은 사람이 몇 명 더 있었다.
다양한 연령대의, 다른 인종의 사람들이
얼떨결에 함께 어둠 속에서
멍하니 밖을 보며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여행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떠나기 전에는 이 말이 피부에 와 닿지 않았다.
그러나, 떠나 보니 정말 그랬다.
예상치 못한 사람을 만나고,
돌발상황이 일어나고, 계획은 수정된다.
여행이 이처럼 틀어지기 십상인데 하물며 인생은 또 어떨까.
비 오는 베네치아를 걸으며
여행은 또 하나의 짧은 인생 같다는 생각을 했다.
삶도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열심히 준비한 시험에서 떨어지고,
열심히 노력해도 전세 값은 마련할 수 없다.
외롭지 않으려고 결혼을 했으나 더 외로워지고,
내 잘못이 아닌 일로 피해를 입거나 다치고,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한다.
하지만, 세상은 이렇게 말한다.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고.
정말 노력했냐고. 최선을 다했냐고.
정말 노력했지만 뜻대로 안될 수도 있다.
그것은 노력한 사람의 탓이 아니다.
때로는 홀로 어찌 할 수 없는 큰 파도를 만나기도 하는 것이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비에 젖은 거리를 걸으며
파도 위에 서있는 이 시대의 사람들을 생각했다.
오늘은 그들에게
베네치아에서 나에게 했던 위로를 보내주고 싶다.
인생은 원래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니,
하는 대까지 하고,
오늘 하루 열심히 살았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살다 보면 그러기도 한다고,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