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 #004
[홀로 떠난 유럽을 그리다] 가 브런치북 공모전에서 은상을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막연하게 이런 생각을 하곤 했었다.
'그 사람은 건강하고 체격도 좋고 머리도 좋았던 게 아닐까?'
'부자에다 주변에서 돕는 사람도 많지 않았을까?'
건축학교 졸업식 날 가우디의 교장선생님이 졸업장을 건네주며 했다는 말은 꽤 유명하다.
여러분, 제가 이 졸업장을 천재에게 주는 것인지, 광인에게 주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시간이 그것을 우리에게 말해줄 것입니다.
사실 가우디는 교장선생님과 사이가 좋지 않았고, 학교 다닐 때 성적도 좋은 편이 아니었다고 한다.
게다가 그는 몸이 허약했고 폐병과 류머티즘 관절염을 앓았다.
너무나 허약한 탓에 또래 아이들과 놀지 못하고 홀로 보낸 시간이 많아 자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도 한다.
그리고 그는 가난한 대장장이 집안의 자손이었다.
이쯤 되니 '뭔가 좋은 것'이 있을 거라 생각했던 마음이 미안해지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구엘공원의 공사는 1900년부터 1914년까지 진행되었다.
구엘공원을 착공한지 6년이 되었을 때 가우디는 아버지와 조카와 함께 구엘공원 내의 집으로(지금의 가우디 박물관) 이사를 했다. 그 반년 후에 가우디의 아버지는 사망한다. 가우디는 왜 조카와 살고 있었을까.
1879년에 누나 로사가 35세라는 젊은 나이에 사망했기 때문이다. 그 후 조카를 맡아 키우게 되었다.
그보다 3년 전에는 형이 25세에 사망했다. 가난한 집안에서 자란 형이 의사가 된 다음해였다. 형이 사망한 두 달 후 어머니까지 사망했다. 형과 어머니를 잃은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그는 미친 듯이 일했다고 한다.
연이은 가족들의 죽음은 그를 무척 외롭게 했을 것이다. 게다가 그는 평생 독신이었다. 구엘공원에 이사한지 6년이 되었을 때 조카마저 35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하고 만다. 가우디는 혈혈단신이 되었다. 2년 후 구엘공원의 공사가 중단되었는데 그해에는 제 1 조수인 베렝게르가 47세로 사망한다. 가우디는 오른팔을 잃었다며 무척 슬퍼했다고 한다. 구엘공원 내에 가우디가 살던 집이 베렝게르가 설계한 집이다. 또다시 2년 후인 1916년에는 가우디가 가장 신뢰한 토라스 주교가 사망하고, 그 2년 후는 가우디를 이해해주고 후원해 준 구엘 백작이 사망한다.
나의 가까운 친구들은 모두 죽었다.
나에게는 가족도, 건축주도, 부귀도, 아무것도 없다.
그러므로 나는 이 성전에 온전히 나를 헌신할 수 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대하는 가우디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가우디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으로 거처를 옮기고 1년 후 전차에 치여 사망하게 된다.
소중한 이들을 모두 잃은 가우디의 마음이 어땠을지 나는 가늠조차 할 수가 없다. 다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가우디의 놀랍고 위대한 작품은 스스로를 헌신하는 깊이의 열정을 통해 이루어 낸 일이라는 것.
지금은 천재로 추앙받고 그의 건축물들이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기도 하지만 건축가로 일하던 당시는 모든 일이 수월하게 풀리지 만은 않았다.
구엘공원도 그랬다.
부자들을 위한 전원주택으로 계획되었던 구엘공원은 60채를 지어 분양하려고 했으나 경사가 너무 심하고 돌도 많아 작업이 힘든데다 공사기간이 14년이나 걸리면서 자금난까지 겹쳐 30채를 겨우 짓고 공사가 중단되었다고 한다. 30채 중에 겨우 2채가 분양되었는데 그나마도 팔린 2채 중 한 곳은 가우디가 산 것이었다.
구엘공원의 타일 모자이크는 매우 아름답다. 물론, 그것도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
공사 중에도 험한 분위기가 되곤 했다고 하는데, 인부들이 붙여놓은 모자이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가우디가 다 떼어버렸다고 한다. 가우디와 함께 일하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공사를 하며 인부들이 원래 있던 나무를 자르려 하자 가우디는 나무를 살리기 위해 설계도를 수정하기도 했다.
자연을 사랑하는 그의 마음을 느낄 수 있고, 또 그만큼 구엘공원이 더욱 가치 있어지는 일화이다.
구엘공원을 걸으며 나는 못내 아쉬움이 남았었다. 제대로 완성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뭔가 또 대단하고 아름다운 것을 보여줄 수 있지 않았을까.
구엘공원에 거주했던 가우디는 매일 공사가 중단되어 버린 모습을 봐야 했을 것이다.
가우디는 얼마나 일에 몰두했을까. 자신의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를 내던졌을까.
물론, 열정도 있었겠지만 일은 그 사람에게 있어서 외로움을 피하기 위한 도피처가 아니었을까.
그는 행복했을까....
구엘공원은 참 아름다웠지만
가우디 아저씨를 생각하다가 나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 보게 되어서 마음이 조금 무겁고 먹먹하고 부끄러웠다.
나는 어떻게 살고 있나... 하는 생각.
가우디 아저씨의 말씀처럼 아름다움은 진실의 광채인데 나는 요행을 바라고 있지는 않은지.
진심으로 내 삶을 대하고 있는지....
가우디 아저씨께서 작품을 통해 보여주는 진실을 마음에 담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괜찮다고, 조금 느리지만 뚜벅뚜벅 걸어가 보자고.
공원을 보고 나오는 길에 반가운 친구를 발견했다.
생각보다 토실토실했고 털이 부드러웠다.
만져도 개의치 않는 것을 보니 아마도 평소에 사람들이 예뻐해 줬던 모양이다.
구엘공원과 동물은 참 잘 어울리는 느낌이다.
오래오래 건강하고 행복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