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과 스타트업 문화의 관계
어니스트펀드를 창업하기 전 몇 개월 간 머물렀던 미국 소재 벤처캐피털에서 만난 나의 상사 칸이(Kanyi)는 어느 날인가 자신만이 알고 있는 실리콘 벨리의 비밀을 가르쳐주겠다고 했다. 인터넷 결제 서비스의 시초 페이팔의 창업자이자 페이스북의 첫 외부 투자자, 그리고 한국에서는 그의 사업철학을 담은 저서 <제로 투 원(Zero toOne)>으로 유명한 피터 틸(Peter Thiel)이 사실은 인종차별주의자(racist)이고 혁신의 진짜 의미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이라는 이야기였다.
칸이의 비밀을 듣게 된 발단은 그가 투자를 검토하는 회사에 대한 견해를 밝힐 때 종종 인용했던 대학시절의 강의록 때문이었다. 피터 틸의 명저 <제로 투 원>은 본래 틸이 스탠퍼드에서 강의했던 창업수업의 강의 내용이 명성을 얻으면서 출판까지 이루어진 것인데, 칸이가 스탠포드 재학 시절틸의 바로 그 강의를 직접 들으면서 사업에 대한 많은 통찰을 얻었고 이를 투자자가 된 이후에도 비즈니스와 시장을 이해하는 과정에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수업을 듣던 당시 칸이가 피터 틸로부터 받은 최종 에세이 과제의 주제가 “당신만이 알고 있는 실리콘밸리의 비밀은 무엇인지 서술하라”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에 대해 그가 준비한 에세이의 첫 문장이 바로 “나만이 알고 있는 실리콘 벨리의 비밀은 교수 피터 틸이 인종차별주의자라는 것”이었다.
칸이가 펼친 논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다
1. 틸은 수업 내내 창업자들이 인류의 진보를 위해 필요한 진정으로 혁신적인 일(ex. 불로불사의 방법 찾기)에 언젠가부터 더 이상 도전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비판했다. 창업자들이 진짜 혁신을 위해 노력하지 않고 비슷한 아이디어를 베끼는 데에 급급하다는 것이다.
2. 틸의 이러한 주장은 오로지 미국 중심적으로 인류의 진보와 혁신을 바라보는 틸의 협소한 시각에서 비롯된 잘못된 믿음이다. 미국과 몇몇 선진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는 오랜 기간 미국을 중심으로 한 기술의 발전과 이로 인한 사회적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었고, 그렇기에 많은 창업자가 집중한 혁신은 보다 효율적으로 이미 개발된 기술의 혜택을 전 세계로 퍼뜨리는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3. 실제로 틸이 혁신이 멈추었다고 주장한 시기부터 기술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던 나라들에 미국발 혁신의 혜택이 빠른 속도로 전파되었다. 미국인이 세상의 기준이라는 논리에서 벗어나면 인류 차원의 진보와 혁신은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었고, 앞으로도 진보와 혁신을 어떻게 정의하는가에 따라 창업자가 집중할 사업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칸이는 이렇게 교수님을 향한 거친 논쟁(racist는 미국 문화에서 함부로 입에 올리면 안 되는 표현이다)을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에세이 최고 성적을 받았다고 했다. 학생의 자유롭고 다소 논쟁적인 주장에 대해서도 개인적 공격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새로운 아이디어, 다른 시각으로서 높게 평가하고 받아들인 틸의 리더십이 돋보이는 대목이었다.
이러한 학창 시절의 경험 덕분일까, 칸이는 언젠가 내가 그에게 지시받았던 큰 업무의 전반적 방향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도전했을 때 이를 적극적으로 반영하여 업무 방향을 수정해준 적이 있었다. 그는 비록 나의 주장이 사업적으로 깊이가 부족했음에도 불구하고 먼저 끝까지 경청해주었고, 함께 대화하며 논리가 더 명확하게 정리될 수 있도록 도와주어 내 아이디어가 빛을 발하도록 해주었다. 또 내가 비판적 사고를 통해 상사의 지시에도 “No”라고 대답할 수 있다는 점을 여러 번 칭찬해 주었다. 이후 나는 자신감을 얻고 회사를 위해 보다 더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냈으며, 보다 의미 있는 논의를 해내기 위해 스스로 더 공부하기 시작했다. 틸이나 칸이의 사례 모두 상하관계 사이에서 소통이 어려운 한국 문화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멋진 리더십이었고, 그런 리더십이 만드는 수평적 소통의 문화 덕에 나는 개인의 성장과 회사의 발전 모두를 이룰 수 있었다.
세상에는 너무나 다양한 종류의 조직이 각기 다른 목표를 가지고 존재하고 있다. 또 그렇기에 각 조직은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구성원들의 적절한 행동 양식과 규범을 의미하는 조직 문화에 있어 각기 다른 양상을 보일 수밖에 없다. 스타트업의 존재 이유가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술을 통해 기존의 사회 구조가 가지고 있는 한계에 도전하고 혁신을 만드는 것”이라면, 이에 맞는 조직 문화는 “더 나은 제품, 서비스, 회사를 만들기 위한 구성원들의 아이디어가 회사의 의사결정 과정에 적극 반영되고 실행될 수 있는 문화”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금융산업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고자 하는 어니스트펀드 팀 역시 스타트업으로서 구성원 간의 원활한 소통이 일어나고 이것이 혁신의 씨앗이 될 수 있는 문화의 정착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는 구성원들의 다양한 소리를 듣고자 마음을 열고, 논쟁적이거나 예상치 못한 소리에도 그 속에 숨은 통찰에 대해 고민하는 열린 리더십으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나 역시 칸이와 틸처럼 구성원의 다양한 목소리를 열린 마음으로 듣고 반영하는 리더십을 통해 건강한 스타트업 문화를 만들어보겠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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