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2P금융이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
작년 이맘때쯤 어니스트펀드에 처음 합류할 때만 해도 내가 몸 담을 P2P금융산업의 본질적인 의미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2015년 당시 핀테크는 전 세계적인 화두였고, 국내에서도 정부가 핀테크 혁신에 대한 강한 의지를 피력하면서 핀테크에 대한 관심은 금융기관과 금융당국, 스타트업 사이에서 최고조에 달했다.
당시 나는 P2P금융업을 핀테크 산업 속의 한 가지 비즈니스모델 정도로 이해하였다. P2P금융을 통해 금융산업을 혁신할 수 있다는 막연한 생각뿐 그 혁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혁신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지는 않았다.
그리고 1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직접 업에 뛰어들어 고객들을 직접 만나보고, 새로운 상품을 기획해보고, 그 과정에서 크고 작은 난관에 직접 부딪혀보면서 P2P금융에 대해 조금이나마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P2P금융의 본질은 기본적으로 금융업을 영위하기 위해 들어가는 각종 비용의 거품을 제거해 나가는 데 있다.
금융업을 ‘돈의 유통산업’으로 정의한다면 P2P금융은 금융기관이 돈을 유통하는 과정을 보다 효율적으로 만들어 사회에서 돈이 돌고 도는데 들어가는 비용을 줄여주는 비즈니스모델이다.
모든 금융기관은 어떤 누군가에게 돈을 빌려서 다른 누군가에게 돈을 빌려준다. 이때 금융기관은 돈을 싸게 빌려서 그것보다 비싸게 빌려준다. 그래야만 금융기관은 각종 비용을 처리하고 이익을 남길 수 있다.
예를 들어 보자. 금융기관의 비용은 크게 (1) 지점 운영비용, (2) 모객 비용, (3) 규제 제반 비용, (4) 대출 심사 비용, (5) 대손비용 (부도율) 등으로 나뉜다. 어떤 금융기관인지에 따라 그 구성과 상대적 크기는 다르겠지만 모든 금융기관이 위와 같은 비용구조를 가지고 있다.
은행은 전국에 점포만 수천 개가 있으니, 점포 운영 비용이 크고, 동시에 금융당국의 철저한 감독을 받고 있으니 규제 제반 비용이 클 수밖에 없다. 카드사나 저축은행은 TV광고, 마케팅 이벤트 등으로 인해 모객 비용이 크다. 한편 대부업체들은 상대적으로 신용이 좋지 않은 고객들에게 대출을 해주다 보니 부도율이 높아 대출심사비용과 대손비용이 높다.
이렇듯 금융기관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큰 비용을 지출하고 있으며, 이를 만회하고 이익을 남기기 위해 돈을 싸게 빌려서 그것보다 훨씬 비싸게 빌려준다.
P2P금융은 위에서 설명된 기존 금융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 점포가 없고 온라인으로만 운영을 하니 지점 운영비용이 없고, 대출심사의 많은 부분을 IT기술로 자동화하기 때문에 운영비용이 줄어든다. 동시에 차별화된 신용평가기술로 우량 대출자를 선별하고 사기 방지 시스템을 통해 대출사기의 가능성을 낮출 수 있으니 대손비용 (부도율) 또한 낮출 수 있다.
P2P금융은 이러한 강점을 바탕으로 돈을 빌려주는 사람과 빌려가는 사람 간의 금리 차이, 다시 말해 투자자와 대출자 간의 금리 차이를 크게 줄일 수 있다.
당연하게도 투자자와 대출자 간의 금리 차이가 줄어들면, 투자자는 보다 더 높은 수익률을 가져갈 수 있고, 대출자는 보다 더 낮은 금리로 돈을 빌릴 수가 있다. 여기서 더 높은 수익률이라는 것은 은행과 비교해 보았을 때 기대수익률이 월등이 높다는 것이고, 더 낮은 금리라는 것은 저축은행이나 카드대출 대비 금리가 월등이 낮다는 것이다.
원금이 반드시 보장되는 것은 아니지만 자사 투자자들의 경우 약 9% 후반에서 10% 초반의 기대수익률을 내고 있으며, 대출자들 또한 평균적으로 9% 후반에서 10% 초반의 합리적인 중금리에 대출을 받고 있다.
보는 관점에 따라 10%의 대출금리가 높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대출시장 구조를 파악해보면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이 가능하다.
신용정보업체 나이스 평가정보에 따르면 현재 국내 금융 소비자 중 신용등급이 1~3등급에 해당하는 고 신용자 비중은 전체의 45%에 불과하다. 나머지 55%는 4~7등급 중신용자와 8~10 등급 저신용자가 해당되는데 이 중 절반 이상이 은행에서 대출을 받지 못해 연 이자율 20%를 넘나드는 제2금융권 고금리 대출을 이용하는 실정이다.
정부는 그동안 다양한 정책을 내놓았지만 효과적이지 않았다. 햇살론과 사잇돌대출, 새희망홀씨, 미소금융을 포함한 정책 서민금융과 각종 보증보험 연계상품을 내놓았지만 효과는 제한적이었다. 그 배경에는 앞서 설명한 금융기관 본연의 비효율성과 높은 비용 등으로 인해 중금리 대출의 자발적 시장 형성이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이러한 가운데 P2P금융은 비즈니스모델과 기술력을 활용하여 기존 금융기관들의 한계를 뛰어넘고 진정한 의미의 중금리 대출을 실현하고 있다. 마치 2010년에 L마트에서 등장했던 반값 치킨과 E마트에 등장했던 반값피자처럼, 오늘날 P2P금융을 필두로 한 대출시장에는 반값 이자가 등장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어니스트펀드는 얼마 전 소셜커머스 T사와 연합하여 고금리 카드대출을 쓰고 있는 고객들이 기존 대출을 가지고 오면 30% 이상의 이자를 즉각적으로 감면해주는 전 국민 금리할인 이벤트를 진행한 바 있다.
물론 자사를 이용하는 금융수요자 모두가 이러한 반값이자로 대출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소득을 포함해 몇 가지의 최소 조건을 만족시켜야 하고, 신용등급과 기존에 쓰던 대출의 종류에 따라 감면받을 수 있는 금리의 크기는 다양하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P2P금융의 등장 이래로 많은 대출자들이 잘 모르는 상태에서 무심코 받은 고금리 대출의 상환부담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어니스트펀드에는 대환대출로 적게는 수십만 원에서 많게는 수백만 원의 대출이자를 감면받은 고객들이 많다. 어니스트펀드의 고객 중 약 절반 정도가 대환대출 고객인데 이들은 모두 기존 금융기관의 본연적 한계로 인해 필요 이상으로 높은 이자를 부담하고 있었던 것이다.
P2P금융은 대출자 개인으로 보면 이자를 경감해주고, 조금 더 넓은 관점에서 보면 가계부채 문제와 금리 절벽 문제를 해결하는데 일조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가계부채 문제는 한국 경제의 최대 위험 요인으로 꼽힌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한국의 가계부채는 지난해 말 1200조 원을 돌파하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소득보다 부채가 늘어나는 속도가 더 빠르다. 이처럼 가계부채가 빠르게 늘어나는 것은 저금리가 지속되면서 대출 비용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1.25%로 역대 최저이고 주택담보대출금리도 현재 1.35%까지 떨어졌다. 부동산 시장이 나쁘지 않다는 점도 가계부채 증가를 부추기고 있다. 가계부채의 60%가량을 차지하는 주택담보대출은 1년 만에 13.9% 상승했다.
동시에 가계소득이 부진한 것도 가계부채 상승에 영향을 미쳤다. 가계소득이 적으니 생활비 등을 위해 대출을 쓰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이는 신용대출의 급격한 상승으로 이어졌다. 특히 카드론을 비롯한 제2금융권 대출이 지난 몇 년 사이 급격하게 증가한 것이 가계부채 문제를 악화시키는데 일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역설적으로 고금리 대출이 가계부 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증가하면서 국민들의 소비여력을 감소시키고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P2P금융기업들이 대환대출을 통해 고금리의 카드론이나 저축은행, 대부업 대출을 중저금리 대출상품으로 대환 해주고 있다. 실제로 어니스트펀드 외에도 상당수 P2P금융기업의 대출고객 중 절반 이상은 대환대출을 목적으로 대출을 하였으며, 대출자 한 명당 최소 수십만 원에서 최대 수백만 원의 이자를 절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P2P금융기업은 무분별한 신규대출이 아니라 기존 대출의 체질개선을 통해 대출자들의 고금리 부담을 덜고 한국 경제의 가계부채 문제 해결에 일조하고 있다.
P2P금융을 중심으로 촉발된 중금리 대출상품의 확대는 고신용자와 저신용자 사이의 금리 양극화, 혹은 금리 절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기존 신용대출 시장은 연 3~5%대의 은행권 대출과 연 15%~27%의 제2금융권 및 대부업체 대출로 양분되어 있어 그 중간 대금리, 즉 10%대의 중금리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에 따라 신용도가 나쁘지 않은 중신용자들까지도 고금리로 내몰아 금리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어왔다.
올해 초부터 많은 금융사들이 중금리 대출시장에 뛰어들어 경쟁을 하고 있지만, P2P금융기업만이 탄탄한 기술력과 차별화된 비즈니스모델을 바탕으로 중금리대출 공급에 대한 지속성을 가져갈 수 있다. 더 나아가 P2P금융이 대중으로 확산되면 소득계층 상승 사다리를 재건하는데 일조를 할 수 있다.
지나친 금리 절벽이 존재하면 고 신용자와 중 저신용자 사이의 현재와 미래 소비 간 불균형을 심화시켜 장기적으로 저신용자의 가계 후생을 악화시키는데, 이는 곧 저신용자 비율이 높은 저소득층이 중산층으로, 중산층이 고소득층으로 이동할 수 있는 가능성을 떨어지게 한다.
이와 같이 P2P금융은 금융소비자 개인 차원에서나 사회경제적 차원에서나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동시에 정부와 금융당국은 이러한 긍정적인 영향 속에서 금융시스템의 안정과 금융소비자의 보호를 신중하게 고려하여야 한다. 영국과 미국을 포함한 핀테크 선진국에서는 금융산업의 혁신과 금융소비자보호 이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해 규제 샌드박스 (Regulatory Sandbox)라는 방식을 도입하였다.
규제 샌드박스란 핀테크 스타트업을 포함한 신생 금융기업이 완화된 규제와 정부의 다양한 지원 안에서 혁신적인 제품과 서비스, 비즈니스모델을 테스트할 수 있게 해주는 제도를 말한다. 샌드박스란 모래를 깔아 어린이가 다치지 않고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장소를 뜻하는데, 이 개념을 금융산업에 적용해 기존 규제를 적용하지 않고 새로운 금융상품과 비즈니스 모델을 낮은 비용으로 검증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P2P금융기업들에게도 위와 같은 샌드박스 방식이 적용되면 샌드박스 내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시도에 대해서 금융당국이 어떠한 감독조치도 취하지 않겠다는 암묵적인 합의가 생겨 규제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혁신적인 서비스를 선보일 수 있다. 또한 역설적이게도 규제 샌드박스의 적용을 받는 금융기업들이 다양한 혁신안을 고안하고 서로 경쟁하는 과정에서 소비자 보호장치가 도출될 수 있다.
문제는 P2P금융이 본격적으로 열리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지금, 자생적 시장 형성을 가로막는 무분별한 규제가 대두되고 있는 점이다. P2P금융의 등장과 핀테크 혁신은 금융산업이 혁신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가 될 것임에도 불구하고 국내 금융업계와 금융당국은 아직 이 새로운 시스템의 등장을 낯설어하고 있다.
P2P금융이 가진 긍정적 요소를 창조적 혁신으로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무분별한 규제보다는 성장과 보완을 동시에 아우를 수 있는 폭넓은 정책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 P2P금융이 가져올 변화에 대해 더욱 심도 있는 논의가 이루어지는 자리가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져야 할 것이며, 정부와 학계, 금융기관 및 IT 기업 전문가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노력이 충분히 이루어져야 한다.
금융과 IT를 결합하여 기존의 대출·투자 경험을 혁신하는 P2P금융 스타트업, 어니스트펀드의 이야기가 연재될 팀 브런치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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