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정책은 산업혁신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어니스트펀드에서 4개월간 인턴으로 일하면서 핀테크 산업을 눈앞에서 생생히 접하게 되었다. 경제신문에서 요즘 대세는 ‘핀테크’라는 기사는 많이 봤었지만, 현업에서 금융(Fin)과 기술(Tech)이 실제로 어떤 식으로 결합이 되고 있는지를 볼 수 있었다.
인턴으로 근무하는 동안 어니스트펀드의 사업 분야인 P2P금융업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면서, 다른 핀테크 산업들은 어떤 것이 있고 어떠한 금융과 기술이 만나는지에 대해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겼다. 그러던 중 킨텍스에서 개최하는 ‘인사이드 핀테크’라는 박람회를 리서치 목적으로 가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겨 망설임 없이 자원했다.
이곳에서 많은 업체 부스와 강연장을 휘젓고 다니면서 우연히 핀테크 산업의 ‘규제’에 대한 토론을 벌이는 세션에 참석을 하게 되었다. 핀테크 산업에 대한 규제를 어떻게 만들어 나가야 하는가에 대한 연사들의 의견교환이 이루어지던 도중에, 핀테크 산업에 대한 영국의 규제 정책에 관한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이후 나는 영국의 금융규제정책에 대해 깊은 궁금증을 가지게 되었고 영국이 어떤 이유로 핀테크 산업에 대해 Start-up friendly 정책을 펴게 되었는지, 현재 어떤 정책을 펼쳐서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는지를 조사해보았다.
영국 런던은 미국 뉴욕에 이어, 현재까지도 세계에서 2번째로 큰 국제 금융시장으로 거론된다. 영국이 이러한 지위를 지킬 수 있었던 이유는 국제 금융시장이라는 무대에서 수차례 고초를 겪으면서 배운 금융당국의 노하우가 막강하기 때문이다. 1976년 IMF 구제금융, 1992년 조지 소로스에 의한 ‘검은 수요일’ 사건 등을 겪으면서 영국의 금융당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세련된 금융안정정책과 소비자보호 정책을 구축할 수 있었다.
이러한 토대를 가지고 있었던 영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이 기존 금융 시장의 구조적 문제임을 간파하고 이러한 점을 개혁하기 위해 핀테크 산업을 지원하기 시작하였다. 이 과정에서 대형은행들이 국제 금융시장에 대한 독점적 지위를 구축하고 있었다는 것이 구조적 문제로 지목을 받았다.
영국은 이러한 시장에 경쟁을 불어넣어 대형은행들의 독점적 지위를 무너뜨리기 위해, 핀테크 스타트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고 이들이 ‘금융소비자의 효용성’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는 스타트업들이 눈앞에 이익에 급급해 결국 금융위기를 야기한 기존 금융기관들과는 다른 행보를 걸으라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실제로 영국은 정부 차원에서 지원을 할 핀테크 스타트업을 선정할 때 항상 ‘금융소비자의 효용성’을 높이는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가를 필터링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그 결과 영국의 핀테크 기업은 7,000여개가 넘고 총 6만여명의 일자리가 창출되었으며 65억 파운드(약 9.5조원)의 신규 수익이 창출되었다. 그렇다면, 영국 정부는 실제로 어떤 정책들을 통해 이렇게 핀테크 산업을 활성화시키고 있을까?
영국의 금융규제당국인 FCA는 다른 산업보다 규제가 많은 금융산업의 특징을 고려하여, 이노베이션 허브(Innovation Hub)와 규제 샌드박스(RegulatorySandbox)라는 2가지 정책을 병행하고 있다. 이 두 정책은 사업 진행 단계에 맞추어 핀테크 스타트업들이 규제로 인해 겪는 어려움을 해결해주고 있다. 이를 통해, FCA는 핀테크 산업의 혁신 속도를 늦추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첫 번째로, FCA는 이노베이션 허브를 통해 사업 초기 단계에 있는 핀테크 스타트업들을 지원한다.
이노베이션 허브는 신규 금융서비스를 출시하려는 스타트업들을 대상으로 FCA의 승인을 받기 위해 숙지해야 하는 규제 요건들에 대한 교육을 제공하고, 이에 따른 준비과정을 지원하는 부서이다. 이러한 지원은 복잡한 금융 규제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핀테크 스타트업들이 금융서비스 개발단계부터 규제를 고려하여 설계를 할 수 있게 컨설팅을 해준다는 점에서, 혁신의 속도를 높여주고 있다. FCA 자료에 따르면, 2016년 2월까지 200여 개 스타트업이 이노베이션 허브의 지원을 받고 있으며, 최종적으로 18개 기업의 신규 서비스가 FCA의 승인을 받았다고 한다.
두 번째로, FCA는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상품 출시 단계에서 규제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핀테크 스타트업들을 지원한다.
규제 샌드박스는 핀테크 스타트업이 완화된 규제와 다양한 지원 안에서 혁신적인 금융상품이나 서비스를 실제 시장 출시에 앞서 신속하게 시험해볼 수 있게 도와주는 제도를 의미한다. 어린아이들이 다치지 않고 안전하고 자유롭게 놀 수 있는 모래사장을 의미하는 샌드박스를 차용하여, 혁신적인 금융상품이나 서비스를 자유롭게 테스트할 수 있는 환경을 스타트업들에게 마련해 준다는 의미에서 규제 샌드박스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러한 제도 하에서, FCA는 금융소비자들을 보호하는 동시에 핀테크 스타트업들의 혁신을 저해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스타트업들과 의견을 교환하며 향후 규제 정책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고민한다.
이와 같은 정책적 노력을 통해, FCA는 핀테크 산업의 혁신을 장려함과 동시에 금융시장의 투명성을 지키는 데에도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앞에서 제시한 두 제도를 통해 적극적으로 금융규제와 정책에 대해 홍보하고 향후 신산업 규제에 대해 고민을 하는 것과 더불어, FCA는 핀테크 산업 중에 이미 상당한 발전을 이룬 분야의 경우에는 구체적인 규제를 마련한다.
영국의 이러한 적극적 규제환경 덕분에 수많은 혁신적 핀테크 스타트업들이 탄생할 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국제 송금 서비스를 제공하는 TransferWise와 자금관리 통합 서비스를 제공하는 Bud가 FCA의 도움으로 성장을 이어 나가고 있다.
1) FCA의 지원으로 시장을 넓힌 TransferWise
국제 송금을 하다가 비싼 수수료를 낸 창업자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TransferWise는 기존 송금 시스템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을 도입한 국제 송금 스타트업이다. 기존에는 송금자의 돈을 국내은행을 통해 직접 해외 은행으로 보내고 해외에 있는 수금자가 돈을 전달받는 방식이었으나, TransferWise의 혁신적 사업 모델은 이와 완전히 다르다. 아래 사례를 통해 설명하겠다.
영국에 사는 A가 미국에 사는 B에게 £1,000를 보내고 싶고, 미국에 사는 C는 영국에 사는 D에게 $1,230을 보내고 싶다고 하자. 환율에 의해, £1,000와 $1,230은 같은 가치를 갖는다. TransferWise를 통해 이 두 송금 거래가 이루어진다면, A(영국)의 £1,000이 D(영국)에게 간다. C(미국)의 $1,230는 B(미국)에게 송금이 된다. 이는 실제로 송금되는 것이 아니라, 같은 국가 내에서 송금자와 수금자를 연결하는 형식이다. 이를 통해, TransferWise는 기존 은행 송금 수수료인 5%를 약 0.5%로 대폭 감소시켰다.
기존에 ‘환치기’로 간주되어 불법이었던 이 모델은 2012년 영국 FCA에 의해 공식적으로 합법성을 인정받았다. 외환의 수요와 공급을 실시간으로 연결하는 것이 과거에는 불가능했으나 기술의 발달로 가능해지자 FCA에서 혁신성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또한 여러 나라의 고객들을 끌어와야 하는 TransferWise의 입장에서, 영국에서의 승인만으로 다른 유럽 국가들에서도 사업을 할 수 있게 만들어준 FCA의 적극적 지원 덕분에 유럽 시장에 쉽게 진출할 수 있었다. 이러한 FCA의 지원에 힘입어, 2016년 현재 TransferWise는 전 세계적으로 백만 명의 이용자가 매달 800만 파운드(115억 원 상당)를 송금하는 핀테크 기업으로 성장하였다.
2) 규제 샌드박스에 참가한 Bud
Bud는 은행계좌 송금, 연금 관리, 담보대출 관리, 투자 등 일상생활에서 벌어지는 개인들의 금융활동들을 하나의 앱으로 처리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핀테크 스타트업으로, 2015년 7월에 출범했다. Bud는 주류 은행들과 핀테크 업체들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각 업체들의 서비스를 하나의 앱으로 모두 통합하고, 고객들이 자신의 복잡한 자금현황을 Dashboard를 통해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서비스 고도화에 힘쓰고 있다.
이러한 혁신적인 핀테크 사업 모델을 구현하려는 Bud는 높은 경쟁률을 뚫고 2016년 11월 FCA의 규제 샌드박스 참가 기업으로 선정되었다. Bud는 FCA와의 협력을 통해 주류 은행들에 개설된 고객들의 계좌정보를 통합하고, 개별 고객의 자금 상황을 분석하고 공지하는 서비스의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를 통해, Bud는 빠르게 핀테크 사업 모델을 검증하고 앞으로의 서비스에 어떠한 금융소비자 보호장치를 구축해야 할지를 FCA로부터 컨설팅을 받으면서 사업 모델을 더욱 고도화시키고 있다.
금융규제당국의 정책은 새로운 금융산업의 성장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한다. 만약 FCA가 조성한 적극적 규제환경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TransferWise나 Bud와 같은 핀테크 스타트업들이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설령 존재했다고 하더라도 지금처럼 빠른 기간 내에 성장을 이루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TransferWise는 2011년에 세워진 5년 차 스타트업임에도 세계적 국제 송금 기업으로 성장했고, Bud는 창업 1년 만에 자신들의 배타테스트를 다양한 금융소비자들에게 선보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4차 혁명과 더불어 전 세계가 혁신을 외치는 요즘, 스타트업들이 혁신적인 금융상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하여 금융산업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을 창출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금융규제당국도 혁신을 위한 노력을 더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지원책을 통해서 핀테크 산업을 활성화시켜 활발한 시장 참여와 경쟁을 유도한다면, 금융소비자의 효용성을 더 높일 수 있는 창의적인 혁신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시대의 트렌드와 핀테크 혁신의 눈높이에 맞추어 활동하는 FCA의 정책적 기조는 마땅히 박수를 받을만 하다고 생각하고, 한국에서도 핀테크 강국인 영국과 같이 핀테크 산업의 혁신적 발전을 위한 정책들이 더 많이 나오길 기대해본다.
금융과 IT를 결합하여 기존의 대출·투자 경험을 혁신하는 P2P금융 스타트업, 어니스트펀드의 이야기가 연재될 팀 브런치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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