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등장한 P2P 금융의 오래된 역사
작년 이맘때 쯤에는 자정에 방영되는 시사 프로그램에서나 간간히 소개되던 ‘P2P금융’이 올해 들어서 아침방송은 물론 아홉 시 뉴스에까지 심심치 않게 등장하기 시작했다. 은행 예금금리가 1%에 못 미치는 상황에서 10% 이상의 수익률을 논하고, 저축은행에서 돈을 빌려 25% 이자를 내고 있는 사람도 10%대 금리로 갈아탈 수 있다는 꿈같은 이야기를 한다. 주변에는 P2P투자를 통해서 재미 좀 보았다는 소리도 들리는데, 뉴스에도 계속 나오는 것을 보니 누가 지어낸 말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여전히 P2P는 낯선 단어다. ‘피투피’라는 알파벳의 이질적인 조화는 발음하기도 어렵고 왠지 음성적인 성격을 띠고 있을 것 같다. 투자자와 대출자를 직접 연결해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고, 그 줄인 비용을 매력적인 금리로 돌려준다고 하는데, 취지는 좋지만 정말 그게 가능한 것인가?
많은 이들에게 P2P금융은 한마디로 급조된 개념이다. 16세기 르네상스도 아닌, 18세기 산업혁명도 아닌, 2015년 한국에 갑자기 등장한 새로운 금융모델. 마땅한 대안이 없는 저금리 시대에 역사적으로 유례없는 금융모델이 사막의 신기루처럼 눈 앞에 펼쳐졌다. 무심코 지나치기에는 너무나 매력적인 P2P금융. 그 길고 긴 역사에 대해 소개한다.
오늘날 세계의 금융중심지를 꼽으라면 뉴욕의 월스트리트를 떠올리겠지만,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이탈리아 베니스가 나온다. 베니스는 중세 르네상스 시대 당시 지중해의 금융시장을 지배하고 있었다. 셰익스피어의 명작 <베니스의 상인>의 주인공 안토니오는 돈을 빌려달라는 친구의 부탁을 받고 유대인 고리대금업자인 샤일록에게 돈을 빌린다. 샤일록은 돈을 빌려주는 대신 안토니오가 만약 돈을 갚지 못할 경우 그의 살 1파운드를 베어내기로 하는 잔인한 계약을 맺는다.
베니스에서는 샤일록과 같은 유대인만이 고리대금업을 운영할 수 있었다. 중세 교회는 기독교인이 돈에 대한 이자를 받는 것 자체를 죄악으로 여겼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구절 “네가 형제에게 꾸어주거든 이자를 받지 말고…타국인에게 꾸어주면 이자를 받아도 되거니와” (신명기 23장)를 인용하여 비유대인들을 상대로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을 수 있었다. 베니스의 유대인들은 좁은 지역에 모여 살면서 ‘방카’라는 테이블을 놓고 고리대금업을 운영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은행의 기원이 바로 방카다.
은행의 시초가 방카이고, 방카가 곧 개인 대출자와 개인 투자자를 연결하는 P2P금융이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빌려준 돈을 떼이지 않기 위해 베니스의 시민들 중 “좋은 사람”을 골라냈는데, 이는 곧 돈을 갚을 경제정 능력이 있는 사람을 의미했다.
오늘날로 따지면 일종의 원시적 신용등급제도가 도입된 셈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고 해도, 무역업에 종사하는 베니스인의 특성상 배가 가라앉는 사고가 발생하면 이자는커녕 빌려준 원금도 못 돌려받는 일이 빈번했다. 이러한 위험을 보상받기 위해 유대인들은 대출에 높은 금리를 부과하게 되는데, 훗날 유대인들이 돈을 밝히는 부도덕한 금융가로 묘사되기 시작한 시점도 이때부터이다.
베니스의 고리대금업에서 시작된 금융은 15세기 메디치 가문에 의해 체계화된 은행의 형태로 발전하기 시작한다. 메디치 가문은 15세기부터 17세기까지 약 300여 년간 이탈리아 피렌체 경제를 주름잡았고, 르세상스의 발전을 이끌어 인류 역사를 바꾸어 놓았다.
15세기 초 조반니 디 비치 데 메디치는 세계 최초의 근대 은행 “메디치은행”을 설립했다. 이 당시에도 교회는 이자 받는 것을 금지했는데, 메디치는 이자를 받는 대신 모든 거래를 외환으로 거래하여 외환 수수료의 형태로 이자를 받았다. 또한 메디치은행에 예금을 하는 사람들은 이자 대신 리스크에 대한 수수료를 받았는데, 실질적으로 이자가 존재했던 셈이다.
메디치 가문은 금융에 대한 대중의 부정적인 인식을 바꿔놓고 싶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금융은 곧 고리대금업을 의미했는데, 대중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는 대출 금리를 낮춰야만 했다. 조반니 디 비치 데 메디치는 고금리의 원인을 높은 부도율에서 찾았다. 그 당시 메디치은행은 하나의 지역기반을 두고 운영되었고, 따라서 지역경제가 몰락하면 연쇄 부도에 의해 은행 전체가 부도날 확률이 매우 높았다. 이러한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는 은행의 지점을 다양한 지역에 열어 리스크를 줄여야 했고, 그래야만 부도율과 함께 대출금리도 낮아질 수 있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받은 코시모 데 메디치는 탁월한 상업 능력을 활용하여 메디치은행의 저변을 이탈리아 전역으로 확대한다. 그는 메디치은행의 지점을 피렌체, 로마, 베니스 등에 열고 연합체를 설립하여 지점들 간 리스크를 공유하도록 했다. 또한 회계장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모든 지점의 예금과 대출금 흐름을 파악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오늘의 금융 정산시스템으로 발전되었다.
메디치가문은 이때부터 P2P금융의 핵심이 되는 대출 다변화를 통한 리스크 분산과 투명한 정산시스템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부도 위험을 크게 낮출 수 있었으며, 결과적으로 대출 금리 또한 낮출 수 있었다. 은행이 고리대금업을 넘어선 순간이었다.
놀랍게도 메디치은행이 등장한 15세기 이래로 수백 년간 은행 시스템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물론 산업혁명과 제국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은행의 규모는 거대해졌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금융산업의 근간이 되는 은행의 역할은 증대되었지만, 예금자의 돈을 한 곳에 모아 대출자에게 빌려주는 본질적인 개념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은행원의 역할도 단순했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미국 은행원들에게는 “363 법칙”이 통했다. 예금자에게는 3% 금리를 주고, 대출자에게는 6% 금리를 받고, 오후 3시에는 퇴근을 한다는 소리인데, 그만큼 은행과 은행원의 역할은 단순했다.
하지만 20세기 들어서 은행들은 새로운 문제에 봉착했다. 항상 높은 수익률을 자랑할 것 같던 은행들이 돈을 잃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1898년 미국에서 제정된 챕터 세븐 (Chapter 7) 파산법과 관련이 있다.
미국은 이 시기부터 비즈니스 창업을 장려하기 위해 누구든지 창업을 하고 금전적인 어려움에 봉착할 경우 파산을 신청하도록 법을 재정비했다. 이를 통해 파산을 할 수 있는 권리는 미국인들 사이에서 국민의 기본 권리로 까지 인식되게 되었다. 하지만 파산이 자유로워지면서 대출을 한 뒤에 돈을 갚지 않는 사례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파산을 신용불량이라는 부정적인 관점에서 보기보다는 법을 통한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보는 시각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56년 미국의 첫 신용평가시스템인 FICO가 등장했다. 은행들은 FICO를 활용하여 돈을 갚을 능력뿐만 아니라 갚을 의지가 없는 사람들을 구별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제한된 과거 금융정보만을 활용하여 신용을 평가하는 FICO 시스템은 태생적인 한계가 있었고, 금융거래정보가 많지 않은 인구의 큰 비중이 저신용자로 분류되게 되었다. 더 나아가 은행 대출이 어려운 저신용자들은 자연히 고금리를 받는 대부업에 의존하게 되었다. 금융산업이 성장하면서 보다 정밀한 신용평가시스템에 대한 필요성은 점점 커지고 있었다.
이러한 역사적 흐름 속에서 오늘날의 P2P금융은 자연스럽게 탄생했다. 다시 말해 P2P금융은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금융모델이 아니라 기존 금융시스템의 역할을 IT기술을 통해 구현시킨 더 발전된 형태의 금융모델이다. 한국의 대표적 P2P기업인 어니스트펀드 또한 세계적인 흐름에 발맞춰 선도적인 금융모델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수백 년간의 금융역사를 통해 배운 리스크 분산과 정산시스템, 그리고 신용평가모델의 중요성을 바탕으로, 보다 진보된 형태의 금융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IT기술의 발달은 더 이상 신용평가 및 정산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은행과 같은 큰 기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P2P기업은 과거 메디치은행처럼 유럽 전역에 은행 지점을 열어놓지 않아도 매일 전국에서 수백 명의 고객들을 온라인 상으로 모집할 수 있다. 또한 자동화된 정산 시스템으로 기존 금융기관에서 수십 명이 담당하던 정산 업무를 소수의 인원이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혁신적인 데이터 기술력을 바탕으로 금융과 비금융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 분석하여 신용평가에 활용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기존에는 은행 대출이 어려웠던 신용등급 구간에서도 우량 신용자를 판별해 중저금리 대출을 실행할 수 있게 되었다.
P2P금융은 한국에 처음 등장한 것이 아니며, 2015년도에 갑작스럽게 생겨나지도 않았다. P2P금융은 역사적 흐름 속에서 등장한 진보된 금융시스템이다. 초저금리 시대와 저성장 시대를 동시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P2P금융모델은 사막의 신기루가 아닌 오아시스 같은 존재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금융과 IT를 결합하여 기존의 대출·투자 경험을 혁신하는 P2P금융 스타트업, 어니스트펀드의 이야기가 연재될 팀 브런치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어니스트펀드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시다면, 어니스트펀드 홈페이지를 방문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