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나를 쓰다

아흔두 살 할머니, 처음으로 이케아를 가다

그녀는 강하다

by 글 쓰는 여자



그녀의 나이는 아흔둘이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20년째 같은 집에서 혼자 살고 있다.





남편이 떠나고 약 6개월 후, 막내아들 내외가 그녀를 찾았다, 엄마 집이랑 우리 집을 팔고 외곽에 집을 짓자. 같이 살면 좋잖아. 그가 혼자 사는 어머니가 걱정되어 그런 제안을 한 것은 아니었다. 막내아들에겐 오랜 소망이 있었다. 마당에서 큰 개들을 키우고, 아이들이 뛰어노는 집, 한쪽엔 텃밭을 만들어 상추나 고추를 직접 심고 따서 먹는 삶. 하지만 그러기엔 자금이 부족했고, 어머니의 집이 그 해결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아내도 설득했다, 엄마 집이랑 우리 집 합쳐서 짓되, 출입구를 따로 내면 서로 방해 없이 살 수 있어. 그의 아내는 듣기 싫은 말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는 사람이었다. 세상에 맘에 드는 것이 하나도 없는 그의 어머니와의 동거가 어떤 의미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새 집에서의 삶을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상상했다.


그녀는 입을 열었다, 이 집을 정리하고 너희와 살게 되면, 형과 누나한테 남길 게 없잖니. 막내아들은 그 말뜻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형이랑 누나가 무슨 상관이야, 엄마가 살고 싶으면 사는 거지. 그 집은 그녀가 세상을 떠난 후 자식들에게 남길 유일한 재산이었다. 그런 집을 팔아 막내아들과 함께 산다는 것, 그것이 그녀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그녀의 솔직한 마음이 이어졌다. 게으른 네 아내랑 같이 살라고? 내가 저 애 대신 살림하고, 돌도 안된 아기 봐줄 일 있니? 난 지금처럼 혼자 사는 게 더 좋다. 돌려서 말할 줄 모르는 그는, 그녀를 꼭 닮았다. 그녀는 아기를 좋아한다며, 오랜 시간 남의 아기들을 돌보는 일을 했지만, 정작 자신의 첫 손자가 남의 손에 길러지는 것을 못 본 체했다. 차로 5분 거리에 사는 막내아들의 딸이 60km 떨어진 외할머니에게 맡겨질지언정, 그녀 손으로 키워주는 일은 없었다.


자신의 제안을 그녀가 덥석 받아들일 거라고 믿었던 그의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고, 꿈에 그리던 전원생활은 무산되었다. 그의 가족은 예전처럼 아파트에서 살았고, 그녀 역시 여전히 그 집에서 혼자 살았다. 그는 그녀에게 함께 살자고 했던 사실조차 까맣게 잊었다.


세월이 흘러, 세상살이가 어떤 건지 조금씩 알게 될 즈음, 정신이 번쩍 든 사람은 그의 아내였다, 그때 그녀가 진짜 같이 살겠다고 했으면 어쩔 뻔했어…, 생각만 해도 머리카락이 쭈뼛 설 일이다.






그녀는 소파에 대한 불만을 여러 차례 큰아들에게 말했다. 큰아들은 정이 깊고 이해심 많은 사람이었지만, 한 끼 식사를 하기 위해 멀리 가는 것, 길이 막히는 주말에 교외로 이동하는 것, 특별히 살 것도 없이 쇼핑하는 것 등 많은 일들을 귀찮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소파를 바꾸고 싶다는 그녀의 부탁을, 이미 소파가 있다는 이유로 불필요하다고 여기며, 두 해 넘도록 흘려들었다.


큰아들의 아내가 손아랫동서에게 부탁했다, 동서, 언제 어머니 모시고 소파 사러 가줄 수 있어? 큰며느리는 어머니의 마음을 무시해 버리는 남편이 못마땅했지만, 가구를 고르거나 집을 꾸미는 데는 영 소질이 없는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그들 부부의 집에는 소파가 없었다. 결혼한 지 30년이 넘었지만, 그 집 거실에는 딱딱한 나무 의자 한두 개가 있을 뿐이다. 그마저도 식탁의자에서 남은 것을 거실로 옮긴 것이다. 명절이면 10명이 넘는 식구들이 앉을자리를 찾아 하이에나처럼 서성이다가, 결국 바닥에 널브러지거나 식탁 주변에 빽빽이 둘러앉는다. 그들은 소파의 필요성을 애초에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손위 동서는 허리가 좋지 않았고, 소파에 푹 꺼지듯 앉아 쉬는 시간을 가지는 법이 없었다. 눈 뜨는 순간부터 감을 때까지 하루 종일 부지런히 뛰어다니는 사람, 몸을 의자에 기대는 일이란 그녀의 일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손아랫동서는 알겠다고 하고, 남편인 그녀의 막내아들에게 그 부탁을 전했다. 그녀가 오랫동안 새 소파를 원하는지도 몰랐던 막내아들은 하루 시간을 내어 그의 아내와 함께 그녀를 모시고 이케아에 가기로 했다. 출발하면서 그가 전화를 걸었지만, 늘 그렇듯 그녀는 받지를 않았다.


집에 도착하자 그녀는 말했다, 아주 내가 너희들 기다리다가 숨이 넘어가는 줄 알았다. 그녀의 첫마디는 사람을 김새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막내아들은 작게 한숨을 쉰다, 왜 전화를 안 받으세요, 몇 번이나 했는데요. 그녀가 대꾸한다, 네 형이 이상한 싸구려 핸드폰으로 바꿔주었으니 그렇지. 전화기가 벨소리가 안나. 그가 그녀의 핸드폰을 집어 들고 핸드폰을 살핀다, 이 전화기가 제 것보다 좋아요, 그리고 지금 무음으로 되어 있어서 소리가 안 나는 거예요, 핸드폰은 아무 문제없어요. 그녀는 하던 말을 이어간다, 네 형은 내 부탁이라면 뭐든 귀찮아해. 난 매일 밤, 내일 아침에 눈 뜨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당장이라도 하나님한테 가고 싶다. 막내아들은 이제 그 말이 무감각하다. 그의 아내는 두 사람의 대화에 끼고 싶지 않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케아로 가는 차 안에서 그의 아내가 그녀에게 물었다, 어머니, 이케아 가보신 적 있으세요? 그녀가 대답했다, 내가 거길 무슨 수로 가겠니. 한 번도 못 가봤다. 그녀를 데리고 이케아나 코스트코, 아웃렛 같은 곳에 쇼핑하러 가 줄만한 자식은 아무도 없었다. 말 그대로, 아들 같은 아들 둘에 아들보다 더한 딸 하나. 그녀는 한국에 이케아가 들어온 지 10년이 훌쩍 넘은 지금에서야, 아흔둘의 나이에, 처음으로 그곳에 가보게 되는 것이다.





그녀는 처음 본 이케아의 규모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살림을 하는 여자라면 이케아를 싫어할 이유가 없다. 더군다나 처음 와본 사람이라면, 그곳이 딴 세상처럼 느껴지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아이쇼핑을 싫어하는 그녀의 막내아들은, 그녀에게 여유롭게 구경할 시간을 주려 하지 않았다, 소파부터 보러 가자. 그의 아내가 조용히 말했다, 처음 오셨으니 천천히 구경하시게 해. 그는 걸음을 재촉했다, 여기를 다 둘러보면 엄마가 너무 힘드시지. 그는 그녀가 하루에 만 보 이상 걷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소파 코너에 가기 위해선 매장의 긴 동선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지팡이를 짚고 막내아들의 뒤를 따라 걸으며 연신 두리번거렸다, 세상에, 세상에…. 그의 아내는 그녀에게 말했다, 보시다가 필요한 게 있으시면 말씀하세요. 그녀는 물건을 만지작거리며 눈을 반짝였다, 이거 참 좋구나. 이건 어디에 쓰는 거니?


소파 코너에 도착하자, 그녀와 막내아들은 모든 소파에 차례로 앉아 꼼꼼히 살폈다. 딱딱한 소파가 불편하다고 했던 그녀가 말했다, 난 폭신한 소파는 싫다. 막내아들은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었다, 딱딱한 게 싫어서 바꾸자고 하셨잖아요. 폭신한 것도 싫으면, 대체 뭘 사시겠다는 거예요? 그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정답도 아닌 것 같았다.


우여곡절 끝에, 그녀와 막내아들이 모두 만족할 만한 소파를 골랐다. 이곳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그는, 쇼핑을 마치자마자 밖에 나가 다른 걸 먹자고 했다. 아내가 나섰다, 이케아 음식이 특별하진 않지만, 나름 별미잖아. 어머님은 처음 오셨는데 여기서 드셔보시게 하자. 그는 고개를 돌려 그녀에게 물었다, 어머니, 여기 식당에서 드시겠어요, 아니면 나가서 드실래요? 그녀는 인상을 찌푸렸다, 도대체 지금 몇 시니, 배가 너무 고프다. 그가 배고픔을 잘 못 참는 것도 그녀를 닮았나 보다.




그들은 식당으로 이동했다. 그의 아내는 앱으로 네 가지 메뉴를 골랐다. 그녀를 위해 캐모마일 차, 남편을 위한 콜라, 자신을 위한 커피도 함께 주문했다. 그녀는 처음 보는 음식들을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그의 아내는 이케아에 오면 늘 먹는 미트볼을 먹었다. 그레이비소스를 얹은 미트볼, 매쉬드 포테이토, 링곤베리 잼과 익힌 완두콩—그 조화가 그의 아내는 마음에 들었다. 가격표를 본 그녀는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가격도 싸고, 맛도 괜찮구나. 무언가를 만족스러워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는 건 오랜만이었다.


소파까지 골랐으니 이제 물건을 찾아 집으로 가기만 하면 된다. 별거 안 한 것 같은데, 어느덧 세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그런데 그 소파가, 이 매장에 없다. 직원이 전산을 확인했다, 다른 매장에는 다 있는데요, 여긴 아직 입고가 안 됐네요. 오늘 그녀의 집으로 소파를 가져가 조립까지 끝내려고 했던 막내아들은 짜증스러웠다, 괜히 이곳으로 왔네. 이곳은 문을 연 지 겨우 두 달 된, 다른 매장보다 규모가 작은 곳이었다. 어머니댁과 가까워 막내아들도 처음으로 찾은 곳이다. 결국 그는 또 하루를 내어 그녀의 집에 가야 한다.


막내아들은 직원에게 온라인으로 소파를 주문하고 배송 날짜를 확인했다. 소파는 사지 못했지만, 간이 테이블과 스테인리스 볼, 바디 스펀지 같은 자잘한 물건들을 차에 실었다. 그녀의 집에 도착해 짐을 내리자 그녀가 말했다, 오늘 참 좋았다. 고맙다. 뜻밖의 깔끔한 인사였다.


막내아들의 아내는 그녀의 집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오래된 집답게 아직 베란다가 남아 있다. 그 한쪽엔 너무 웃자라 이제는 볼품 없어진 군자란 두 그루가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거실의 곳곳에는 소설책과 성경, 일본어·영어 교재들이 정리되지 않은 채 쌓여있다. 그녀는 책을 좋아하고, 늦은 나이에도 쉬지 않고 공부하는 사람이다.


더 이상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두 개의 방은 뿌연 먼지 속에 고요히 잠들어 있다. 화장실 하나는 문을 연 지 열 다섯 해는 족히 지나 보였다. 혼자 사용하는 그녀의 주방에는 열두 식구가 충분히 쓰고도 남을 무거운 식기들이, 이제는 쓰임을 잃은 채 여기저기 숨어 있다.


이곳에서 한때 다섯 식구가 함께 살았다. 세 자녀는 결혼해 각자의 길을 찾아갔고, 남편은 오래전에 세상을 떠났다. 오후 네 시가 채 되지 않았지만, 집안은 벌써 어두워지고 있었다. 막내아들과 그의 아내가 돌아가고 나면, 그녀는 다시 혼자가 되어 오래된 이 집을 지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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