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취업도전기 3
소고기 사태와 완숙 토마토를 넣고 푹 끓인 스튜 냄새가 주방 가득 퍼진다. 셀러리와 레드빈, 양송이를 듬뿍 넣은 비프스튜가 오늘의 메뉴이다. 부드럽게 익은 사태는 숟가락으로도 쉽게 잘렸고, 토마토의 산뜻한 향과 고기의 깊은 향이 어우러져 식욕을 돋운다. 네 식구 중 세 사람은 좋아하지만, 둘째 딸만은 그다지 반기지 않는 음식이다. 그래서 오늘은 평소에는 넣지 않는 옥수수를 한 움큼 집어넣었다. 톡톡 터지는 단맛은 딸아이 입맛에도 맞을 것이다.
조금만 늦게 가면 빵이 동나는, 이 동네에서 손꼽히는 베이커리에서 사 온 크렌베리 호두식빵을 노릇하게 구웠다. 은은한 향의 얼그레이잼과 부드러운 카야잼도 식탁 위에 올렸다. 며칠째 손이 가지 않던 골드 키위는 올리브유와 애플사이다비니거를 섞어 드레싱으로 만들어, 먹기 좋게 잘라 놓은 로메인 위에 뿌렸다. 에어컨을 켜 두어 시원했기에, 따뜻한 라테를 내렸다. 시험기간이라 일찍 하교한 딸아이와 남편과 함께 늦은 아침을 먹었다.
식사를 마친 뒤에도 식탁을 떠나지 않고 딸아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딸아이는 노래를 즐겨 듣는다. 요즘에는 가요 가사에 대해 자주 말한다. '최선을 다한 넌 받아들이겠지만, 서툴렀던 나는 아직도 기적을 꿈꾼다' 가사를 읊조리며, 이 부분 너무 슬프지 않아? 하고 묻는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정말 슬프다'라고 답한다, 무엇이든 최선을 다한 사람은 아쉬움이 덜한 거야.
또 다른 노래 ‘사랑한 사람이여 더 이상 못 보아도, 사실 그대 있음으로 힘겨운 날들을 견뎌왔음에 감사하오' 이 구절을 읽는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게 너무 놀랍지 않아? 하고 묻는다. 나는 ‘정말 놀랍다’고 답한 뒤 덧붙인다, 아마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야 나오는 감정이지 않을까.
잠시 후, 남편과 딸아이는 병원 진료를 위해 집을 나섰다. 나는 운동화 한 켤레를 들고 화장실로 갔다. 안 쓰는 칫솔에 비누를 묻혀 신발을 박박 문지른 뒤, 물에 담가 놓았다. 간단하게 옷을 갈아입고 라피아 소재의 베이지색 챙모자를 썼다. 단지 내 작은 도서관에서 상호대차로 신청해 둔 『밤은 내가 가질게』를 대여하고, 길 건너 세탁소에서 운동화와 바지를 찾으려고 한다. 그리고 편의점에 들러 딸아이가 부탁한 ‘빵이야기’ 시리즈가 있는지도 살펴볼 생각이었다.
책과 운동화, 바지를 챙긴 뒤 편의점에 들렀지만, 사장님은 그 상품을 알지 못했다. 바로 검색을 해보시더니, 새로 나온 건가 봐요. 주문해 볼게요, 하셨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겨우 30여 분 밖에 있었을 뿐인데 온몸이 땀으로 끈적끈적했다.
집으로 와서 담가놓았던 운동화를 몇 번 더 문지르고 헹군 뒤, 베란다 창가 앞에 가지런히 세워두었다. 샤워를 마치자 기분이 한결 상쾌해졌다.
에어컨을 켜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준비한 후, 비장한 마음으로 노트북을 열었다. 커피를 한 모금 쭈욱 들이켰다. 오늘은 도서관 직원 채용 발표가 나는 날이었다. 5초면 확인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괜히 바쁜 척 시간을 미뤘고, 혼자 있는 시간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오후 3시가 되어서야 도서관의 홈페이지를 열었다.
화면에 떠 있는 합격자 번호는 7번, 내 지원번호는 17번이었다. 순간, 합격한 줄 알았다. 사실 예상했던 결과라 크게 실망하지는 않았다. 아니, 어쩌면 조금은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나도 모르게 그 도서관 책장 사이를 걷고, 누군가의 질문에 대답하며, 친절한 미소로 인사를 나누는 내 모습을 마음속에 그리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딸아이의 등교시간과 겹쳐 정신없는 오전을 보내지 않아도 된다. 퇴근 후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와 저녁 준비를 하느라 부산을 떨지 않아도 된다. 생각해 보면, 불합격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어떤 결과든 내게 설레는 시간을 주었고, 그 시간은 나 자신을 조금 더 돌아보게 만들었다. 나에게 부족한 부분은 무엇인지, 앞으로 내가 나아갈 방향은 어디인지 고민해 보는 기회가 되었다.
이제, 오늘 저녁으로 무엇을 먹을지 생각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