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취업 도전기 2
분주한 아침이다. 샤워를 하려다 그냥 앞머리만 감았다. 앞머리만 감는 건 딸들에게 배운 것이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그게 뭐야, 그냥 다 감고 말지, 했었는데 이렇게 바쁜 날, 요긴하게 쓰일 줄이야. 의심이 간다면 한 번쯤 해보시라. 은근히 맘에 들지도 모른다.
학교에 가야 하는 딸아이를 깨우고 욕실에 들어간다. 매일 샤워하는 딸이 오늘은 머리만 감는단다. 우리 딸도 시간이 촉박한가 보다. 딸이 머리를 감는 동안, 나는 앞머리를 정성껏 말린다. 오늘은 앞머리가 중요하다. 조금이라도 어려 보일 수 있도록 가지런히 내리고, 뒷머리는 묶을 것이다.
딸의 머리 말리는 걸 도와주고 화장을 한다. 화사하게 보일 연한 파스텔톤 민트색 원피스를 입고, 3cm 굽의 카멜 구두를 꺼낸다. 같은 색의 클러치를 들 예정이다. 이 구두는 신을 때마다, 오늘만 신고 버려야지, 하면서도 몇 년째 신고 있는, 애정이 묻은 신발이다. 한 대 맞으면 정강이가 나갈 것 같은 뾰족한 앞코는 이제 제법 닳았다. 오늘 신고 나면, 진짜 버릴 것이다.
버스를 타고 가려고 했는데, 남편이 도서관까지 데려다주고 볼일을 보러 간다고 해주어 여유가 생겼다. 아침을 먹지 않는 딸을 학교에 보내고, 남편과 나는 간단히 누룽지를 먹고 출발했다.
10시 15분까지 제1문화실로 입실해 주시기 바랍니다, 어제 이 메시지를 받기까지 도서관에 몇 차례 전화를 했었다. 이력서를 받은 직원은, 결격 사유가 없는 한 모든 분이 면접 대상입니다, 라고 했었다. 5시 30분이 넘도록 연락이 없어 불안했다. 혹시 내가 모르는 결격 사유가 있는 걸까. 자동차 과태료를 너무 많이 냈나. 아니지 그건 남편 명의니 내 잘못인 줄 모른다. 다섯 번째 시도 끝에 통화가 됐다, 지원자가 너무 많아서 시간이 걸립니다. 곧 연락이 갈 거예요.
10시에 도착했지만, 너무 일찍 가는 건 절실해 보일 것 같다. 1층 사서 코너 앞 책장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던 『100일 아침 습관의 기적』을 꺼내, 바로 옆에 있는 스툴에 앉았다. 원래 자기 계발서를 즐겨 읽는 편은 아닌데, 어쩐지 그 책이 내 손에 들어왔다. 작가는 어린 동생과 과수원 일을 마치고 돌아올 엄마를 밤늦게까지 기다린다. 엄마는 새참으로 나온 단팥빵을 먹지 않고 가져간 손수건에 고이 싸 온다. 두 아이는 엄마가 떼어주는 부드럽고 달콤한 빵을 넙죽넙죽 받아먹는다. 그것이 엄마의 고단한 노동의 대가이자 희생이었음을, 작가는 커서야 알게 된다. 눈물이 흘러 아이라인이 번질까 봐, 황급히 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 기회에 마저 읽어봐야겠다.
지하 1층으로 내려가는 넓은 계단 옆에는 신발을 벗고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나이가 들어 보이는 남성 한 분이 그곳에서 휴대폰으로 고스톱을 치고 계셨다. 이틀 전 이력서를 내러 왔을 때도 같은 자리에서 같은 모습으로 계셨던 분이다. 매일 아침 부지런히 도서관에 오시는 모양이다. 신문이나 책을 읽으신다면 더 좋겠지만, 그분은 나름의 방식으로 도서관을 즐기고 계신다.
제1문화실에 들어서자 공무원 시험장 같은 풍경에 순간 뒷걸음질 쳐진다. 세 줄로 나뉜 책상마다 사람들이 빼곡히 앉아 있었다. 직원이 나눠준 면접전형평정표 3장과 응시분야선호도 1장에 서명하고 체크했다. 한자로 이름을 적고 잠시 머뭇거렸다. 잠깐, 이거 맞게 적은 거지. 너무 오랜만에 적어보는 한자로 된 내 이름이 낯설다. 주중 근무란에는 '1 지망'이라고 적고, 주말 근무란에서 '불가'라고 적은 것을 직원에게 제출했다.
많은 사람들이 조용히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이렇게 고요한 공간에 있으면 생각나는 게 있다. 예전에 딸아이가 물었었다, 엄마, 이렇게 조용한 곳에 있으면 소리 지르고 싶지 않아? 황당한 그 질문에 나는 대답했다, 아니 전혀. 그런 생각은 해 본 적도 없는데. 그런데 그날 이후부터다. 이런 갑갑할 만큼 적막한 공간에 있게 될 때면, 정말로 소리를 지르고 싶어지게 된 것이. 다들 무슨 생각하고 계세요? 큰 소리로 묻고 싶다.
주변을 둘러보니, 사람들은 계속해서 들어오고 나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대략 40여 명쯤 되어 보였고, 그중 남성은 세 명뿐이었다. 20~30대 정도로 보이는 사람도 있었지만, 머리가 하얗게 센 분도 눈에 띄었다. 이름이 호명되면 대기석으로 이동했다가, 다시 직원의 안내를 받아 면접장으로 들어간다. 마치 대기업 면접장을 연상케했다. 채용 인원은 단 세 명. 시급 약 12,000원, 계약 기간은 6개월. 이 조건을 위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드디어 내 이름이 불렸다. 나를 포함해 세 명이 한쪽에 쪼르르 앉았다. 왼쪽에 앉은 여성은 종이를 들고 암기하듯 중얼중얼하고 있었다. 멍하니 사람들을 구경하던 나는 아차 싶었다. 자기소개서에 내가 뭘 썼더라, 어떤 질문을 받을까, 이내 마음속으로 대비해 봤다. ‘최근 읽은 책은?’, 어제 독서모임에서 읽은 『글쓰기의 최전선』이 떠올랐다. ‘왜 도서관에서 일하고 싶으신가요?’ , 나는 왜 이곳에 왔나. 왜 도서관에서 일하고 싶은가. 정말 일이 하고 싶은 걸까.
면접장에 들어서니, 세 명의 면접관이 앉아 있었다. 우리는 그들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 긴장감 때문인지, 어색한 공기가 흐르면서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가운데에는 나이가 지긋한 남성 면접관이 있었고, 그의 양옆에는 남성과 여성이 각각 자리하고 있었다. 가운데 남성은 여유롭고 익숙한 모습이었고, 그의 오른편 여성 면접관은 날카로운 질문을 던질 것 같았다. 왼편의 남성은 다정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는데, 그 미소를 머금은 채, 그는 첫 질문을 건넸다, 책을 좋아하신다고 하셨는데요, 최근에 읽은 책이 무엇인가요? 순간, 그가 여성이었기에 살짝 당황스러웠지만, 곧바로 대답했다, 최근에 읽은 책은 『글쓰기의 최전선』이고, 지금은 『내 여자의 열매』를 읽고 있습니다. 질문은 몇 가지 더 이어졌다. 가운데 앉은 남성 면접관이 말했다, 마지막으로 각오 한마디씩 부탁드립니다.
내 왼쪽에 앉은, 성신여대생이라고 소개한 여성은 똑 부러진 목소리로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자신이 이곳에 얼마나 적합한 사람인지 설명하며, 꼭 뽑아달라고, 잘 해낼 것이라고 했다. 나는 대답했다, 어디서든 잘 적응하는 사람입니다. 이곳에서도 성실히, 그리고 즐겁게 일하고 싶습니다. 나의 오른쪽에 앉은 여성 역시 당찬 포부를 내비쳤다. 그의 말이 끝날 즈음, 나는 묘하게 이 상황이 불편했다. 그렇게 15분 남짓한 면접이 끝났다.
언덕을 걸어 내려온다. 비 내리던 며칠 전과 달리, 오늘 오거리엔 사람들로 가득하다. 모두들 바빠 보인다. 오늘은 나도 그들 중 하나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래도, 잘 다녀왔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언덕을 올랐고, 무사히 내려왔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