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적 유전자」라는 책은 없다니까요.”
도서관과는 어울리지 않게 슬리퍼를 신은, 덩치 큰 젊은 남자. 그의 미간에는 깊게 패인 두 줄이 선명했다. CC 크림을 바르면 그 골에 끼어 오래도록 빠지지 않을 깊이였다.
둥글게 굽은 어깨의 어르신이 들릴 듯 말 듯한 소리로 그에게 답했다.
“아니요, 내가 작년에 이곳에서 봤어요.”
어르신의 머리 위에는 새하얀 눈이 소복이 내려앉아 있었다. 다시 한 번 젊은 남자의 한숨 소리가 문헌정보실을 가득 울렸다. 그리고 제대로 들으라는 듯 타다닥, 거칠게 키보드를 두드렸다.
“없.습.니.다.”
그가 살짝 이를 앙다문 듯도 했다.
바로 옆 검색대에서 독서모임에 필요한 책을 찾던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이기적 유전자」를 검색창에 넣었다. 있었다. 어르신이 찾던 건 「이지적 유전자」가 아니라, 바로 「이기적 유전자」였다. 잠시 고민을 했지만, 곧 수업이 시작될 시간이었다. 나는 자리를 떴다. 수업에 늦으면 안 되니까. 돌아서면서 두 사람 사이에 펼쳐져 있는 A4 용지를 슬쩍 보았다. 연필로 적은 열 권이 채 안 되는 책 제목이 적혀 있었고, 그 중간쯤에 「이지적 유전자」인지 「이기적 유전자」인지가 눈에 들어왔다.
아빠는 카톡 중독자다. 오전 대부분의 시간을 카톡 주고받는 데 보낸다. 너무 화려해서 눈이 시릴 지경인 핑크색 꽃 배경에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라는 문구가 담긴 사진이나 차림새와 달리 활짝 웃고 있는 허수아비 위에 ‘시원해진 아침 공기에서 어느덧 가을이 느껴집니다’라고 글귀가 얹혀 있는 사진이 아침마다 날아온다. 한여름엔 상큼한 망고 빙수, 한글날에는 어진 미소를 짓고 있는 세종대왕, 김장철엔 속이 꽉 찬 배추도 빠지지 않는다. 부부의 날, 농업인의 날, 올해가 며칠이 남았는지 나는 아빠의 카톡으로 알게 된다. 그래서 좋으냐고? 전혀 아니다.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아빠의 모습은 풀을 뜯으려고 긴 목을 구부린 기린 같다. 아빠는 몇 달에 한 번씩 카톡이 아닌 문자를 보낼 일이 생긴다. 초등학교 동창회 회장이신데, 회원 중에 오직 문자로만 소통하는 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회원들 경조사 소식이나 정기모임 안내, 모임 결산 같은 걸 문자로 보내려 하면 번번이 문제가 생긴다. 정확히 무슨 문제인지 나로선 알 수 없다.
전화기 너머 아빠의 목소리에는 옅은 자학과 민망함이 묻어난다. “현희야, 또 문자가 안 보내진다.” 나는 별일 아니라는 듯 대답한다. “오랜만에 하시면 그럴 수 있어요.” 이제 할 수 있겠다며 전화를 끊은 아빠는 5분 뒤 다시 전화하신다. 다시 한번 설명을 해드리고, 옆에 계신 엄마(엄마는 본인의 휴대폰으로는 문자 보내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에게도 보험 삼아 알려드린다. 어떤 날은 잘 보냈다고 연락이 오고, 어떤 날은 소식이 없다. 다음 날 들어보면 두 분이 늦은 밤까지 낑낑거리다가 전화하는 것도 잊었다고 한다. 나는 그저 “고생하셨다.”라고 말한다.
부모님 앞에서 나는 뭐든 척척해내는 딸이다. 눈썰미도 좋고, 손도 빠르고, 소리도 잘 듣고, 예약도 주문도 거뜬하다. 하지만 딸들 앞에서의 나는, 나의 부모님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식당에 앉아 키오스트로 주문을 하려고 부지런히 스크롤하며 메뉴를 찾고 있으면, 어느새 딸아이가 “여기 있네.”하며 장바구니에 담는다. 계산을 하려고 카드를 꽂으려고 할 때도, 길찾기앱을 이용해 장소를 찾을 때도 번개같은 딸들의 눈과 손을 따라잡을 수가 없다. 늘 주도하고 도와주던 자리에서 어느새 한발 늦는 사람이 되어 가고있다. 나도 이런 날이 올 거란 걸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교실에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사서세요? 아니면 자료 정리원이신가요? 바쁘신가 봐요. 어르신에게 그렇게 짜증을 내다니… 제가 대신 도와드릴까요?’
그리고 한마디 덧붙였다.
‘너는 영원히 젊은 것 같으세요?’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말 내가 바빴을까? 솔직히 말하면, 10분쯤은 시간이 있었다. 어르신을 젊은 남자의 불친절 속에서 구해드리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