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나를 쓰다

갑분시

갑자기 분위기 시 쓰기 1

by 글 쓰는 여자



불안함이 없진 않았다. 이유는 강사님이 시인이기 때문이다. 수업의 첫 번째 과제는 ‘따뜻함’을 주제로 시를 쓰는 것이었다. 내가 시를 언제 읽었던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수십 년 전에 읽었던, 단 몇 편의 시, 그것도 일부 구절 만이 희미하게 떠오를 뿐이다.


늘 비련의 여주인공이 등장하던 순정 만화에 빠져 있던 시절, 만화책 속에서 처음 만난 이형기시인의 〈낙화〉를 나는 한동안 외우고 다녔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도 내가 죽는 날을 미리 알고 싶다고 생각하며, 실감도 나지 않는 죽음을 앞에 두고 쓸쓸해하던 때가 있었으니, 고작 열몇 살 때였다.


친구의 지인이라고 들어서 더 환호했던 원태연 시인의 「넌 가끔가다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가다 딴생각을 해」라는 시구는 또 얼마나 마음에 와닿았던지.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에서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라는 구절을 읽고는 내 가슴도 덩달아 뜨거워졌었다.


생각나는 시가 고작 이 정도였다. 평소에도 시를 거의 읽지 않으니, 갑작스러운 시 과제는 꽤나 당혹스러웠다. ‘따뜻함'이라니…… 감성이 메말라 버린 걸까, 도무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머릿속 한구석에 ‘따뜻함’이라는 빈 방 하나를 만들어 두었다.


며칠이 지나서야 한 장의 사진이 떠올랐다. 오래전, 어디선가 보았던 사진이 마음에 들어 내 인스타그램에 올린 적이 있었다. 스크롤을 내려 찾아보니 벌써 7년 전 피드였다. 사진 밑에는 ‘우리 딸들이 이렇게만 자란다면 좋겠다’라고 적혀 있고, 해시태그에는 ‘#길고양이를사랑해주세요’ ‘#길고양이도생명입니다’ 가 붙여 있었다. 아, 따뜻하다. 그 사진을 바라보며 시를 써 보기로 했다.








거짓말



빗속을 뚫고 달린다.

등 뒤로 필통이 달그락거리고,

발끝에 닿는 빗물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굵은 빗줄기가 머리카락을 적시며 얼굴을 감싸고,

쏴아, 쏟아지는 빗소리에 귀가 잠긴다.


너에게 작은 지붕을 씌워 준다.

그 고운 털은 젖지 않고,

가녀린 울음은 잠잠해진다.


엄마의 목소리는 천둥처럼 울린다.

비밀은 숨기는 것,

젖는 것쯤은 아무렇지 않은 일.

마음 한편에 미소가 번진다.




수강생들은 수업 전에 단톡방에 과제를 올린다. 수업 당일, 강사님은 수강생들의 글을 스크린에 띄우고 각자 낭독하게 한다. 나의 시 낭송이 끝났을 때, 강사님을 비롯한 대부분의 수강생들은 내 시를 이해하지 못한 듯, 질문이 이어졌다. 나는 난감했다. 나의 답변은 마치 변명처럼 느껴졌다. '이런 시라면 망한 건가' 대답하는 동안 내 어깨는 점점 늘어지고 있었다.


나는 나의 첫 시가 마음에 들었다. 어린 소년이 엄마가 챙겨준 우산은 길고양이에게 씌워주고 홀로 빗속을 뚫고 뛰어가는 모습이 그려졌다. 비가 퍼붓고, 책가방이 흔들려 필통에서는 요란한 소리가 나고, 온몸이 흠뻑 젖었지만 행복에 겨운 소년, 소중한 마음을 감싸 안은 채, 우산을 잃어버린 줄 알고 혼내는 엄마 앞에서도 미소가 번진다.


너무 이해하기 쉬운 글은 멋지지 않아, 나 자신에게 속삭이며 소년의 마음이 되어 미소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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