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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니 Jul 31. 2024

한라산, 말하다. 나에게

오르면서 듣다


'여름에는 역시 산 깊은 계곡이다'

이 말은 어린이가 아니라 어른이 자주 한다. 어린 시절에는 어른들의 흔한 말이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 이제 어른이 된 모양이다. 저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다.


‘계곡이 좋다'는 의미를 정작 이해하지만 나는 '산이 아니라 바다가 더 좋다.' 심지어, 바다보다 더 좋은 물놀이 공간이 있다. 바로 깨끗한 수영장이다.


나는 산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숲은 좋은데. 산도 오를 때는 좋다. 내려올 때가 문제다. 오를 때는 땀도 나고 목표가 있어 즐겁다. 반면, 산에서 내려가는 시간동안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발을 잘못 디딜까 조심해야 한다. 한 걸음 한 걸음에 신경 쓰며 걸어야 한다. 신경 써도 실수가 가끔 있다. 무엇보다 산을 내려오다 보면 항상 궁금해진다.


'아직 멀었나? 한참 온 것 같은데. 대체 언제까지 내려가야 하지?' 빨리 끝내고 싶어서다. 이런 내 심정을 '산'은 알아줄 리 없다. '산'은 거기에 그냥 있을 뿐, 아무 말도 나에게 건네지 않는다.


내가 걷고 있는 그 지점이 어디인지, 정확히 가고 있는지, 갈 길이 얼마나 더 남았는지, 좀체 보여주지 않는다. 마냥 똑같은 푸르름만 보여준다. 길을 보여주긴 한다. 사람들의 발자취를 온전히 품었다가 그 흔적을 보여준다.


그게 바로 ‘산에 난 길’이다. ‘길’ 따라 빼곡한 나무 그늘도 만들어 준다. ‘산길’ 따라 뚜벅뚜벅 걸어가는 여행객을 시원하게 도와준다. 산이 베풀어 주는 그늘은 태양의 흐름을 가린다. 시간의 흐름이 산속에 숨는다. 등과 허리에 땀이 주르륵 흘렀건만 여행자는 감춰진 시간을 측량하기 어렵다.




어떤 일을 하던 나는 직관적으로 느끼고, 이해하는 게 재밌다. 일의 진행 과정과 정황 파악이 잘 되면 안심이 된다. 머릿속 조종대에서 경우의 수를 예측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


이런 기제들이 내가 산을 내려오는 시간에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그래, 내게는 훤히 보이는 바다다.

산보다 바다!




상황

훤히 보이는 쉬운 곳, 깨끗한 바다에 가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학원 개원하고 7~8개월 지났다. 간판 올리고 문은 열었는데, 바로 코로나가 깊숙이 찾아왔다. 전 세계로 확장하는 코로나의 위력에 학원 성장이 밀렸다. 이익 창출이 비즈니스의 목적인데 몇 달째 문만 열고 닫았다.


새로 시작한 학원 2관 이름 앞에 손실이 차곡히 쌓여갔다. 학원은 쇼핑몰처럼 상가가 밀접한 지역에 위치해 있었다. 학원 주변 식당과 상가들이 속속 문을 닫았다. 임대문의 전단지 몇 장만 달랑달랑 그곳에 붙어 있었다. 나는 사업이 처음이었다. 동업자 남동생 입장은 나와 달랐다. 동생은 동탄 1관에 이어 2관을 연 것인데, 이번에는 나와 함께 했다.


1 관도 동업자가 있었고 잘 성장했다. 규모가 커지자 동거동락한 동업자와 마찰이 생기고 뜻이 달라졌다. 서로의 차이를 맞춰가려 노력하기보다 분립하기로 합의했다.


대학 동창이었던 동업자는 고3 학생들과 다른 학생들을 데리고 나갔다. 그 친구는 근처에서 새 학원 장소를 찾았다. 그곳에 다른 이름의 학원 간판을 달았다. 그 뒤로 2년 정도 시간을 보낸 동생은 나에게 전화를 했다.


나와 동생은 동생의 아내가 생긴 이후로는 서로 사업이나 커리어에 대해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차츰 다른 이야기도 줄었다. 간간히 안부나 묻는 정도였다. 그렇게 지내고 있는 와중에 걸려온 전화였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걸 그때 눈치챘어야 했는데. 나는 순진하게도 돈 잘 버는 동생이 누나한테 곶감이라도 떨어트려 주나 싶었다. 벌린 입이 무안해졌다. 동생은 하소연을 시작했다. 같은 상황에서 나였다면,


‘그게 뭐? 사업하다 갈라서기도 하고, 잘 갈라섰으면 된 거지. 그만큼 잘 동역해 온 게 오히려 이상한 거 아냐? 그 정도면 성공 케이스지. 갈등이 없는 동업자가 어디 있겠어? 갈등은 자연스러운 거고, 합의가 안되면 헤어져야지. 서로 얼굴 다시 볼 수 있음, 되는 거고. 왜? 뭐가 문제야?‘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동생은 다른 마음을 털어놨다. 내가 듣기에는 생뚱맞은 생각인데 그걸 계획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내 생각인데, 동탄 1 도시에 있는 지금 학원을 다른 사람에게 아예 넘기려고. 최근에 동탄 2 도시가 한창 뜨고 있거든. 어차피 옮겨야 할 판인 거지. 동탄 2에서 다시 새롭게 시작하려고.“


“뭐? 동업자랑 잘 헤어졌고, 각자 이익을 잘 남기고 있는데. 왜 네가 옮겨? 옮기려면 니 동업자 학원이나 옮기라고 해. 새롭게 시작한다는 의미가 뭔지 알아? 브랜드도 없는 학원인데. 그냥 완전 제로 상태에서 다시 시작이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 무조건 버텨!“

“…“

동생은 이유를 찾으며 머뭇거리기만 했다.


‘왜 그게 너한테는 힘들어? 헤어지면 헤어진 거지? 나라면 경쟁 상대가 있어서 더 오기가 생길 거야. 정말 이럴 때마다 같은 형제지간인데 이렇게 다를 수 있나 싶어. 하지만 네가 말하는 모양새 봐서는 말한 대로 일을 진행할 거 같고… 에고~ ‘ 이런 나의 마음의 소리대신 빠르게 머리를 써서 아이디어를 주었다.




“네가 에너지가 남아 돌아서 그러는 거 같아. 그럴 봐엔 에너지를 분산해. 동탄 1 학원 이익이 나쁘지 않으니까 그건 그거대로 유지하고. 네가 가고 싶다는 지역에서 2관을 새로 오픈해. 매 달 이익금이 들어오는 상황에서 ‘2관’을 확장하는 거랑, 있던 곳을 완전히 치워 버리고 바닥에서 ‘새 학원’을 세워가는 건 달라. 현금이 돌아야 해.“

“그래? 그럼 2관은 누가 운영해? 사람 구하기가 서울만큼 쉽지 않아.”

“아 몰라. 내 생각은 이거야. 이런 상황에 대한 내 판단은 바뀌지 않을 거야. 내 조언은 여기까지. 나머지는 네 결정이야. “


동생은 결정했다. 나를 2관 대표로 끌어들이기로. 우리가 결정한 부분은 여기까지다. 세계가 코로나로 앓이를 하는 부분은 우리 영역 밖이었다. 속이 타고 걱정이 심해져서 행복하지 않았다.




선택

이런 상황에는 쉬운 바다가 아니라 ’ 산’이 적합니다. 아이러니지만 마음이 힘들 때 몸을 더 힘들게 하면 마음이 풀린다. 현실의 난관보다 더 강도 높은 어려움을 체험할 수 있는 환경으로 가야 한다. 자원하여 새로운 어려움 속으로 빠져들어야 한다. 한 발짝 한 발짝 발 딛는데 신경을 곧두 세우는 환경이면 오히려 좋다. 그 순간에만 집중하게 된다. 산을 타고 그 현장에서만 즐길 수 있는 풍경을 즐기면 된다. 오직 눈앞에 놓인 정상만 생각해야 한다.


“그러니까, 제일 높은 산으로 가자.

한 번도 올라본 적이 없어? 그래서 더욱 오르자.

사업은 해봤어? 이번에는 한라산이어야 해.“


제주의 상징 ‘말’



오름

무작정 비행기에 올랐다. 가장 높은 산이라는 권위가 나를 위축시켰다. 인왕산 북한산을 오를 때는 그냥 올랐는데 인테넷에서 요리조리 조사를 했다. 한라산 등반만이 제주행의 유일한 목적이었다. 나의 목적에 걸맞은 게스트 하우스를 찾았다. 한라산 등반에 관해 정보도 주고 새벽에 한라산 입구까지 차량운행도 해주었다. 시간 맞춰 일어나면 이른 아침 식사도 제공해 주었다. 빌린 장비들이 어딘가 정비가 필요했지만 사용은 가능했다. 길어봐야 8-9시간 사용할 장비라 빌리기로 했다.


코로나 시즌이라 좋은 점도 있었다. 한라산의 하루 등반객 수를 제한했다. 코로나 전에 비해 한산하다고 했다. 산 오르기 좋은 봄시즌이라 내 앞 뒤로 사람들이 계속 보였다. 코로나 전에는 사람들에 밀려 줄을 서서 움직이는 기분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속도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몇 번 만나게 된다. 감사하게 20대 남자분 한 명과 30대 여자분 한 명 그리고 내가 팀을 이뤘다. 남성 등산객은 취미가 야구였고, 여성 등산객은 산이 좋아서 이 산 저 산 오르다 한라까지 왔다고 했다.


나에게 산을 오르는 건 기분 좋은 일이었다. 목표가 있는 도전은 즐기는 편이었다. 동행하는 20대 등산객이 체력이 좋아서 더 신났다. 덩달아 내 등반 속도도 빨라졌다. 빨라도 한라산이었다. 정상까지 해발 1947m.


‘와 높다더니 길긴 길다.’


초보자들에게 어렵다지만 풍경이 아름다운 관음사 코스를 올랐다. 풍경마다 감탄이 절로 나왔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워.’

‘한국이라는 나라가 너무 멋있고 좋다.’

‘하하 여기 오니까 산신령이 된 기분이야.’

‘아 구름도 예쁘고’

‘하늘 가까이 가는 기분이 이런 걸 거야.’




나의 선택은 옳았다. 육지에서 삶을 통해 부딪히는 근심, 걱정, 낙심이 산 길 따라 떨어져 나갔다. 내가 산을 오르면 발자국이 생긴다. 그 발자국이 떨어진 부정적인 마음을 단단히 밟았다. 산속에 묻었다. 시간을 느끼거나 흐름을 알 필요도 없었다.


한라산의 아름다운 나무들이 베푸는 신선하고 좋은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시면 되었다. 숨통을 환하게 열고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마음이 비워지고 채워졌다. 비워진 것들은 나에게서 출발해서 나를 떠났다. 채워진 것들은 한라산이 나에게 부어준 생명에 관한 것이었다.



들음

한라산에 얼마나 생명체가 많은지 이제는 안다. 처음 오르기 전까지 생각한 적이 없었다. 사람들은 본인들의 생명에만 집중하느라 자연의 생명을 깊이 드려다 볼 겨를이 별로 없다. 나무 한 그루의 생명도 몇 백 년일 수 있다. 그런데 한 산이 있었다. 수 백 년 동안. 죽은 돌산처럼 존재한 산이 아니다. 나보다 생생하게 살아 있는 ‘산 산’이다. 거기 우뚝 솟아 나보다 긴 세월 살았다. 앞으로 나는 곧 사라져도 산은 거기 그대로 살아갈 것이다. 생명이 있는 생명체는 모두 호흡하면서 언어를 가지고 있다. 한라산 백록담에 다가가자 깨달음도 다가왔다.


그 한라산이 나에게 말을 했다.

산은 겸손했다.

권위를 자랑하지 않았다.

높음을 감추지 않았지만 과시하지도 않았다.

그저 산의 마음을 열어 보여 주었다.

내가 오를 때마다 산도 나를 끌어안고 싶어 했다.

그 감동의 시간을 위해 아늑하게 이끌었다.


오르는 자여
두려워 말고 오르게.
한 걸음에 한 발짝씩 이어서.
다음 걸음은 다음 발짝에.
숨이 차고 고프면 쉬어 가고.
그대가 오르고픈 정상은 열려있으니
걷는 것만 포기하지 말기를.
걸음마다 나를 즐기게.

오르는 자여
걷는 발걸음만 멈추지 않는다면
나의 정상에 곧 도달할 거라네.

그곳에서 서로를 안고 즐기세.



한라산 백록담. 첫 등반 에도 이 정도 물이 차있었다.





어제 함께 달린 친구와 한라산 얘기를 나눴습니다. 잊고 지낸 인사이트가 생각나서, 갑자기 울컥했습니다. 한라산에서 받은 인사이트를 기록으로 남깁니다. 1/2 앞부분은 데스크톱 앞에 앉아서 쓰고, 1/2 뒷부분은 손전화기로 씁니다. 오른손가락과 팔뚝이 마비되는 느낌입니다. ㅎㅎ 전화기로 쓰길 잘했을지도 모릅니다. 마비라도 오니까 마무리를 짓습니다. 오늘 안 끝날 지도 모를 숨은 마음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다행입니다. 다음을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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