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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니 Jul 06. 2024

씨앗이 심겨지다

달리기 예찬론자_Nike 앰배서더 될 때까지_a001



"싫다. 진짜 싫다. 야~ 우리 학교 부셔 버려~"

"운동장만이라도. 제발 누가 부셔주면 매점은 너에게 다 줄께. 부디~ "


언젠가 부터 없어진 것 같다. '라떼 시절'에는 체력장이라는 힙한(?) 학교 행사가 있었다. 요즘은 "학생체력평가제"라는 고급진 말로 바뀐 분위기다. 1000m를 우리더러 달리라는 게 실상 참여자 관점은 전혀 없는 행사였다. 오직 시대가 만들어 놓은 사명같은 것이었다. 새 마을 운동처럼. 모든 movement는 이점과 단점이 항상 존재한다는 견해도 덧붙인다.


우리의 아우성을 보면 '사춘기'학생들 파악을 못하신 제도였다. 전국의 전교 1등들이 아마 제일 싫어했을 것이다. 달리기 대신 걷기로 대체되거나 사라졌다 한다. 사라져 버린 이유가 달리다 쓰러진 학생들이 생겨서라고. 나와 함께 껌씹고 침뱉었던 친구들도 쓰러지고 그랬어야 했다. 나?... 나는 그러기에는 너무 건강했다. 빵을 하도 먹어 대서 변비가 조금 심했다 뿐이지. 튼실했다. 체육 시간에 혼자 그늘에 앉아 쉴 수 있는 자격을 단 한 번도 얻지 못했다. 강인한 체력의 소유자였다. 새 하얀 피부는 갖췄지만 비실 거리기에는 너무 활발했던 말괄량이였으니까. 쉬는 시간만 되면 매점과 화장실 두 장소의 거리감 따위는 상관 없었다. 10분안에 전력질주라면 올킬 점령할 수 있었다. 때로는 두 곳 다녀와서, 과자 뜯어 먹으면서, 밀린 숙제 갈려 쓰며 시급한 업무까지 초고속으로 해냈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10분이었지만 모두의 능력이 동일하지 않으니까. 그 시절의 10분은 나 그리고 '나의 프렌즈'에게는 그런 시간이었다.


우리의 황금같은 10분의 시간인데 다음 시간은 체력장이 있단다. 나와 친구들은 단체 짜증과 집단 아우성으로 해야할 일을 했다. 옷을 갈아 입었다. 그 다음 도살장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운동장에 모였다. 체력장의 모든 리스트가 다 맘에 들지 않으니까. 그 중에 오래 달리기는 단연 넘버 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달리기하면 도살장 끌려가는 기분이었던 내가 요즘 새벽 5시에 눈을 뜬다.


이유는 달리기 위해서다.


매점을 통째로 준다는 보상도 없는데 발딱 일어난다.

그 시간에 눈 떠지면 뒤척이면서


'더 자고 싶어. 더 잘 시간이네'

라고 고백하는 게 피곤한 근로자의 정상적인 반응이 아니던가? 그런데 알람도 없이 5시~ 5시 30분 사이면 눈이 떠진다. 떠진 눈만 말똥거리는 게 아니라 체력도 짱짱해서 고민없이 일어난다. 일어나서 창문을 바라보며 아침 날씨를 확인한다. 우중런도 좋지만 이왕이면 좋은 날씨이길 바라면서 말이다. 달리기에 좋은 날씨를 기도하면서 잠드는 밤도 있고 말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움직이는 형태는 똑같은 달리기. 지금의 나에게 달라진 것은 '달리기의 정의'다. 달리기의 참 맛을 알아 버렸다는 것도 좋은 설명이다. 바다를 두려워 하는 자 지구의 70%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던가. 물에서 하는 활동을 하기 이전에 '물'을 두려워 하지 않아야 한다. 물과 친해지기 위해서 자신이 태곳적 생명체의 형질을 갖추던 엄마 뱃속이 물과 비슷한 환경이었다는 걸 알아야 한다. 거기서 우린 누구나 아주 편하게 잘 지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신체가 '물'에 뜨는 현상이 아주 자연스러운 자연 현상이라는 것도. '생존 수영'이라는 수업이라도 이수한다면 두려움은 금새 사라질 것이다. 달리기도 마찬가지다.


달리기는 누구나 위의 방식으로 배우거나 접해야 한다. 사춘기 시절 체력장이 아니라 생존적인 의미로 필요했고 인간 삶의 자연스러운 활동이었다는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생존 능력의 향상을 위해 매우 필요한 필수(essential)기능으로 말이다. 선사 시대 사람들은 모두 잘 뛰었기 때문에 생존을 유지했을 것이고 후손으로서 우리 또한 그 본능을 가진 생명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이 말은 과장된 말이 아니다. 달리기에 대한 관심이 증가되자 많은 사회학자, 과학자, 심리학자와 연구자들이 이 영역에 대해 잘 연구 조사해 왔다. 그에 관한 정보는 차고 넘친다.


그 정보 중에 나의 정의는 나에게 중요하니까 몇 가지 정리한다.


1. 움직이는 기도와 같은 시간_ 달리고 나면 대부분의 걱정, 스트레스가 사라져 버린다.

2. 새로운 창의적 공간이 생기는 시간_ 정서적 공간이기도 하고 지적인 공간에도 생긴다. 신비하다.

3. 부정적인 감정과 사고를 갈아엎는 시간_ 챌린지 기능을 한다. 달리고 나면 위대해졌다는 믿음 생긴다.

4. 유희의 시간_ 달릴 때도 좋지만 달리기 마치면 매우 좋다.

5. 나의 꿈과 비전이 확장되는 시간_ 막 세계 정복이라도 할 거 같은 큰 꿈이 생겨 버린다.

6.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에너지를 얻는 시간_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바뀐다.

+ 7. 가끔 술 깨는 시간_ 술 먹고 달리는 건 간 건강에 좋지 않다 해서 요즘은 자제한다.  


'달려라 하니'라는 애니메이션이 있었다. 그 애니가 빅 히트를 칠 때도 오직 만화만 봤다. 하니 캐릭터도 캐릭터지만 홍두깨 선생님의 착함이 매력이었던 시절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이진주 작가님'은 시대를 앞서도 너무 앞섰던 분이셨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진주 작가님 저 이제 달려요.

하니처럼은 아니지만요.

홍두깨 아저씨처럼요.

만약 홍두깨 쌤이 달리면 저처럼 달리실거 같아요.'



 



그렇다고 달리는 동기를 주셨던 분이 이진주 작가님은 아니다. 고백컨대 나는 '꿈'을 쫓아 산 사람이 못 된다. 아버지의 권위주의적인 교육과 카리스마 넘치는 양육 체계로 인해 진로 결정할 때마다 '반대의 벽'에 부딪혔다. 대학 결정은 더욱 나에게 결정권이 없었다. 가이드 정해준  범위안에서 4지 선다형 정도의 선택만 가능했다. 아버지의 용돈에 길들여져 있던 나는 항상 아버지에게 복종했다. 그냥 유유자적하는 삶을 꿈꾸기 시작한 것은 아마 대학 선택 이후였을 것이다. 그 전에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 굶어 보기도 하고 아버지 몰래 꿈꾸는 일에 시도해 봤지만 번번히 들켰다. 들킨 사건 이후로는 그 근처에도 갈 수 없었다. 나에게 아버지 존재와 그 분의 엄포는 세상 어떤 존재의 말보다 무서웠다. 법보다.


첫 번째 대학 졸업장을 마침으로 내가 만난 어떤 다른 존재의 힘을 빌려 다시 또 도전했다. 길이 열리는 듯 했다. 그 때의 걸림돌은 저승사자와 같은 아버지의 엄포가 아니었다. 아버지의 실패였다. 부도 소식과 집안 곳곳에 붙었다는 빨간 딱지들 소식을 전해 들었다. 전화기 너머로 가슴 졸이던 어머니의 사정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얼마 전에 나는 분명히 내가 원하는 '합격'소식을 전달 받았다. 그것도 포항까지 가서 그 학교 학장님의 인자한 미소와 함께 '나를 환영한다'는 겸손한 인사까지 받았다. 용돈에 길들여진 습성도 포기했다. 용돈이 끊겼다. 내가 다른 존재를 믿고 따르기 시작하자, 부모님은 바로 재정적 지원을 끊으신 지 3년 정도 되었을 시기였다. 원하는 진로로 진학을 꿈꾸며 주경야독하며 알바로 준비했던 합격장이었다.


집 안 꼴이 그리 되어서 모두 삶에 필요한 '돈'을 구하는 방법을 위해 '길'을 찾고 있다 하셨다. 물론 이렇게 표현하지는 않으셨다. '꿈'을 쫓아 가는 또 한 번의 진학이 꽤 이기적이라는 오해를 했다. 꿈을 쫓든 돈을 쫓든, 어느 방향이던 사회 경력이 없는 20대는 쫓는 것을 쉽게 얻을 시기가 아닌데 그걸 그 때는 몰랐다. 엄카 아카 쓰던 실력이면 세상에서도 꿈이던 돈이던 한 2-3년 쫓아 가다 보면 금방 성과를 낼 거라 오산했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나는 꿈을 쫓아 살지 않았다.' '나는 돈을 먼저 쫓고 그 돈으로 꿈을 이루겠다.'계산했다. 대입처럼 그렇게 필사적으로 2-3년 독파하면 되는 거라 생각했다. 지금 사교육계에서 일해 보니 잘못된 계산이었다. 대입의 성과도 족히 12년 + @ 요소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2% 정도의 '운'도 반드시 필요하고 말이다. 2-3년의 단기 노력이 아니라 더 장기적인 마라톤 레이스와 같다. 그런데 당시에 2-3년으로 계산해서 '돈'을 만드는 세계로 마음과 발을 옮겼다.




그 세계를 경험하는 나는 최소 3년 정도 열어둔 수도꼭지처럼 매일 울었다. 상황에 대한 나의 마음의 슬픔이 현실의 난관과 마주하면서 더 슬펐을 수 있다. 울다가 찾아간 스승들은 책을 통해 만나는 작가나 저자였다.


내 마음속 스승님들. 그 중 한 분이 무라카미 하루키 선생님이셨다.



하루키 선생님과 나의 관계의 주의 사항이 존재했다. 오직 한 가지. 우리는 소설을 매개체로는 잘 맞지 않았다. 안 그래도 슬픈 정서와 눈물이 많은 내가 하루키님의 소설에 빠져 드는 건 위험했다. 스토리가 있는 이야기에 빠져 들 때 나의 특징은 너무 침몰하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슬픈 상황에 처하면 타인의 이야기로 머물러 있지 않는다. 신문 기사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처럼 내 삶에 그 감정이 유사하게 들어와 버리는 성향이 있었다.


오래 전부터 나의 필요로 인해 <동화같은 소설>이 필요해. 어른이 읽을 만한 <어른을 위한 동화>같은 소설말야. 이렇게 생각했는데 최근 몇 년 '휴남동'에서 나온 이야기를 비롯해 일본에서도 비슷한 류의 소설들이 많이 출간되어서 감사하다.


좋은 스승님 하루키님을 찾아가도 에세이를 통해서만 만났다. 


<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


<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는 그렇게 만난 책이었다. 에세이를 통해 만나는 하루키씨는 옆집 아저씨 같았다. 쉬크하지만 마음씨 곱고 천재성보다는 꾸준함을 가진 선량한 아저씨 느낌이 나서 위로를 많이 얻었다.


무엇보다 큰 위로가 된 점은 하루키 아저씨의 삶과 꿈을 향해 전진하고 이뤄내신 모습이었다. 소설가가 되신 과정 자체가 동경이자 위로를 주었다. 옆집 아저씨 느낌을 주니까 편하게 혼자 보내는 서신도 띄울 수 있었다.


'하루키 아저씨 ~

쉽지 않아요.

아저씨처럼 저도 열정은 많은 것 같은데요.

매일 매일 눈물이 나고 고단해요.

돈을 벌어 보겠다고 했는데 정말 딱 2년 정도만 벌다가 다시 제가 원하는 일을 하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제가 바보같아서요. 너무 고생도 안해보고 세상을 잘 모르니까요.

모든 선택이 서툴러서 결국 다 놓쳐 버리는 거 같아요.

때로는 세상을 잘 모르니까 가족이나 타인을 위한다는 선택이 결국 저를 오래도록 아프게 해요.

꿈도 그래요.

모두 잘할거 같았는데요.

하나도 제대로 잘 하는 게 없어요.

눈물만 나요.


달리기 하셨네요.

여기에 적어 두신 아저씨 느낌이 무슨 말인지 다 깊이 있게 느낄 수는 없어요.

저는 달리기를 좋아하진 않거든요.

골방에 앉아서 하루 종일 영화 보는 거나 맛있는 아이스크림 같은 것만 아직은 좋아요.

아저씨가 달렸다고 하니까 이 책이 좋아 보이니까, 마음에 담아 두긴 하려고요.


멋있을 거 같아요.

인생에 한 번쯤은 풀 마라톤 달려보는 것도요.

세계적인 소설가가 되겠다고 생각하신 것은 아니겠지만

소설을 쓰겠다는 꿈을 이루셨잖아요.

하루키 아저씨 저는 꿈을 이룰 수 있을까요?

요즘 꿈조차 헷갈려요.

돈을 그냥 왕창 많이 버는 것인지?

좋아하는 분야로 유학도 가고 그 이후에 ***도 되고 싶은 건지?


아버지도 이상해지시고, 저도 잘 가고 있는지,

이 길이 맞는지 모르겠어요.


달리기는 멋있어요.

해볼께요.'




심어둔 '씨앗'이 좋은 마음밭에 떨어졌던 것이다.

그 책을 덮고 한참 지나서

30대 어디쯤에서 달리고 있었다.


그 이야기는 다음을 기약하며...


< Nike 앰버서더 될 때까지 >

나의 달리기에 관한 이야기는 떠들어 재낄 작정이라서 시간과 횟차가 앞으로 수북히 남았다.


마라톤 이야기도

달리기 이야기는 졸라 재밌다.


PS) 하루키님의 에세이를 다시 여러 번 읽었다는 썰도 있다. 달리기를 많이 경험하고 나서 다시. ^^


https://brunch.co.kr/@honey5ria/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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