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니 Jul 08. 2024

한계를 만나는 자의 야릇한 기쁨

<자영업자 생존> 노트 00708




나는 누구인가?

이력서를 만드는 중이라면 지원하는 회사가 원하고 뽑고 싶어하는 '나'를 표현할 것이다.

브런치의 < 나의 페이지 >에는 '나'를 어찌 표현했나?

브런치 문화에서 통용될 만한 점들이겠고. 내가 읽기에 좋아야 하고. 브런치에서 만날 친구님들이 짐작하고 상상하기에도 호감 가면 더없이 만점인 '나'의 표현일 것이다. 오늘은 내가 나에게 동일한 질문을 하고 싶다.

'나는 누구인가?' 아니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나는 지금 '생산자'로서 뛰어난 실력자가 되고 싶다.


곧 될 것이다. 바라고 있으니까. 이 바람은 매일 커지기만 한다. 커진다는 의미를 뒤집어 보면 현재 뛰어난 실력자는 아니라는 것이다. 실력자인지 아닌지는 무엇으로 평가하는가? 내가 정해 놓은 성과 목표다. 목표가 거의 야망으로 느껴진다. 이루지 못한 것이니 야망이다. 꿈일 수도 있지만 '꿈'은 너무 선한 이미지를 포용한 단어다. 순수하기까지 하다. '목표'는 현실적이고 상세함을 담아야 한다. 목표를 이루지 못한 정체성에는 허영심과 게으름마저 느껴진다. 그 무능함에 희망이 보이지 않을 것 같다.


오늘은 '야망'이라는 정의를 선택하는 게 좋겠다.

다른 비즈니스 리더들, 자기 계발 코치들, 좋은 저자들은 대개 '큰 꿈'이라고 표현한다. "큰 꿈을 꾸어라. 그 꿈이 깨진다면, 작은 조각이라도 이룰 수 있다. 그러니 무조건 꿈은 크게 꾸어라!'며 멋진 말을 남겨 준 분도 있다. 이를 테면 '한국 입시생들이여 못 먹어도 고! 무조건 <서울대 합격>이다. 못 간다 한들, 인서울은 갈 테니까'라는 표현과 비슷하다. '큰 꿈' 좋은 표현이다. 동의하지만 오늘은 '야망'이라고 쓰겠다.


나 자신을 위한 정체성을 기록하고 있다. 나를 설득하고 나 자신에게 매력을 줄 만한 '나'를 표현하고 싶다. 나는 '큰 야망을 가진 작은 생산자다.'




이런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오늘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다음 질문을 던지고 싶다.

무엇 보다, 먼저 배워야 한다. 작은 사람이 능력을 갖추려면 이미 성공한 사람들의 실력을 훔쳐야 한다. 베끼거나 따라 하는 것보다 훨씬 노골적이고 실제적인 행동이다. 훔치라! 훔치고 나서는 절대 빼앗기지 말고 키우고 늘려서 자원하여 나눠줘야 한다. 나눠주는 족족 그것에 관련된 이익을 다시 취해야 한다. 이익의 형태는 재정적일 수도 있지만 다른 재화나 또 다른 가치의 유무형의 모습일 수 있다. 정서적인 이익에서부터 지적인 이익, 관계적 이익, 좋은 에너지의 이익 등 삶을 윤택하고 부요하게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자영업자로서 삶의 방향을 바꾼 뒤 갖게 된 좋은 점은 너무 많다. 내가 아주 작은 생산자 역할을 하면서 자존감이 위아래로 왔다 갔다 할 때도 있다. 그런 때라도 '업자'로서 나의 정체성을 좋아했다. 날이 갈수록 더 좋아진다.




요가 수업을 들을 때 매 번의 수업 시간마다 '나 자신의 한계'와 만났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점이 매력으로 다가왔다. 완성된 완벽한 동작이 요가에는 영원히 없다는 것이 나의 의견이다. 한 동작을 하더라도 꾸준하게 한다는 전제 안에서 '어제보다 더 나아진 혹은 깊어진 동일한 이름의 다운독'은 있다. 허나, '제일 완벽하고 완전한 다운독 자세'는 영원히 없을 가능성이 높다. 꾸준히 하다 보면 남겨진 '수련 시간'에 성취해 낼 '다음의 다운독 자세'가 더 깊어질 확률이 매우 높아지니까.


게다가 내 앞에 항상 나보다 앞서 있는 요가 강사님이 계신다. 수업을 듣는 수강자 몇 이나 '강사님'의 요가 경지를 뚫고 넘어서 있을까? 대개는 강사님보다 못하니까 그 수업을 듣고 있는 게다. 나는 한 번도 강사님을 앞서본 적이 없다. 단 1분도. 나와 비슷하던지 나와 달리 강사님을 넘어섰던지, 더 매력적인 점이 한 가지 더 있다. 강사님과 그 수업, 그 현장, 그 시간에 모인 모든 사람은 동일하게 '수련자'다. 모두 각 자의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오늘의 나'를 만들고 있다. 아주 작은 발전을 위해서라도 낑낑 거린다. 들 숨과 날 숨으로 구성된 호흡 하나하나에도 '수련'을 위한 정신을 담는다.


수련에 정성을 다한다. 그 결과는? 결국 한계다. 완벽하지 않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받아들이는 마음조차 평안해야 한다. 요가한다면서 온몸과 온 정신을 다해 경쟁, 시기, 성공을 위한 전투력을 발사하는 수련자를 보셨는가?


요가 수업 밖에서 항상 경쟁해야 하고 이기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때로는 능력평가제도 같은 회사 공동체의 철저하고 숨 막히는 제도에 대해 긴장해야 한다. 그 문화에 익숙하고 요령 있게 사는 사람이 대개는 이기는 자들이 된다. 그런 사람들이 요가 수업도 듣는다. 처음에는 비슷한 마음과 태도로 요가 센터 스튜디오 문을 열고 수업에도 들어갔을지 모른다. 그러다 무언가를 자연스럽게 느끼고 정의할 수 없지만 느끼는 대로 몸과 마음의 흐름을 맡긴다. 사바아사나조차 생산적인 시간으로 계산하면서 '왜 가만히 있는 시간이 이렇게나 길게 수업 시간을 차지해야 해?' 라고 안달 낼 수 있다. 많은 사바아사나 시간을 느끼고 체험하면서 자기도 인식하지 못하지만 서서히 바뀐다.


요가 수업 안에서는 다른 흐름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다른 흐름을 따라가게 되어 있다. 의지적이라기보다 자연스레. 해 보다 보면 흐름이 수련자들에게 길을 열어 준다. 열리는 길을 따라 유유히 물처럼 흐르거나 불처럼 전이된다. '기승전결'의 스토리를 따라 흘러가는 중에 즐거움을 찾을 수도 있다.


이 특혜를 누리기 위해서 가장 먼저 온몸과 온 마음으로
받아들여하는 대전제가 있다.



위에서 언급한 것인데, 바로 '한계'다. 한계를 맞닥뜨리고 수용하는 그 능력이 커지면 다양한 좋은 감정을 발견하게 된다. 내가 요가를 통해 발견한 기쁨이자 지혜였다. 나중에는 수용 능력으로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다음번의 한계'가 기다려졌다. 한계를 만나면 기뻤다. 3 호흡만 더 쉬면 그다음 바짝 다가오는 '이완의 시간'이 있다. 그 시간이 나에게 되돌려 주는 큰 평안과 기쁨은 3 호흡의 인내와는 비교가 안되니까.






자영업자로 살기 시작한 첫 달 나는 매일 셀 수 없이 당황스러웠다. 내 정체성에서 무언가가 빠져 있었다. 알면서도 인정이 잘 안 되는 정체성이었다. 바로 2달 전에 다니던 '회사 브랜드'이름이 빠져나가 버렸다. 나는 1-2달 만에 '노브랜드'였다. 브랜드가 없는데 이미 익숙해진 태도, 마인드는 '큰 기업형 회사'의 굉장히 작은 비율을 차지한 '1 명의 사원'을 포기하지 않으려 했다. 그래야 '없는 브랜드'로 시작한 나의 업이 '브랜드'의 후광을 유지할 거라는 착각을 했을 것이다. 사실 많이 불안했던 것이다. 나조차 많은 선택에 대해 '브랜드'라는 힘을 고민 없이 신뢰하니까.


브랜드에서 1명의 의미는 3000분의 1일 수 있다. 브랜드가 강력할수록 1억 분의 1이 될 수 있다.

자영업자가 되기 전에는 브랜드의 힘이 강할수록 그게 '나'라고 생각했다.


자영업자가 되고 나서야 '노브랜드'의 입장을 알게 되었고 그전에는 알려고 노력도 안 했다. 알려고 노력했다 해도 그 '앎'은 깊이가 가벼웠을 '지식'이었을 것이다. '노브랜드' 정체성의 상황에서 나의 역할은 의외로 커졌다. 1인 3인에서 5인 역. 위의 설명처럼 분수로 치면 1분의 3 내지 1분의 5가 되는 길이었다.


이런 깨달음이 '한계'와 만나야만 나에게 다가와 주었다. 당황스러움, 우울함, 화, 시기, 질투, 무력함의 감정을 지나가야 비로소 '지혜'를 깨달았다. 한계를 만나면 당황스럽거나 우울해지고 화가 났어? 이상하다. 요가 수업에서는 기뻤다고 했잖아? 물을 수 있다.


그전까지 '브랜드'라는 큰 성안에서 일했던 나는 달랐던 것이다. 일터의 한계는 요가 수업에서 한계와 다르게 처리해 왔다는 사실조차 그제야 인식했다. 그전에는 그 거대한 성에서 그 브랜드 문화답게 처리했다. 그게 사회 적응능력이니까. 혼자 일하거나 3명 정도의 동역자들과의 업무에서는 다르게 반응해야 했다. 부정적인 감정으로 대처하거나 소수의 동역자들과 의견 일치가 안되면 피해가 심했다. 할 일을 끝내기는커녕 일이 진행되기가 어려워졌다.





다행히 3 호흡법을 생각해 냈다. 활용점을 찾아 활용하기 시작했다. 다른 현장이라고 생각했던 일터에서도 한계를 다루는 연습부터 새롭게 시작했다. 시일이 걸리기는 했지만 점점 '작은 나'를 대면하는 것이 좋았다. 매일 부딪히는 '나의 한계'를 만나는 당황함이 줄었다.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이라 인정부터 해 주니까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시간이 쌓여야 할 초자 '대표'였다. 명함 달았다 해서 그 명함이 일을 해주나? 일은 명함 주인이 하는 법._치킨은 살찌지 않는 것처럼. ^^ 어떤 일이든 초보자는 시간을 붙잡아 시행 착오를 쌓아 가며 행동해야 한다. 그 시간도 나의 시간이기에 소중하다. 부정적인 감정에 뺏길 수 없다. 1 분도.



작은 존재, 아직 '노브랜드'인 나와도 이왕이면 행복하게 살고 싶으니까.

새로운 습관도 생겼다.


책 읽기와 글쓰기!


시작할 때는 오늘 읽었던 '책 읽기 교훈을 노트정리'하려 했는데...

그 부분은

투비컨틴유 ~


^^




작가의 이전글 씨앗이 심겨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